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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2010.12.31.금)

고달사지에서 나와 원주 방면 중앙고속도로를 통해 영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눈덮인 치악산의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왔다.

 

 

제천을 지나고 단양도 지나고 경상북도 영주 땅에 닿았다.

몇 번이나 다닌 길이라 대충 아는 길이지만 내비도 풍기IC에서 빠져나가라는 신호를 보낸다.

오늘의 목적지 중 하나인 부석사 가는 길,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에 잠시 들르기로 하였다.

지난 답사 때 사진을 찍지 못하여 아쉬웠던 기억이 있어서였다.

지난 번엔 무덤에 들어섰을 때 불빛이 잠시 번쩍 하더니 꺼져서 얼마나 놀랐었는지...

외진 무덤... 그 곳에서 무엇인가가 나타난다면~~~으으~

잠시 오싹함마저 느꼈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감지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이번엔 아예 바깥 문이 닫힌 모습이 보이는게 아닌가!

잠시 의아해하며 다가가니 그냥 닫아둔 것..  아마도 퇴색방지를 위해서가 아닐까~~

슬며시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다.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

 

사적 제313호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1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은 구조가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으며

벽화는 봉황, 새, 구름, 역사등이 다채롭게 조화를 이룬 소중한 유물로서

삼국시대의 회화, 종교관, 내세관 등 신라와 고구려의 문화교류 이해에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1985년 1월 문화재관리국과 대구대학교가 함께 발굴 조사한 이 벽화고분은 학술적·문화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고분의 축조년대는 고분의 현실(玄室) 남쪽 벽에 쓰여진 기미중묘상인명(己未中墓像人名)이란 글씨를 통하여 대략 539년 쯤으로 추정되고 있다. 내부 구조는 연도가 마련된 석실분(石室墳)으로서 연도를 통해 들어가면 시신을 모신 현실(玄室)이 있고, 이 현실의 동쪽으로 관(棺)을 올려 놓았던 관대(棺臺)가 비교적 높게 마련되어 있고, 아울러 규모가 작은 보조 관대도 현실의 서북 모서리에 마련되어 있었다. 현실의 크기는 동서 3.5m, 남북 약 2m로 네벽은 위로 갈수록 약간씩 각을 줄여 쌓고 천장은 두장의 판판하고 큰 돌을 올려 완성하였다. 벽화는 천장을 제외한 내부의 모든 벽면과 관대의 측면까지 채색화(彩色畵)를 그렸고, 특히 연도의 좌우벽에 힘이 센 장사상(壯士像)을 그렸다. 특히, 연도 서쪽벽의 뱀을 손에 감고 있는 장사상은 이 무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고분은 벽화나 구조로 보아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축조된 고대 신라의 고분벽화로 추정되어지며, 이 고분에 있는 벽화를 통해서 우리나라 삼국시대 회화(繪畵)는 물론 당시의 종교관·내세관, 그리고 고구려와의 문화교섭 등을 이해하는 귀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이 벽화고분 가까운 곳에는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발굴조사단에 의해 빛을 보게된 신라시대 고분인 사적 제 238호 어숙묘(於宿墓)가 있다.(영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자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닫힌 문이 의아함을 느끼게 하였다.

 

안내글

 

가까이 가서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무덤 입구, 벽화가 반긴다.

 

왼쪽 부분부터 차례로 돌아가며 몇 컷~

 

이곳 벽화에서 가장 선명한 부분인 뱀을 쥔 장사상의 모습이 역동적이다.

 

 

 

 

 

 

 

 

 

 

 

 

 

문을 다시 닫아주고 발길을 돌렸다.

 

2010.12.31(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