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집안(集安, 지안)의 광개토대왕릉비
(2024.07.06. 토)
여행 넷째날이다.
오늘은 집안(集安, 지안)의 고구려 유적들을 만나는 날.
광개토대왕릉과 비, 장수왕릉으로 불리는 장군총, 국내성 성벽, 환도산성, 피라미드형 고분군~
고구려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이 이는 아침...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밤새 비가 내렸는지 땅이 젖어 있다.
참 지독하게 미운 날씨!
식사 후 잠시 밖을 서성거리다 차 번호판을 보니 '吉'자가 쓰여 있다.
길림성(지린성)을 나타내는 모양이다.
어떤 차에는 '辽'자가 쓰여 있는데, 요령성(랴오닝성)을 나타내겠지.
아침 식사 후 우리가 묵은 호텔에 있는 쇼핑센터에서 잠시 구경.
침향 상품이다.
별 관심은 없었지만 들어주긴 해야겠지......
쇼핑센터에서도 머릿속은 여전히 백두산에 대한 아쉬움이었네.
이제는 잊고 고구려 유적 볼 생각을 해야지...
길을 이어간다.
통화에 새로 조성되었다는 용흥리 상업지역을 또 지나가네.
인구 200만 도시이니 큰 병원도 보이고...
훈강에 놓인 다리를 건넌다.
10:10, 통화 남 톨게이트~ 집안(지안)으로 향한다.
이곳에도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우리나라보다 더 북쪽 추운 지역이라 그런지
옥수수가 아직은 많이 자라지 않았네.
아침부터 흐리던 날씨가 집안쪽으로 갈수록 더 흐려지더니
집안 톨게이트 도착할 때는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집안 톨게이트 '集安' 글씨를 겨우 알아보겠네.
집안(集安, 중: 지안)
중국 길림성(지린성) 통화시(퉁화시)의 현급시.
인구는 약 23만 명.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 자강도 만포시와 마주하고 있다.
고구려의 두 번째 수도인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당시 고구려의 정치 · 경제 ·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 22년(서기 3년)에
졸본(홀본, 흘승골성, 오녀산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한 후
제20대 장수왕 15년(427년)에 평양성으로 천도하기까지
425년간 고구려의 수도.
집안에서는 고구려의 옛 도성이었던 국내성 터를 포함해
광개토 대왕릉비와 능, 장군총, 각저총, 무용총, 귀족의 고분 등을 만날 수 있다.
2004년에 환인현의 오녀산성과 함께 고구려 전기 도성과 고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집안에도 기차가 다님을 알 수 있었고...
고구려 유적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콩닥콩닥~
여러 유적들 중 맨 먼저 광개토대왕릉비와 능을 만나러 간다.
한때 대륙을 호령했던 위대한 광개토대왕~
사후 남겨진 흔적을 보고 느끼러~
광개토대왕(374~412, 재위 391∼412)
고구려 제19대 국왕으로 이름은 담덕(談德).
제18대 국왕인 고국양왕(故國壤王)의 아들.
18세에 보위에 올랐으며 39세 때 사망할 때까지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정복 군주로 고구려의 전성기를 열었다.
광개토대왕을 부르는 이름이 많은데,
공식적인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 등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사기>에서는 줄여서 광개토왕이라 표기.
여기에다 대왕이라는 존칭을 붙인 표기가 바로 광개토대왕,
현재 일반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명칭이다.
재위 시의 칭호는 영락태왕(永樂太王, 영락대왕 永樂大王),
'영락(永樂)'은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최초의 연호로 알려져 있다.
11:15, 통화 남 톨게이트를 통과한지 1시간만에 광개토대왕릉비 주차장에 도착.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 쓰인 광개토대왕릉비 매표소와 입구.
중국 국가 최고 경관 등급인 5A(AAAAA)를 나타내는 표시가 붙어 있다.
비가 그칠 줄을 모르고 내리네.
우의에 우산까지 쓰고서 돌아보게 된다.
광개토대왕릉비와 왕릉 가는 길 입구
광개토대왕릉비와 능 관람 안내도와 설명을 보고 입장하게 된다.
비각 바로 인근에도 안내 설명이 되어 있어 다시 읽어 보고......
측면 담장을 돌아 정면으로 왔다.
유리 보호각에 씌워져 보기는 좀 불편하지만
오래 보존하기 위함이라니 어쩔 수 없네...
1928년에 지안의 관리이던 류텐청이 2층 높이의 전각을 처음 만들었고,
1982년에 새로 단층 누각으로 변경했으며,
현재는 유리로 사방을 막은 상태다.
광개토대왕릉비 (廣開土大王陵碑)
(광개토대왕비, 광개토왕릉비, 호태왕릉비, 호태왕비, 영락대왕비)
만주 지안(集安)시 퉁거우(通溝)에 있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비석.
우리 역사에서 발굴된 가장 큰 비석.
414년에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이 부왕인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높이 약 6.39m, 너비 1.34~2m, 무게 약 37t의 큰 비석.
제1면 11행, 제2면 10행, 제3면 14행, 제4면 9행으로 전체 44행,
총 1775자가 새겨져 있다.
그 중 확인된 한자가 1590여 자.
고구려 건국 신화, 초기 왕계, 호태왕의 영토 개척 공적, 능묘의 관리 제도 등 기록.
비문에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어서
마지막 세 글자를 따서 호태왕비(好太王碑)라고도 한다.
고구려 국왕 중 유일하게 확인된 완전한 묘호로 판단된다.
1면부터 한 바퀴 돌아가며 찍어 본다.
유리 보호각 안에서는 촬영금지여서
나는 안에 서 있고 남편이 유리 보호각 밖에서 찍었다.
기념은 해야지 싶어서......
보호각 밖에서 찍으니 꼭대기까지 제대로 된 모습이 안 나오네.
일반적으로 비문의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제1부는 시조인 추모왕(鄒牟王)이 북부여(北夫餘) 땅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비류곡(沸流谷)의 홀본(忽本) 서쪽에 도읍을 두고 나라를 세웠다는
건국 설화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유류왕(儒留王)과 대주류왕(大朱留王)을 거쳐
17세손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즉 광개토왕으로 왕실의 계보가 이어졌다는 점,
그리고 광개토왕의 생전 업적에 대한 찬양과 더불어
갑인년(甲寅年)인 414년 9월 19일에 왕이 승하한 뒤 시신을 왕릉으로 옮기면서
비를 세워 왕의 공적을 적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제2부는 ‘널리 영토를 개척하였다〔廣開土境〕.’라는 시호의 문구처럼
생전에 활발한 군사 원정을 통해 주변으로 고구려의 세력을 크게 확장하였던
광개토왕의 정복 사업에 대해 기록한 부분이다.
정복 기사는 형식상 8개 기년기사(紀年記事)를 연대순으로 나열하고 있다.
제3부에는 "수묘인연호(守墓人烟戶)"라는 표현과 함께
왕릉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수묘인들의 목록이 기재되어 있다.
이 목록에는 각각의 지역명과 그곳에서 징발될 수묘인들의 가호(家戶) 수가 적혀 있다.
수묘인들은 여러 지역에서 가호 단위로 징발되어 국내성으로 이주된 주민들로 보이며,
국가는 이들이 장기적으로 거주하면서 수묘 임무를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거처할 집과 경작할 토지 등 생활 기반을 마련해 주었을 것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실제 광개토대왕릉비는 보호각 안에 있고 공안이 지키고 있어서
전체 모습을 다 담지 못 함을 아쉬워하며
오래 전에 울진 봉평 신라비 야외 비석공원에서 본 광개토대왕비 복사본을 올려 본다.
빗돌 재료와 색깔이 다르니 실제와는 많이 다르지만
울진 여행 중이라면 한 번쯤 돌아보아도 좋겠다.
방문 당시에도 그 거대함에 입을 다물지 못 했었는데,
이번에 실제 집안(集安)에 가서 보니 더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다.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국립중앙박물관 자료 캡처)
2024년 국립중앙박물관 1층 역사의 길에 디지털 광개토대왕릉비가 세워졌다.
첨단 디지털 기술로 원본의 가치와 감동을 오롯이 담았다고 하니
시간 내어 찾아보아도 좋겠다.
보호각 밖 담 뒷벽에는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석문, 보호각 변천사, 동상 등이 전시되고 있다.
해동 제일 고비로 불린다는 광개토대왕릉비, 보호각 변천 모습, 석문, 탁본 등
여러 자료들을 보고 느끼고 왕릉으로 간다.
보호각 앞 아래를 바라보니 휴식처 같은 곳이 보이는데,
비가 내리니 미끄럽기도 하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통과...
광개토대왕비와 비각 옆면을 바라보며 한 장 찍고 이동한다.
이렇게 밖에서 비의 전체 모습을 확인하네.
한편으로는 갇혀 있으니 얼마나 갑갑할까 싶기도 했다.
광개토대왕릉을 향해!
비에서 360m 정도 떨어진 곳에 왕릉이 있으니
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
방문 당시에 길 옆으로 개망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고,
우산 모양으로 축축 늘어진 나무들이 도열해 있는 모습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느릅나무와 버드나무의 접목 나무라고 하던데,
수양느릅나무라고 해야 하나...?
비가 내려서 걷기는 불편했으나
잎들이 더 초록초록 아주 싱그러움이 묻어나는 풍경이다.
제단유적과 왕릉 가는 길
산봉우리처럼 보이는 저곳이 광개토대왕릉.
한 시대를 호령했던 왕의 무덤인데,
우리나라의 왕릉에 비하면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느낌...
관리가 제대로 되었더라면 더 웅장한 모습으로 반기지 않았을까?
현재 우리 국토가 아닌 것에 대한 애달픈 현실을 마주하고
통탄을 금치 못 하네...
광개토대왕릉(廣開土大王陵, 태왕릉太王陵)
고구려 제19대 왕 광개토대왕(호태왕)의 왕릉.
계단은 돌무지로 쌓인 묘실, 고분의 높이 14m.
고분의 동쪽 길이 62.5m, 북쪽 길이 68m, 서쪽 길이 66m, 남쪽 길이 63m.
계단 8개, 21층. 묘실은 8계단에 위치.
묘역에서 대량의 기와, 연꽃무늬와당 등의 유물 출토.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이라 새긴 벽돌이 출토되어
태왕릉이라 부른다.
* 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 : 태왕릉이 산악처럼 평안하고 굳건하기를 바란다.
풀이 나 있지만 돌을 쌓아 만든 무덤임을 알 수 있으며
무덤 아래에 돌아가며 큰 돌이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이는 계단을 따라 오르면 꼭대기에서 왕릉 입구를 만나게 된다.
왕릉 아래의 태왕릉 안내문.
여러 나라의 글로 소개되어 있다.
왕릉 입구로 오르는 계단
고구려에서는 하늘과 가까운 곳에 시신을 안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석곽이 이렇게 높은 곳에 있다.
태왕릉은 적석묘(積石墓)의 형태이지만 돌들이 많이 무너져 내린 상태이고
무덤 위에 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어 온전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이곳이 현재 우리 땅이 아니라 제대로 된 연구를 할 수 없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능 꼭대기 쯤에 석실이 있다.
크고 편평한 돌 2개(왕과 왕비의 석관상)가 나란히 놓여 있다.
그런데 관리가 너무 허술하다.
이렇듯 허술한 관리에 실망한 광개토대왕이
지하에서 통탄하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중국은 우리 역사 지우기에 급급하고
이런 유적들을 돈벌이 목적으로만 쓰는 건 아닌가 싶다.
석관 위에 한국돈, 달러, 중국돈이 놓여 있는 모습.
지키는 사람이 있고 촬영금지라길래 멀찍이서 얼른 당겨서 한 장...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 봉묘석(封墓石).
석실 밖 아래에 잘 다듬어진 봉묘석을 한 군데 모아 놓았다.
오랫동안 능원을 지탱해온 돌들은 능의 역사를 잘 알고 있겠지...
이들이 벙어리여서 넘 안타까운 현실.
집안박물관에서 만난 태왕릉 능원 상상 복원 모형이다.
적석총의 형태이고 지붕 위에 건물을 얹은 모습.
잘 보존이 되었더라면 정말 어마어마한 무덤의 모습이겠지......
능 앞에서 주위를 바라본다.
압록강 건너 북한이 지척이다.
집안 시 너머 보이는 산쪽이 북한 자강도 만포시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무용총(춤무덤)과 각저총(씨름무덤)이 있을 텐데,
저쪽 어디쯤일까?
방향을 정확히 알지 못 해 짐작만 해본다.
집안의 고구려 유적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면
특별한 답사팀을 따라가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우리 역사를 은폐하려는 중국에서 허락할 수 있을 지는 의문...
광개토대왕릉에서 사방을 바라본 모습.
주변 모습을 더 잘 기억하려고 동영상도 하나 찍고
광개토대왕릉에 안녕을 고하고 내려간다.
아~ 위대한 정복자 광개토대왕이여,
강인했던 고구려의 기상이여,
찬란했던 우리 역사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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