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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청주 중앙공원1(의병장 한봉수 송공비, 망선루, 척화비)

청주 중앙공원1(의병장 한봉수 송공비, 망선루, 척화비)

 

충북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 2가에 위치

용두사지 철당간과는 바로 이웃에 있는 공원이다.

공원인지라 어김 없이 노인분들이 많이 보이는 모습...

 

 

의병장 한봉수 송공비

구한말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을 모아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일본군에게 연전연승한

한봉수 의병장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단다.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청주 망선루(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0호) 

고려시대 청주관청의 하나로 관리들이 머무는 숙소인 객관 동쪽에 있던 취경루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려 공민왕 10년(1361)에 홍건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기념으로 청주에서 과거시험을 치르고 이곳에 방을 써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세조 7년(1461)에 수리하였고 한명회가 현판을 ‘망선루’라 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다시 고쳐서 근세에까지 유지되다가 1923년에 제일교회로 이건되었으며, 2000년 12월 중앙공원으로 옮겨 세웠다.
앞면 5칸·옆면 3칸이며, 나무로 지은 2층 건물이다.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가장 화려한 팔작지붕으로 누각형식이다. 현재 1층은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게 되었지만, 이 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청주 척화비(충청북도  기념물 제23호)

척화비는 조선 후기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온 백성에게 서양세력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고자 서울과 전국 교통요지에 세우도록 한 비이다.
이 척화비는 1976년 2월 29일 석교동 노상하수구 뚜껑으로 있던 것을 발견한 것으로, 직사각형의 모습이며, 윗부분의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앞면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라는 글을 새겨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의지를 밝히고 있다.  "양이침범(洋夷侵犯) 비전즉화(非戰則和) 주화매국(主和賣國)"인데 이 척화비는 윗부분이 깨어져 '洋'자와 '則'자가 없어졌다.
척화비를 세운 시기는 고종 8년(1871)인데, 후에 임오군란(1882)이 발생하고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자 일본공사의 요구로 모두 철거되어, 지금은 이처럼 몇 기의 비들만 곳곳에 남아 있다. (문화재청)

 

 

 

서원향약비

 

 

 

천주교 청주 순교 현양비

 

 

 2011.05.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