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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터키,그리스+UAE

2010.07.31(토) 터키 6(카파도키아~앙카라)

2010.07.31(토) 터키 6(카파도키아~앙카라)

 6:30 모닝콜이었으나 일찍 일어나다.

시차 때문인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새벽에 깨어서 한동안 잠 못 들곤 하였다.

 

 카파도키아는 깊은 우물이란 뜻. 카파도키아 전 지역이 자연 유산이었다.

이곳에서 감동하고 또 감동하였는데,

카파도키아는 세계에서 꼭 가 봐야 할 자연 경관 10곳 중 하나란다.

이곳은 기원전 15세기에서 기원전 12세기에 히타이트 왕국의 중심지였단다.

  

- 데브렌트(상상의 골짜기, 낙타계곡). 

낙타바위는 터키여행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곳.

낙타모양의 그 바위가 보여서 그걸 드는 폼으로도 한 장 ㅋ~

이 사진이 없으면 카파도키아를 여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나요~ 뭐 그렇다나..

그래서 낙타계곡에서 낙타바위를 손으로 드는 폼으로 증명사진을 ...

 

 

낙타바위를 크게 찍었다.

 

 

재미 있게 생긴 바위들...

 

 

바위의 모습이 희한해서 배경으로 하여 한 컷 더...

 

 

탑도 아닌 것이 탑 같아 보이기도 하고... 바위가 참 오묘하게도 생겼다.

 

 

   

- 파샤바 계곡에선 세쌍둥이 버섯 모양, 고양이 바위,

석굴교회, 수많은 버섯 모양 바위 등을 보고 감탄을~  

고깔을 씌운 듯 버섯이 즐비한 듯~ 계곡이지만 평지가 계속되는 곳에도 이런 바위들이... 

 

  

온 산이 자연의 신비를 머금고 있는 모습.. 어찌 그냥 가리~

 

  

고양이 바위 외 다양한 모습의 바위들...  

 

 

오직 자연에 의해 이런 형상들이 생겨났다니 신기하고 또 신기하다.

 

  

산 아래서부터 꼭대기까지 신비로운 모습들...

 

 

좀 더 가까이...

 

  

버섯 모양도 가지가지...

 

 

석굴교회 바로 옆에 이어지던 바위산. 이건 또 다른 모양이다...

 

  

사다리가 놓여진 석굴교회 앞에서... 무서워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 하고...

 

 

외로운 세쌍둥이 버섯바위를 배경으로...

 

 

세쌍둥이 버섯바위

 

 

세쌍둥이 버섯바위를 비롯한 많은 버섯바위들...

 

 

신기한 바위들의 계곡...

 

 

석굴 교회 가는 길에...

 

 

파샤바 계곡의 수많은 바위들... 기이한 모습에 사람들은 혼을 뺏겼다.

 

카파도키아의 지층은 수억년 전에 화산 폭발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만들었고,

그 후 풍화작용에 의해 침식이 되면서 단단한 부분만 남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영화 '스타워즈'의 촬영지로 쓰였단다.

만화 '스머프'에서 스머프 마을도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고...

 

 

- 에센테페. 나란히 서 있는 세 개의 돌 위에 얹힌 돌판은

누군가가 일부러 얹어 놓은 듯 보였다. 후와~

달리는 차 안에서 보면서 감탄을...

 

- 괴레메 계곡. 석굴교회만 해도 30곳 이상이나 되었고...

석굴교회 사이사이로 현대인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곳...

금방이라도 사람이 나올 것만 같은 석굴들, 그 사이사이에 지어진 집들,

그들의 어울림이 신비롭기만 하다.

현재의 괴레메 지역..

 

 

기이한 돌들이 군데군데 보이고, 계곡이 둘러싼 공간에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섞여 있다.

물론 요즘은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지만...

사진 가운데 멀리 보이는 곳이 우치사르.

 

 

 

동굴교회와 숙소, 집들이 어우러져 있다. 

 

  

 

카파도키아에는 100여 개의 교회가 있고, 그 중 150여 곳에 벽화와 부조가 남아 있다고 한다.

대부분 기독교인들이 은신처로 사용하기 위해 바위를 뚫거나 동굴을 파내려갔는데,

그 곳에 교회와 주택이 만들어진 것. 이곳은 터키 기독교의 아픈 역사의 현장...

카파도키아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아랍인들로부터 도망쳐 온 기독교도의 삶의 터전이었으나

6세기 후반 이슬람 왕조의 침공을 받게 되자

신자들은 동굴이나 바위에 구멍을 뚫어 지하도시를 건설해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살았단다.

 

 

- 계곡마다 기이함으로 가득하다

 

 

 

 

작은 휴게소에서 잠시 쉬면서 바라본 계곡의 모습 몇 장... 괴레메 마을이 보인다.

사진 왼쪽 언덕 위에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가 보인다. 쫀득한 맛이 독특했던...

멀리 산 아래 로즈밸리도 보이고...

카파도키아는 전 지역이 보배롭다.

  

 

- 우치사르(우치히사르, 위치히사르).

비둘기집으로 가득하다는 바위산. 그곳에 숨어든 기독교인들.. 

과거 온통 응회암으로 뒤덮여 있었던 이 곳에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방어를 목적으로 굴을 파고 살았으나

부식작용으로 인해 오늘날과 같은 벌집모양의 바위산이 만들어졌단다.

암튼 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한 곳이었다. 

멀리서 본 우치사르와 산 아래 동네를 배경으로...

 

 

우치사르 아랫쪽에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한 컷

 

 

가장 큰 바위 꼭대기 부분...

 

 

찻길을 사이에 두고 우치사르 건너편 연꽃모양처럼 만들어진 모래 언덕...

모래 언덕이라니 아름다운 모양이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단다. 모래 언덕이라고는 하지만 굳어 있는 상태라 괜찮단다.

 

   

 점심으로 항아리 케밥 먹은 날.

터키의 케밥 중 가장 유명하다는 항아리 케밥..

항아리에 고기와 야채 등을 넣고 세 시간이나 은근하게 구운 요리인데,

야채에서 나온 물 때문에 자작한 국물이 사알짝 보일 정도로 생긴 촉촉한 요리였다.

항아리 속의 내용물인 야채와 고기가 어우러져 국물이 생긴 모양...

겉에서 보이는 식당은 조금 별로인 듯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가니 그렇게 넓고 깨끗했다.

역시 겉만 보고 평가해선 안 된다 ㅎㅎ... 

항아리에 쇠고기와 가지 등을 넣고 불에 3시간 은근히 굽는다나...

 

 

구운 요리라고는 하지만 항아리를 구운 거라 구운 맛이 느껴지지 않는...

내용물인 고기가 부드럽고 가지 등 야채도 고기와 잘 어우러져서 맛이 좋았다. 

터키 요리 중 최고로 손꼽을만한 음식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지하도시 데린구유.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이란다.

이 지하도시는 기독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1960년대에 발굴이 되어 세계를 놀라게 했던 지하도시 데린구유..

한 수탉이 구멍에 빠졌는데 나오지 못하자 마을 주민이 구멍을 뚫고 들어가 보니

어마어마한 지하도시가 있었다고 한다.

이 지역의 지하도시 형성 시기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다고 하며,

히타이트시대 즈음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것이라는 추정을 한단다.
이곳은 기독교인들이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들어와 교회,

교육기관 등을 축조하기 시작할 무렵 지하도시로 본격적으로 확장되었단다.

예전에 36개나 되는 이런 지하도시가 연결되어 있었다니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금은 두 곳을 개방하고 있다고...

이곳은 지하 7층까지 개방을 하는 모양이었고, 실제론 더 깊게 파고 살았다고 한다.

우리는 지하 4층까지 내려갔는데, 밀어서 닫던 둥근 돌문이 군데군데 보였다.

포도주를 만들던 흔적도 보이고, 침실, 부엌, 우물, 미로와 같은 여러 통로 등도...

예배당은 가장 넓게 자리하고 있었다.

종교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다! 

데린구유 지하도시 표지판

 

 

데린구유 지하도시 입구. 평범해 보이는 이런 곳에 그렇게 깊고 깊은 거주공간이 있다니...

 

 

돌문으로 외부의 침입을 차단하였단다.

 

 

이렇게 깊은 우물도 있고... 

 

 

미로를 따라 이동하며..

 

 

예배당에서...

 

  

미팅홀, 이렇게 넓은 기도 공간도 있고...

 

 

미로처럼 이리저리 엮여진 길도 많고... 

 

  

지상과 통하는 공기구멍(불빛처럼 보이는 곳)도 보이고... 

데린구유는 미로의 지하도시다.

지금은 데린구유와 카이마클르 두 곳이 개방되고 있단다.

 

 

 이 지역에도 호박밭이 많았고, 감자밭이 다른 곳보다 특히 많았다. 

이곳도 끝없는 들판이 이어졌다.

이곳에선 들판에서 그냥 기르는 듯 보이는 젖소들이 더러 보였고, 양들도 가끔 보였다.

산은 민둥산이 많았는데, 풀이 자라지 못하는 흙 때문이란다.

도중에 용암으로 생긴 절벽이 보였는데,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데린구유에서 120km 정도를 더 가니 소금호수가 나왔다.

면적 1500나 되는 거대한 소금호수였다. 우와~~~ 호수 전체가 소금이라니... 

그것도 계속 생산되는 소금호수라니... 터키 반도가 오랜 옛날엔 바다였던 모양.. 

우리는 맨발로 소금을 밟기도 하고, 물이 보이는 곳까지 가 보기도 하였다. 

핑크빛 소금물빛은 소녀의 수줍은 뺨처럼 고왔다. 

소금호수... 실제로 보면 옅은 핑크빛이다.

터키 전역에서 이 지역의 소금을 60% 이상 소비한다니 대단한 곳이 아닌가~!

 

 

소금덩어리들. 핑크빛을 띤 모습... 

호수 물이 있는 곳 가까이 가 보면 실제로 핑크빛을 띠고 있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앙카라로... 소금호수에서 앙카라까지는 약 130km.

들판엔 천막집들이 가끔 보였고, 해발 1100m나 되는 곳에 위치한 평원이 계속되었다.

앙카라 외곽 지역에 오니 7~8층 정도의 아파트군이 많이 보였다.

앙카라의 옛이름은 앙고라. 이스탄불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곳이다.

해발고도 800m에 위치한, 케말 파샤에 의해 정해진 터키의 수도다.

1차 대전 종반 무렵, 현재의 터키 지방은 오스만 술탄의 지배하에 있었으나

그리스군의 침공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터키 민족주의 지도자 케말 파샤(후의 케말 아타튀르크)는

그의 저항운동 본부를 위험한 이스탄불 대신 앙카라에 세웠고,

1923년 터키 공화국 수립시 앙카라를 터키의 수도로 정했다.

계획된 도시라 더 깔끔해 보였다.

 

 

 

 앙카라 한국공원. 한국전쟁 때 희생당한 740여명의 참전용사기념탑이 있는 곳이다.

보잘 것 없는 자그마한 공원.. 그네들은 어린 나이에 먼 이국땅 한국에서 그렇게 죽어갔고

지금 터키 사람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라고 부른다.  피를 나눈 형제... 

방명록이 있길래 이름 석자를 기록하고 성금함에 조금 넣었다. 

지금 그 유공자들은 대부분 이미 고인이 되었고, 살아 있는 분들도 대부분 어렵게 산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희생하며 뛰던 독립군은 오래전 고인이 되었고,

그 후손들은 대부분 어렵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생각나서 같이 마음이 아팠다.   

한국공원 터키 참전군인 위령탑. 한국의 탑을 본떠 만들었다.

 

 

'여기 한국에서 헌신한 토이기 용사묘로부터 옮겨온 흙이 담겨 있노라.'

멀리 이국 땅에서 누구를 위해 젊음을 바쳤는가~ 터키 젊은이들은...

아픈 가슴 쓸어내리며 방명록에 서명하고 작은 정성을 보탰다. 

 

 

한국전쟁 참전 기념탑(토이기는 터키를 말함).

 

 

 

 아타투르크의 묘는 외관만 보며 지났다.

높은 언덕에 커다란 건물이 있었는데, 그 속에 무덤이 있는 모양이었다.

터키의 영웅이라 그런지 사방에서 잘 보이는 높은 언덕에 만들어 놓았다.

거대한 본관 건물이 사람들을 압도하는... 

유물전시관과 박물관이 같이 있으며, 일년 내내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다고 한다.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

 

 

 앙카라의 숙소는 깔끔했다. 식당도 넓고 깨끗..

어딜 가나 깨끗함이 돋보이는 터키... 참 인상깊은 나라라는 생각을 또 했다.

오늘 본 경이로운 것들.. 공유 차원에서 또 문자메시지로 휘리릭~

서툰 표현이지만 참 유쾌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