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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성주 심산 김창숙 생가

성주 심산 김창숙 생가

 

 

경상북도 기념물 제83호

경북 성주군 대가면 칠봉리 504(사도실마을)

 

김창숙(金昌淑, 1879~1962)

한국의 유학자, 독립운동가, 정치가이며, 교육가, 성균관대학교의 창립자이다.

경북 성주(星州) 출신으로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이다.

일제 강점기의 유림 대표로 독립운동을 주관하였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활약하였으며,

1945년 광복 이후에는 야당정치인으로 활동하였다.

'김우(金愚)'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일찍이 유학을 배워 조예가 깊었고,

1909년 성명(星明)학교를 창립하였으나 '

을사5원흉 매국성토사건(乙巳五元凶賣國聲討事件)'으로 피체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림 대표들이 서명한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진정서를 가지고

상해로 건너가 우송한 후 임시정부에 참여하였다.

1919년 광복운동모금중 체포되었다.

그 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임정의정원(臨政義政院) 등에 관계하다가

1927년 상하이 일본 영사관에 체포되어 다렌(大連)에서 복역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곧 유도회를 조직, 재단법인 성균관대학을 창립하여 초대학장으로 교육에 힘썼으나,

이승만 정권에 반대하여 수난을 겪으면서 유도회의 분쟁에 말려들었다가 병사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중장을 받았다. (인터넷 백과)

 

성주 사도실마을의 김창숙 생가.

마을 입구의 효부비, 청천서원 앞길을 지나 몇m 들어가지 않아 청천서당과 김창숙 생가를 만나게 된다.

 

김창숙 생가 입구

 

사랑채

 

 

 

 

안채 

 

 

2011.02.04(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