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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 浮石寺 祖師堂)

영주 부석사 조사당(榮州 浮石寺 祖師堂)

 

무량수전에서 삼층석탑을 끼고 오르는 길 150여m를 오르면 부석사에서 또 하나의 국보를 만날 수 있다.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에 옆지기는 가기를 포기하고... 나는 혼자서 오르막길을 올랐다.

추위가 극에 달한 날이라 그런지 아무도 오르는 이가 없어 기실 무서웠으나 용기를 내어...

조사당 오르는 길에 내려다본 부석사 절집 설경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부석사 조사당은

 

국보 제19호(1962.12.20 지정)

경북 영주시  부석면 북지리 151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다. 또한 조사당 앞 동쪽 처마 아래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였다는 전설도 있다.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문화재청 자료)

 

 

 

 

조사당과 취현암.

조사당 옆(동쪽) 건물은 취현암으로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한 곳.

 

국보 제46호인 조사당 내부의 벽화는 떼어 따로 보관 중이다.

유물관에 둔 모양인데 공개를 하지 않아서 보지 못하였다.

 

 

 

조사당 지붕 일부

 

 

선비화

전하는 말에 의하면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조사가 중생을 위해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이곳 조사당 처마 밑에 꽂았더니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는 것이다.

이황 선생이 이곳을 찾아 선비화에 대한 시를 짓기도 했다고 하며, 학명은 골담초.

 

 

 

조사당에서 내려와 다시 무량수전을 찾았다.

그곳 보살님에게 벽화에 대하여 문의하였더니 지금은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유물관에 보관 중인데, 개장이 되지 않은 상태라고...

대신 무량수전 벽에 모조품이 걸려 있었는데, 아쉬운대로 우선 그걸 보라는 것이었다. 

진품에 대해서는 아쉬운 마음을 가지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2010.12.31(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