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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남 통영] 118년만에 복원되었다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1 - 통영 세병관 외

[경남 통영] 118년만에 복원되었다는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1 

- 통영 세병관 외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삼도수군통제영은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도수군을 총괄하는 본영이다.

삼도수군통제영은 1604년(선조 37년)에 창건되었고,

1895년(고종 32년) 갑오개혁 때 각 도의 병영과 수영이 없어질 때까지

조선 수군의 총본부였던 곳이다.

일제강점기에 들어 이곳 통제영의 관아들을 없애고

그 자리에 학교와 법원, 검찰청, 세무서 등이 들어서며

민족정기 말살정책이 펼쳐졌다.

 

그랬던 삼도수군통제영이 118년만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옛 통제영 터에 세워진 인근 학교들을 이전시킨 후

백화당, 12공방 등 주요 관아 30여동과 부속시설, 서포루 및 성곽 등을 복원했단다. 

복원 작업은 2000년부터 2013년까지 13년간에 걸쳐 진행 되었다고 한다.

 

내가 맨처음 세병관을 찾은 것은 중학교 때였다.

통영으로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당시에는 세병관만 있었던 것 같다.

이후 수항루가 들어선 것까지는 보았었는데,

이번에는 복원된 건물들까지 보게 되었다.

 

복원 전 모습 

 

 

복원 후 모습 

 

 

(출처: 통영시청 문화관광 자료)

 

그동안의 복원사업을 끝내고 올해 3월 1일에 유료로 문을 연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통영이란 지명은 통제영에서 나왔다고 한다.

 

 

 

 사적 제402호 통영 삼도수군통제영 설명.

최초의 통제영은

제1대 수군통제사인 전라좌수사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에 설치했던 본부이고,

이후 290여년간 조선 수군의 총본부였던 곳이 이곳 통영 삼도수군통제영이다.

 

 

 

종합안내도 

 

 

매표소

 

 

 

향토역사관 앞에서 본 수항루.

예전에는 통제영 주변에 주차장이 없어서 골목길이 주차장이 되었었는데,

향토역사관 아래에 넓은 주차장이 마련되어 편리해졌다.

 

 

통영시 향토역사관

향토역사관은 다음을 기약하고 통제영을 향하여... 

 

 

 

 

 

매표를 하고 망일루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망일루를 지나 안으로 오른쪽에 위치한 수항루.

1987년에 복원된 누각으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은 곳이란다.

원래의 위치는 한빛은행 자리에 세운 건물이었다고 하며 일제강점기 때 사라졌단다.

 

《통영지》에 의하면,

수항루는 1677년에 57대 수군통제사인 윤천뢰가

충무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으나 소실,

1699년 74대 수군통제사인 이홍술이 재건,

1755년 117대 수군통제사인 이장오가 부분적으로 고치고 단청,

일제강점기 때 파괴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다음은 충무공 이순신 연구가 이종학님이 찾은 자료이다.

1983년 11월, 일본의 옛 사진집에서 찾아냈는데,

'일본을 이긴 것을 기념하는 수항루'라는 제목을 붙인

통영시의 수항루 사진이 실려 있고,

설명문에는

"제국(일본) 군함 니타카가 지난 번 한국 남해안을 순항할 때

중좌 히데시마가 찍은 것.

수항루는 통영시 해안에 있었는데,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의 근거지로서

이순신이 일본 수군을 격파하고 항복을 받았다고 하며

 ‘受降樓’라는 큰 현판을 달고서 지금까지도 한국 사람들이 크게 자랑한다”

라고 적혀 있단다.

 

(두산백과 인용)

 

 

 

 

망일루를 지나 진행 방향을 기준으로 왼쪽에 위치한 산성청.

통영성을 지키는 산성중군 등이 근무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가운데로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

끝에 지과문이 있다.

 

 

 

 

망일루를 지나 진행 방향 오른쪽에 위치한 좌청.

군관과 사병이 대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두룡포기사비

 

통제영 내 좌청 안쪽의 두룡포기사비 (頭龍浦記事碑).

제6대 수군통제사였던 이경준의 치적비이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2호

통영시 세병관(국보 제305호) 경내 수항루 뒤편 팔작지붕 비각 안에 있는 비로,

제6대 수군통제사였던 이경준이 수군 본영을 이곳에 건설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는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형태로,

머릿돌에는 구름과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어서 받치고 있는 모습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이 비를 세우게 된 경위와 이경준 통제사의 가문과 약력,

통제영을 두룡포로 옮기게 된 이유, 이경준의 인간됨과 업적 등이 실려 있다.

조선 인조 3년(1625) 제 19대 수군통제사인 구인후가 세운 것으로,

비문을 지은 사람과 글씨를 쓴 사람 등은 비 아랫부분의 비문이 닳아 알 수 없다.

원래 통제영 남문 밖 바닷가 큰 길에 서 있었는데

광무 고종 8년(1904)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96년 비받침돌을 새로 만들고 비각을 세워 보호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언덕 위로 보이는 통제사비군

 

 

세병관으로 오르는 길... 지과문에 다다른다.

양쪽에 깃발이 꽂혀 있는데, 다 의미가 있더라니...

 

 

 

초요기(각 군영 신호기)

 

 

 

표미기(출입 관련 기)

 

 

지과문에서 망일루를 내려다 보며...

좌우로 좌청과 산성청, 가운데 앞쪽이 망일루,

망일루 왼쪽 안으로 수항루이다.

 

 

지과문에서 세병관을 바라보며...

 

 

통영 세병관 (統營 洗兵館)

 

국보  제305호

세병관은 조선 선조 당시 이경준(李慶濬) 제6대 통제사가

두릉포에서 통제영을 이곳으로 옮겨 완공한 통제영의 중심건물이다.

이 건물은 창건 후 약 290년 동안 3도(경상·전라·충청도) 수군을 총 지휘했던 곳으로

그 후 몇 차례의 보수를 거치긴 했지만

아직도 멀리 남해를 바라보며 당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건물 중 최고의 건물이다.

앞면 9칸·옆면 5칸 규모의 웅장한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건물 내부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는데,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위로 홍살을 세웠고,

후면 내진주열 중방 하부에는 머름을 설치하여 분합문을 달고

중방 위로는 판벽으로 마감하여 무인도(武人圖)를 그렸으며

천장은 소란반자를 설치하였다.

세병관은 17세기초에 건립된 목조단층 건물로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고,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그 역사성과 학술적·예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 : 문화재청)

 

 

경복궁경회루(국보 제224호), 여수 진남관(국보 제304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는 통영 세병관

 

 

워낙 큰 건물이라 한 장면에 담기가 쉽지 않은 세병관

 

 

 

 

 

 

세병관 편액

 

중앙 뒷면에 약 45㎝ 정도의 높은 단을 설치하여

궐패(闕牌)를 모시는 공간을 마련한 세병관(국보 제305호)

 

 

옆에서 바라본 세병관의 모습

 

 

 

 

 

 

 

 

 

 

 

 

 

석인

 

 

 

 

 

 

 

 

통제사비군

 

 

역대 통제사들의 공덕을 기리는 비들이다.

시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58기의 비들을 이곳에 모아 세워 두었다.

 

2014.03.02(일)

 

[ 세병관 ]

055-650-4590

경남 통영시 문화동 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