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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남 광양] 매화랑식당 / 수월정 / 섬진진터 석비 좌대 / 섬진강 유래비 / 두꺼비상

홍쌍리매실가 청매실농원에서 내려와
점심식사를 하러 갑니다.
'매화랑식당'이라는 곳입니다.
 
 

매화랑식당

메뉴 : 참게탕, 메기탕, 재첩국, 재첩비빔밥, 재첩파전 등
주소 : 전남 광양시 다압면 섬진강매화로 1507
전화 : 061-772-6649, 010-5300-6649
휴무 : 둘째, 넷째 월요일
 

매화랑식당은 광양매화마을 맛집이라고 하네요.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펜션과 카페도 같이 운영하고 있고요.
 
 
 

매화랑식당의 메뉴들입니다.
가격표를 찍지 못 했네요.
참게탕과 메기탕은 대(大) 기준 60,000원,
재첩국 10,000원, 재첩비빔밥 15,000원,
재첩파전 20,000원 등으로 기억됩니다.
 
 
 

섬진강은 재첩으로 유명하지요.
재첩 고장에 왔으니
재첩비빔밥(15,000원)과 재첩국(10,000)을 주문했습니다.
재첩비빔밥이 맛있었습니다.
콩나물과 무생채를 밥과 함께 추가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그 또한 괜찮았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매실장아찌 외 반찬들도 다 맛있었고요.
여럿이 갔다면 참게탕을 먹을 수도 있었겠지만
둘이어서 가볍게 먹었답니다.
 
 
 

식사 후 식당을 스윽 돌아봅니다.
방송을 많이 탄 집이로군요.
'한국인의 밥상', '생방송 투데이', 남진, 김종민도 다녀갔네요.
 
 
 
식사가 바로 나왔기에 식사 후에도 30분 정도 시간 여유가 있어
섬진강을 바라보러 나갔습니다.

섬진강을 바라봅니다.
봄이 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풍경입니다.
문득 김용태 시인의 생가가 있는 임실 덕치면을 지나가는 섬진강이 생각났습니다.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임실 덕치의 섬진강~
봄이 되면 늘 그리워하는 곳 중 한 지역입니다.
그곳에도 어김 없이 봄이 오고 있겠지요.
 
 
 

섬진포구 주변에도 포토존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대나무와 어우러지는 싱그러운 곳입니다.
 
 
 
 
 

수월정, 수월정 유허비, 섬진진터 석비 좌대, 섬진강 유래비, 두꺼비상

 

섬진진터 수월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현재의 수월정은 1999년에 광양시에서 정비한 것입니다.
옆의 비는 수월정 유허비고요.
 

수월정

광양 출신으로 조선 선조 때 나주목사를 지냈던 정설이 만년을 보냈던 곳입니다. 
규모는 정면 1칸, 측면 1칸.
지붕 위에 기와를 깔고 용마루 중앙에 찰주를 설치하였습니다.
송강 정철은 '수월정기'를 지어 수월정의 풍경과 아름다움을 노래했다고 합니다.


수월정 유허비

정설이 부친인 정옥천의 유업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입니다.
송강 정철에게 '수월정 유허비'라는 비명을 받아 세웠으며
'정옥천 유허비'라고도 합니다.
현재의 비는 1971년에 후손들이 다시 세운 것이라 합니다.
 
 
 

섬진진터 석비좌대
섬진진터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장군이 군사를 매복시킨 곳입니다.
1705년에 섬진진에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되었고
당시 수군장교였던 별장의 공적비 좌대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돌두꺼비 좌대 4기가 남아있습니다.
예전에는 17기가 있었다고 하네요.
 
 
 

섬진강 유래비
섬진강 이름이 두꺼비 전설에서 유래된 것임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조형물입니다.
화강석으로 두꺼비 기단과 나룻배 모양을 조각하였습니다. 
 
섬진강의 유래
본디 섬진강의 이름은 모래내, 다사강(多沙江), 두치강으로 불렸는데,
고려초부터 섬진강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고려 우왕 11년(1385년)에 왜구가 강하구에 침입했을 때
광양 섬거(蟾居)에 살던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이곳으로 몰려와 울부짖자
이에 놀란 왜구들이 피해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으로 불렀다고 전해진답니다.
옛부터 주요 통행로인 섬진나루에는 1705년에 수군진(水軍鎭)이 설치되었고
1895년에 진이 폐쇄될 때까지 수백명의 병사와 여러 척의 병선이 주둔하였다고 합니다.
지금 이곳에는 당시 수군장교였던 별장의 기념비 좌대로 사용했던 돌두꺼비 좌대 4기가 남아있습니다.
 
 
 

섬진진터 광장의 두꺼비상입니다.
두꺼비 등 위에 처녀가 업혀 있는 모습입니다.
이에 대한 설화가 전해옵니다.
 
옛날 두치강(현 섬진강) 하류 두치진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던 착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집에 나타난 큰 두꺼비가 불쌍하게 보여
밥을 주고 잠을 잘 집을 지어 함께 살았습니다.
3년이 지난 어느 여름날 밤, 섬진강 상류에 홍수가 났습니다.
그 여파로 온 동네가 물에 잠기고 집, 사람, 가축들이 떠내려갈 때 
이 처녀도 강물에 휩쓸려 내려갔습니다.
이때 그 두꺼비가 나타나 처녀를 등에 업고
온 힘을 다해 강기슭을 향해 헤엄쳤다고 합니다.
처녀는 목숨을 건졌지만 두꺼비는 너무 지친 나머지 죽고 말았다고 하고요.
처녀는 두꺼비를 강기슭 동산에 묻어 주고 매년 제사를 지냈다고 합니다.
동네 사람들은 처녀가 두꺼비를 타고 도착한 곳을 두꺼비 나루라는 뜻으로 '섬진(蟾津)'이라 부르고,
강은 '섬진강(蟾津江)'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섬진진터까지 돌아본 후 버스로 돌아갑니다.
이제 구례 산수유마을로 가게 됩니다.
구례 산수유마을은 어떤 풍경일까요?
 
(2025.03.28.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