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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예천] 하루에 세 사찰 돌아보기 그 세 번째, 문화재의 보고인 예천 용문사

[경북 예천] 하루에 세 사찰 돌아보기 그 세 번째

- 문화재의 보고인 예천 용문사

 

 

지난 오월, 부처님오신날을 하루 앞두고 돌아보았던 문경과 예천의 사찰들~

김룡사, 대승사, 용문사...

그 세번째 사찰인 예천 용문사에 들렀다.

오래전에 한 번 들렀던 곳이지만

당시에는 대대적인 공사로 매우 어수선한 상태여서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기억이 있다.

지금은 정비가 되어 진입하기가 쉬웠다.

 

가장 감동으로 다가왔던 용문사 대장전의 윤장대

 

 

 

예천 용문사

용문사 일주문.

'소백산 용문사' 현판이 반긴다.

 

 

위주차장에 차를 대고 갔기에 성보박물관 옆으로 들어갔다.

보광명전과 석탑, 대장전이 보인다.

 

 

 

강원과 해운루, 선경당도 보이고...

 

 

 

먼저 성보박물관에 들렀다.

 

 

 

입구에 놓여진 함에 입장료를 알아서 넣고 들어가게 된다.

 

 

서거정의 시가 반기고...

 

 

박물관에서 용문사의 역사를 알아보게 된다.

 

용문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10년(870)에 두운선사가 세웠다고 한다.

 

용문사는 신라를 정벌하러 가던 고려태조 왕건이
용문사 인근에서 자욱한 운무로 지척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을 때

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했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용문사의 중흥은 고려전기에 조응선사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9층청석탑을 건립하고

문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대장전을 지었으며

2기의 윤장대도 설치했단다.

고려시대에는 용문사 인근에 명종의 태를 안치하기도 했단다.

고려 태조와 두운선사의 만남, 청석탑 건립, 명종의 태 안치를 기념하여

용문사의 이름이 창기사로 바뀌기도 했단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길지가 되었다고 한다.

세조는 용문사의 잡역을 면하도록 교지를 내렸다.

이 후 세종비 소헌왕후의 태실과 비가 세워졌고,

용문사가 정조의 맏아들인 문효세자의 태실로 봉해졌으며,

선조의 후궁이자 인조의 할머니인 인빈 김씨의 원당이 되기도 했단다.

 

사적기에 의하면 17세기에 많은 승려들이 힘을 모아 사세를 일으켰다고 한다.

여러 전각들을 수리하거나 신축할 때 힘을 모아 이루었다고 한다.

 

(용문사 성보박물관 자료 발췌)

 

 

화장찰해도라고 한다.

불교에 대하여 잘 모르니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화엄경에서 이야기하는 비로자나불의 정토인 연화장 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1644호 예천 용문사 천불도 (醴泉 龍門寺 千佛圖)

용문사 천불도.

1709년에 화승 도문(道文), 설잠(雪岑), 계순(戒淳), 해영(海英)이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한 폭에 천불을 모두 그린 것으로,

현존 천불도 가운데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이라고 한다.

 

 

 

 

 

보물 제1330호  예천용문사팔상탱 (醴泉龍門寺八相幀)

 

팔상탱화는 석가모니의 일생을 잉태로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그림.

진본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

 

 

팔상탱 일부(녹원전법상과 쌍림열반상)

 

 

 

보물 제1445호 예천용문사영산회괘불탱 (醴泉龍門寺靈山會掛佛幀) 

1705년 조성된 작품.

입상의 삼존불상을 배경으로 본존불상 머리 좌우에 가섭존자와 아난존자를 배치시켜

5존도 형식을 취한 괘불탱이란다.

그림 내부 하단 가운데 쪽에 보이는 글은 왕실의 안위를 발원하는 것이란다.

 

 

 

 

 

 

보물 제 729호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 (醴泉龍門寺 減役敎旨)

(문화재청 사진)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는 세조 3년(1457)에 내린 교지로,

용문사에 잡역을 면제할 것을 인정하는 교지란다.

공로가 있는 자에게 나라에서 부역을 면해주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인 사패교지란다.
가로 44.8cm, 세로 66.5cm.

국왕의 수결(서명)이 있어 더 귀중한 것이란다.

 

 

 

중수용문사기비 비문 탁본

 

 

 

 

모형 윤장대.

이것은 누구나 돌려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윤장대이다.

대장전의 윤장대는 아주 오래되어 보존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리라.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醴泉 龍門寺 重修龍門寺記碑)

예천 용문사 중수용문사기비 (醴泉 龍門寺 重修龍門寺記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0호

 

고려 명종 14년(1184)에 이지명(1127∼1191)이 왕의 명을 받들어 기문을 짓고,

이듬해 성인선사 연의가 비문을 쓰고 입선 해석이 각자한

높이 195㎝, 너비 93㎝, 두께 10㎝ 크기의 중수용문사기비이다.

비문의 내용은 용문사의 위치 소개 및

사원의 형성 계기가 된 두운선사의 복정 사실과 태조 왕건의 지원 내용,

주지 조응의 용문사 중수 및 낙성 관련 내용, 대선사 조응에 관한 내용 등이다.

그리고 명종 18년(1188)에 추기된 음기는

조응의 제자를 사법제자와 집사제자로 구분하여 기록한 것이다.

내용 분석을 통해 고려중기 선종계의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므로

유형문화재 지정대상으로 선정한다.

 

(문화재청 자료)

 

 

 

 

 

성보박물관의 자료들을 본 후 본 가람으로 이동하게 된다.

보광명전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고,

한 단 아래 앞마당에는 석탑 두 기가 대가람을 느끼기에 충분한 듯 보인다.

 

보광명전과 동서석탑이 우람하게 서 있는 예천 용문사.

 

 

 

해운루 앞으로 와서 바라본 보광명전.

주위는 온통 연등으로 장식되어 화려한 모습이다.

 

 

 

보광명전 정면 앞 한 단 아래에에 자리한 해운루도 당당해 보인다.

 

 

 

해운루에 올라 바라본 보광명전과 동서석탑.

석탑은 오래되지 않아 조금은 인공미가 넘치는 듯...

 

 

 

가운데로 대장전이 보이는 풍경도 담아 보고...

 

 

 

해운루에서 바라본 회전문쪽도 담아 보고...

 

 

 

보광명전과 석탑을 또 담아 본다.

 

 

 

1984년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건축되었다는 보광명전.

신도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보광명전에서 바라본 영남제일강원, 자운루, 석탑, 범종각

 

 

 

보광명전에서 바라본 선경당, 석탑, 성보박물관

 

 

 

보광명전에서 대장전 가는 길...

포대화상이 웃음을 지으며 앉아 있는데,

나로서는 포대화상을 보면 왠지 중국 느낌이 난다.

오래전 홍콩에서 보았던 아주 큰 포대화상 때문인지......

옆으로는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준비 중인 모습이 보인다.

 

 

 

 

보물 제 145호 예천 용문사 대장전 (醴泉 龍門寺 大藏殿)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대장전을 지었다고 하는데

지은 시기는 알 수 없고 전하는 기록에 조선 현종 11년(1670)에 고쳤다고 하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수리되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의 모서리 부분에는 용머리, 연꽃 봉오리와 같은 조각을 해 놓았고,

안쪽 부분에는 더욱 화려한 장식을 하여 당시의 정교한 조각과 장식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삼존불 뒤의 나무로 조각한 벽체는 건물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 있으며,

불단 양쪽 옆으로 불경을 보관하는 회전식 윤장대(輪藏臺)를 만들어 놓았다.

작은 규모의 건물로 뛰어난 조각 솜씨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문화재청)

 

용문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대장전

 

대장전 앞에는 용문사의 문화재들을 알리는 비가 여러 개 서 있다.

용문사의 위상을 알게 해 주는 비들이다.

 

 

 

 

 

용문사 대장전은 문화재의 보고이다.

건물 자체도 그렇지만 내부에 안치된 윤장대, 목각탱, 불상들까지...

용문사에서 가장 감동으로 다가온 곳이다.

 

 

 

전각 모서리에는 귀면, 연꽃과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도깨비를 닮은 귀면의 효험 덕분인지는 모르겠으나

신통하게도 1984년에 화재를 면했다고 한다.

 

 

팔만대장경의 일부를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하는 대장전.

대장전 안에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윤장대가 있어

보는 순간에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보물  제989-1호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醴泉 龍門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하단에 조성기(造成記)가 「康熙二十三年甲子季」라고 묵서(墨書)되어 있어

숙종(肅宗) 10년(1684)에 조성된 것이 분명하며

17세기 후기의 조각양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고 한다,

 

 

 

보물  제989-2호 예천 용문사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醴泉 龍門寺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삼존불상 뒤의 목각탱은 숙종 10년(1684)에 만들어진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목각후불탱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란다.

기본 구조는 상하가 긴 사각형이지만

좌우로 구름무늬 광선을 표현한 둥근 모양의 조각을 덧붙인 모습.


 

 

대장전의 삼존불상 좌우에는 윤장대를 설치하였다.

 

 

 

삼존불상과 윤장대

 

 

 

보물  제684호 예천 용문사 윤장대 (醴泉 龍門寺 輪藏臺)

 

예천 용문사 윤장대(醴泉 龍門寺 輪藏臺)는 용문사 대장전 안에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내부에 불경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서 극락정토를 기원하는 의례를 행할 때 쓰던 도구이다.

마루 밑에 회전축의 기초를 놓고 윤장대를 올려놓았으며,

지붕 끝을 건물 천장에 연결하였다.

 불단(佛壇)을 중심으로 좌우에 1기씩 놓여있는데 화려한 팔각정자 형태이다.

아래부분은 팽이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아 잘 돌아갈 수 있도록 하였고,

난간을 두른 받침을 올린 후 8각의 집모양을 얹었다.

8각의 집모양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세우고 각 면마다 8개의 문을 달았다.

문은 좌우로 구분되어 4개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다른 4개의 문에는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 있다.

문을 열면 8면에 서가처럼 단이 만들어져 경전을 꺼내볼 수 있도록 하였다.

보존이 잘 되어있고 8각형 모양의 특이한 구조수법이 돋보이는 국내 유일의 자료로,

경전의 보관처인 동시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귀한 불교 공예품이다.

대장전을 창건할 당시 함께 제작된 것인지

조선 현종 11년(1670) 대장전을 새단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문화재청)

 

용문사 윤장대

 

 

 

밖에서 바라보아 오른쪽의 윤장대.

 빗살무늬 창살이 정교하게 꾸며져 있는 모습이다.

 

 

 

왼쪽으로 보이는 윤장대는 보수 중이었다.

 

 

 

이 윤장대의 문에는 꽃무늬 창살이 새겨져 있어 무척이나 아름답다.

 

 

 

 윤장대를 돌리면 경전을 읽는 것과 같아서

번뇌가 사라지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지금은 삼월삼짓날 하루만 돌릴 수 있고,

성보박물관에 있는 모형을 이용하면 언제든 돌릴 수 있다.

 

 

 

 

 

 

대장전 바닥의 목재는 오래된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오는 느낌이 나지만

다만 보수 중이어서 더 아름답게 느끼지 못해 아쉬웠던 용문사 윤장대...

 

 

보물로 가득한 대장전

 

 

 

 

대장전 앞에 용문사의 문화재들에 대한 설명판이 더 서 있다.

성보박물관에서 보았던 것들에 대한 설명이다.

 

 

 

 

참 많은 문화재들을 간직한 용문사라는 걸 다시금 느끼면서...

 

 

 

원래 고승들의 진영을 모시는 진영당

 

 

 

명부전도 만나고...

 

 

 

종무소도 만나고...

 

 

 

이렇게 아름다운 꽃들이 있어 더 반가움을 느끼고...

 

 

 

응진전도 만나고...

 

 

 

동향각도 만나게 된다.

 

 

 

이렇게 돌아온 길을 뒤돌아서 보기도 하고...

 

 

 

감동의 도가니였던 대장전의 뒷모습을 바라다보기도 하면서...

 

 

 

극락보전 가는 길에 내려다본 용문사 가람.

지형을 이용해 만든 사찰이라 여러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 모습...

 

 

 

대광명전 한 단 위에 위치한 원통전을 만났다.

 

 

 

원통전 내부

 

 

 

극락보전

극락보전은 원통전에서 한 계단 위에 조성되어 있다.

'극락세계는 이렇게 높은 곳에 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극락보전 내부

 

 

 

왼쪽부터 원통보전, 산신각, 극락보전

 

 

 

대장전과 강원을 바라보며...

 

 

 

보광명전 뒷모습

 

 

 

강원과 해운루, 석탑 등...

 

 

 

보광명전 앞에서 바라본 해운루

 

 

 

 

예천 용문사 자운루 (醴泉 龍門寺 慈雲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76호 자운루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짚신을 만들어 조달했다고 한다.

 

 

 

자운루 현판

 

 

 

자운루

 

2층 누각집으로 고려 의종 20년(1166)에 자엄대사가 세웠으며,

조선 명종 16년(1561) 고쳐 짓고, 광해군 13년(1621)에도 고쳐 지었다.

 그 뒤 1979년에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안쪽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곳에서 짚신을 만들어 조달한

신방의 기능을 수행한 호국의 장소이기도 하다.

건축 양식으로 보아 조선 중·후기의 기법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 행사가 있을 때 법 공양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문화재청)

 

 

 

오색 연등 사이로 바라본 대장전

 

 

 

자운루와 마주보며 한 단 위에 자리한 대장전

 

 

 

자운루에서 바라본 대장전. 오른쪽은 영남제일강원

 

 

 

왼쪽부터 강원(영남제일강원), 자운루(한 단 아래로 내려간 건물), 범종각, 해운루

 

 

 

보광명전

 

 

 

위 왼쪽부터 극락보전, 가운데의 보광명전, 마당의 석탑

 

 

 

회전문

 

 

 

용문사를 나오며...

 

 

 

용문사 회전문과 해운루

 

 

 

용문사 비석군

 

 

하루에 세 사찰 돌아보기 그 세 번째 사찰이었던 예천 용문사...

대장전과 그 안의 보물들로 인해

문경의 두 사찰들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온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용문사'라고 하면

은행나무로 유명한 양평의 용문사를 떠올리기 쉽지만

경북 예천의 용문사를 보게 되면

아마 생각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2015.05.24(일)

 

[예천 용문사]

054-655-1010

경북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