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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일본

일본 대마도 국분사

일본 대마도 국분사

 

수선사에서 나와 잠시 길을 걸어 국분사에 도착했다.

국분사는 나라 시대에 전국 중요 지역에 건립한 호국 기원 사찰이라고 한다.

이 주변은 조선통신사가 머물렀던 숙소가 있던 곳이다.

국분사 제일 꼭대기에는 이완용 매국 친필비가 있어 치욕의 역사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국분사 산문은 이즈하라 지정문화재이다.

이곳은 조선통신사 객관이 있던 곳이다.

 

산문 옆에 붙어 있는 설명판과 비.

 

<국분사 산문>1807년에 건립된 네 기둥 문으로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숙소인 객관이 건립될 때 함께 건립되었으며

이즈하라 지정 유형문화재이다.

비용은 막부 하사금과 대마번 공비로 충당했다. 

에도 후기의 건축양식을 볼 수 있다.

객관은 명치시대에 해체되었다.

 

<조선통신사막부접우노지>비는 조선통신사의 국서를 접수하기 위해

일본 본토에서 통신사 접반사가 대마도로 건너와

임시 거처를 13군데 마련했던 집이 있었던 곳에 세워진 것이다.

문화 8년(1811년) 제 12회 조선통신사는 에도까지 가지 못하고

이곳 대마도에서 국서를 전달하고 돌아갔다.

 

화양관지

화양관은 1811년 조선통신사 객관으로 신축한 건물을 말한다.

당시의 객사, 화양관은 해체되어 없어졌다.

국분사 앞 조선통신사 객관 터...


 

조선 통신사

 

조선 전기에도 일본에 통신사를 보냈는데,

특히 1590년 파견된 통신사는

일본을 통일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공을 탐지할 목적으로 파견된 중요한 특사였다.

조선에서는 황윤길을 정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파견하였다.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정사와 부사는 조정에 서로 다른 보고를 하게 된다.

정사 황윤길은 '왜적들이 틀림없이 쳐들어 올 것이다'라는 주장을 하였고,

부사 김성일은 '침략의 징조를 발견하지 못하였는데,

황윤길이 장황하게 아뢰어 민심을 동요시킨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에 조정에서는 김성일의 의견을 선택하고 침략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국서에는 이미 명을 침략한다는 ‘정명가도’가 있었으니... 

 

임진왜란 후 잠시 외교관계가 끊겼다가

에도막부의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다시 쓰시마번을 통해 재개되었다.

조선 후기 통신사는 1607년 국교 회복을 시작으로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중 조·일 국교가 수립된 뒤 1636년부터 1811년까지 9회의 통신사는

에도 막부의 새 쇼군이 취임할 때마다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보장받기를 원하는 막부의 요청으로

취임을 축하하는 것을 형식적인 임무로 삼아 파견되었으나,

그 외에 그 당시 정치·외교적인 현안에 관련된 협상을 하였다.

조선 후기의 통신사는 전기와 달리 조선과 일본이 함께

청나라라는 신흥 대륙 세력을 견제하는 한편,

서로를 독립국으로 인정하고 우호 관계를 유지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정사, 부사, 종사관인 세 사신을 중심으로

300~500명에 이르는 대규모 인원이 파견되었으며

이 통신사 일행을 맞이하는 데

일본 측에서 1,400여 척의 배와 1만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고

접대비는 한 번(藩)의 1년 경비를 소비할 정도로 성대하였다.

조선통신사의 일본 방문은 양국의 국가적인 큰 행사였던 것... 

 

일반적으로 조선 전기는 통신사, 후기는 조선통신사라고 일컫는다.

 

국분사 입구 담장

 

옆문을 들어서서 왼쪽으로 보이는...

귤 두개가 시선을 끈다.

 

종루...

 

종루와 국분사 법당

 

종루

 

국분사 본당 건물

 

 

 

세월이 흐르면 이렇게 새로운 납골당이 생겨나고...

 

오래된 비석들, 주인조차 없어지는 것들은 이렇게 널부러져 그 자리를 떠날 준비를 한다.

 

높이 오르며 내려다본 국분사 경내와 이즈하라시의 모습

 

가장 높은 곳에 이완용 친필 매국비가 있다. 

들어가는 입구 안쪽 것이 이완용 매국비...

 

국분상태랑(고쿠분 소타로)은 조선총독부 인사국장, 궁내부 차관까지 했던 인물로

1905년 을사늑약 조약문 초안을 작성해 통역했던 사람이다.


종3위훈1등 국분상태랑지묘.

국분상태랑을 추모하는 글을 남긴 비~

왼쪽 세로로 '후작 이완용 서'라는 이완용 친필...

매국의 극치를 보여준다.

 

비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본 모습이다. 오른쪽 옆면...

 

비 뒷면...

 

왼쪽 옆면...

 

역사는 그렇게 흘러갔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려가는 길에 본 우물과 양동이의 모습.

묘에 수시로 물을 뿌려주기 위함이란다. 이끼가 잘 자라도록...

 

나카라이 토스이 관에 가는 길에 본 주변 동네 모습이다.

 

하수로가 잘 정비된 모습.

어느 곳이든 이런 깔끔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 다리를 지나면 곧 다음 코스인 나카라이 토스이(소설가) 관에 도착하게 된다. 

 

2012.02.2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