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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중국

[백두산+고구려 유적] 1. 인천~중국 심양(선양)~통화

오래도록 별르기만 했던 백두산 여행이다.

백두산 분화설 등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가

세월 다 보내고 이제야...

 

백두산에 가기 위해 이용하는 공항으로 연길, 대련, 장춘, 심양이 꼽힌다.

요즘은 연태를 거쳐 백두산 공항 가는 항공편도 생겼다.

어떤 코스로 잡을까 고민을 했다.

백두산만 가려면 백두산(창바이산) 공항을 이용해도 좋겠고

윤동주의 고향 용정을 경유하려면 연길 공항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지만

가는 김에 고구려 유적지는 꼭 들러야겠다 싶어서 

두 코스로 압축했다.

하나는 대련-집안-백두산,

다른 하나는 심양-집안-백두산.

전에 대련-여순 여행을 할 때 대련공항을 이용해 보았으니

이번에는 육상 이동이 조금 짧기도 한 심양쪽을 택하기로 했다.

대련 여행을 하지 않았더라면 거리가 조금 더 멀더라도

아마 대련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단동을 지나며 압록강 단교, 위화도를 조망할 수도 있으니...

 

6~9월이 백두산 여행 적기라 하여 시간 되는 때를 택해 예약을 하였다.

한 번에 천지를 본 사람은 잘 없다고 하는데

날이 좋아야 할 텐데...

 

인천-심양-통화-백두산(서파)-이도백하-백두산(북파)-집안(고구려 유적)-심양-인천

 

백두산 가는 길 (출처 : 산악투어)

 

백두산 코스 (출처: 노랑풍선 자료)

 


 

제1일차: 2024.07.03.(수)

(인천 - 심양 - 통화)

 

백두산 여행 출발일이다.

아침부터 날이 흐리니 천지를 못 볼까봐 신경이 좀 쓰였다.

버스 도착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다.

1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하니 아직 여행사 직원이 나오지 않았고

10시 미팅 시각이 다가오니 일행들 모두 모였다.

중국 여행 시에는 비자가 필요한데,

패키기 여행 특성상 단체 비자를 끊게 되어 그룹으로 묶였다.

전체 여행 인원이 15명이고

초등 동창 친구들과 온 8명과 다른 분들 7명으로...

우리팀 7명은 친구들과 온 남자 4, 혼자 오신 여자 1, 우리 부부 2.

나는 혼자서는 잘 못 다니는데,

혼자 오신 분을 보니 참 용기가 있다 싶었다.

내가 1번이라 중국 입·출국시에 단체비자를 제출하는 역할.

7명 중 내가 나이가 제일 적어서 당첨된 모양이다.

짐을 부치고 출국 수속을 밟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중국남방항공이고 122 게이트 탑승이라

셔틀 트레인을 타고 이동했다.

 

 

 

인천공항박물관을 만났다.

안을 들여다보니 한국의 가구와 서예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잠시 쉬어가며 이런 문화를 접하는 것도 참 좋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CZ 682편.

122 게이트를 확인하고

시간이 남아서 게이트 주변에서 기다리는데,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공항수문장교대식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공항수문장교대식.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시간에 이런 볼거리를 제공해주니 고맙고...

외국인들이 모여들여 사진도 찍고 영상도 찍는 걸 보니

흐뭇하기도 하고...

 

 

 

시간이 흘러 보딩 타임이 다가오고 비행기를 타게 된다.

처음 타 보는 중국남방항공기~

국적기가 아니라 괜히 걱정이 좀 되긴 했다.

 

 

 

여전히 날은 흐리다.

연이어 흐리다는 예보에 희망이 줄어들고...... 

한참의 기다림 끝에 13:17, 드디어 인천공항 이륙이다.

걱정과는 달리 매끄럽게 이륙해서 다행...

 

 

곧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중국어가 나오더니

다음에는 영어 방송이다.

대충 알아들었다.

한국을 오가는 비행기에서 한국말이 안 나온다는 데 분통이 터졌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우리 역사를 지우려 하더니

기내에서조차 우리 말을 안 하나 싶어서 머리에 뿔이 날 지경...

위급한 상황이라도 벌어져서 우리말을 들을 수 없다면?

아찔하다는 생각!

 

* 동북공정(東北工程)

중국사회과학원 중국변강사지연구센터(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가 동북지역 3개 성과 연합하여

동북지역의 역사와 현실의 문제를 연구하기 위하여 2002년부터 시작한 대규모 중국정부프로젝트.

이칭으로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동북공정 [東北工程]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공정은 현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기 위한 연구 사업이다.

그러나 엄연히 고조선, 고구려, 발해는 우리의 역사다.

특히 집안은 옛 국내성이 있던 곳으로 고구려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다.

광개토대왕릉과 비, 장군총(장수왕릉으로 여겨짐), 국내성 성벽, 환도산성 등~~~

우리의 옛 역사가 어찌 중국 변방의 역사일 수가 있겠는가!

 

 

 

출발할 때는 날이 흐렸는데,

잠시 하늘을 날았을 뿐인데 딴 세상이 펼쳐지고 있다.

파아란 하늘 사이 두둥실 흰 구름 위를 한참 떠간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자연의 세계~

그 신비로움에 풍덩 빠진다.

혹시 천지를 볼 수 있으려나~ 하는 희망도 가져보며......

 

 

 

이륙한지 30분쯤 되었을까 싶은데 간식이 나온다.

찰밥, 요플레, 물.

약식 비슷한 찰밥이 우리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온 거라 감사히 먹고...

 

 

 

연신 밖을 내다본다.

혹시라도 북한이 보이나 싶어 뚫어지게 바라보았지만

서해 멀리 떨어져서 가는 모양이다.

배가 다니는 게 보이더니

중국땅 어디쯤인지 이제 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도를 보니 대련(다롄)에 속한 섬들인 것 같다.

 

 

 

내륙으로 들어왔다.

산과 들, 더 많은 집들이 눈에 들어온다.

점점 심양에 가까워지고 있는 모양이다.

 

 

 

착륙 직전~

푸른 숲과 작물들이 싱그러운 모습으로 맞아주는 심양...

아쉽게도 이곳 날씨도 흐리구나!

 

 

 

심양(선양)에 도착했다.

간자(簡字)로 '심양(沈阳)'이라 쓰여 있다. 

바닥에 물이 흥건한 걸 보니

한바탕 비가 내린 모양이고

지금도 조금씩 비가 뿌리고 있다.

'아~ 천지를 볼 수 있으려나?'

 

 

 

심양공항의 북릉(청소릉) 사진

 

 

비자 제출하고 중국 입국 수속을 밟는데

공항 직원들 일하는 게 영 매끄럽지 않았다.

두 사람이 붙어서 이리저리 몇 번을 체크하고서야 통과시킨다.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거나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나가니

우리를 인솔해줄 이** 가이드가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은 종일 이동하는 날이다.

여기 심양에서부터 통화까지 4시간 또 이동해야 한다.

우리를 태울 차는 37인승 버스~ 널널했다.

중국식 리무진이라고 한다.

이렇게 중국 땅에서 우리 일행 15명의 백두산 여행이 시작되었다.

 

 

 

양(선양)에 온 걸 환영한다는 문구.

우리가 읽는 한자로는 심양인데, 선양으로 부른다.

북경베이징으로 부르듯이...

 

 

심양(沈阳, 선양 Shenyang )

현재 중국 요령성(辽宁省-간자로 요녕성, 랴오닝 성)의 성도.

한때 고구려 땅이었던 심양은 당나라 때 중국 영토가 되었다.

17세기 초 만주족의 누르하치가 후금(後金. 1616-1636)을 세운 이후 

1625년에 심양을 도읍으로 삼았다.

1634년에는 성경(盛京)(만주어: 묵던)으로 개칭.

후금의 2대 칸이자 청나라 2대 황제인 홍타이지는

1636년에 국호를 청(淸. 1616-1912)으로 바꿨다.

이후 청 3대 황제 순치제 때 수도가 베이징으로 옮겨졌지만

심양은 옛 왕조의 수도 특권을 받았고

1657년에 봉천부(奉天府, 펑텐)로 이름지어졌다.

1950년 이후 선양이라는 이름을 되찾음.

 

청나라의 첫 도읍지인 심양에 도착하여 이동 중이다.

심양이라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조선 인조 굴복(삼전도의 굴욕)하게 한

청태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심양고궁과 청태종(숭덕제, 홍타이지)의 능묘가 심양에 있다.

삼전도의 굴욕으로 조선은 청나라와 조공책봉관계를 맺게 되어

이곳 심양으로 조공을 바치러 오고 청 황제의 책봉을 받아야 했다. 

소현세자봉림대군이 이 먼먼 땅까지 볼모로 잡혀오기도 했다.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아픈 우리 역사~ 

마음 한 켠이 아려져 온다.

 

 

 

휴게소까지 2시간 정도 이동하는 중이다.

엄청난 옥수수밭이 이어진다.

옥수수는 주로 수출한다고 한다. 

날이 계속 흐리니 마음도 흐리다.

 

 

 

2시간 정도 이동 후에 휴게소(남잡목. Nanzamu Service Area)에 도착하여 잠시 쉬어간다.

가이드님이 사 준 소시지~ 편식을 좀 하는 내 입에는 별로다.

휴게소 한 켠의 랴오닝성 고속공로도를 담아본다.

심양을 중심으로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네.

생각보다 중국의 고속도로가 잘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달리는 차들도 사람도 별로 없네.

고속도로 운영비가 나올까 싶을 정도로 한산하다.

여기는 공산국가니까 너도나도 이용하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와는 다른 모양이다.

길림성(지린성) 통화(퉁화)지는 아직 2시간 정도 더 가야한단다.

잠시 허리를 펴고 날씨가 좋아지길 빌어 본다.

 

 

 

창밖을 계속 응시하며 가는데 붉은 지붕의 집들이 나온다.

붉은색 지붕이 푸르른 산하와 잘 어울린다.

이 가이드님 말에 의하면 이 붉은 지붕의 집들은 주로 여진족의 후예들 집이라고 한다.

누르하치의 후손들인가~~~

 

 

 

산 중턱 돌산에 붉은색 글씨가 새겨져 있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의 산들에 크게 새겨진 글씨들을 보는 기분이다.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는 바람과는 달리 날은 계속 흐리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통화(通化市)에 가까워지고 있다.

압록강의 지류인 혼(훈)강인 모양이다.

고구려비류수로 불리었다는......

아~ 고구려!

 

 

 

통화(퉁화,  通化)

중국 길림성(지린성)의 도시.

2개의 시할구, 2개의 현급시, 3개의 현이 있는 통화시 전체 인구는 200여만 명.

시내 한가운데를 혼(훈)강이 흘러간다.

고구려국내성집안(集安, 지안)에 있었고,

구한말 신흥무관학교(1911년 개교. 독립군양성기관.  경희대 전신)

통화시 류허현의 싼위안푸 조선족 진(三源浦朝鲜族镇)에 세워졌었다.

고구려의 기상과 독립운동의 발자취가 서린 곳~

그 땅에 발을 디딘다.

 

 

 

금화대주점(金花大酒店)

심양 공항 출발 4시간 정도 걸린 18:00경,

통화시에 위치한 저녁 식사 장소에 도착했다.

규모가 아주 큰 식당이다.

결혼식도 열리는 곳인 모양인지 단이 마련된 모습...

재중교포가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한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어서오세요.'

쉬운 우리글이 보여서 반가움...

 

 

단체비자를 받은 우리 7명이 앉은 자리.

푸짐한 먹을거리들~ 우리 입에 잘 맞는 음식들이었다.

특히 고추잡채가 넘 맛있었다.

모두들 배불리 잘 먹었다.

통화술도 제공되었는데, 술 못 하는 내게는 그림의 떡...

 

 

통화시 훈강(비류수)

저녁 식사 후 숙소를 향해 가는데,

훈강을 보며 간다.

강변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 가이드님이 비류수라고 알려준다.

고구려의 건국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임을 알게 되어 더 반갑다.

'이 지역도 고구려 땅이었겠지...'

하면서 고구려의 광활했던 영토를 그려보게 된다.

 

 

 

불빛 화려한 이곳은 최근에 들어 조성한 용흥리 상업 지역이라 한다.

예전에는 초저녁이면 상업시설들이 모두 문을 닫았는데, 

통화도 몇 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은 저녁에도 영업을 한단다.

숙소 들렀다가 나중에 한 번 나와볼까 했는데

옆지기님 반대로 무산됨.

 

 

 

숙소(曼特酒店)

저녁 7시 넘어서 도착한 숙소.

이 가이드님이 숙소 이상유무를 체크하려고 방마다 다녀간다.

트윈룸이고 하루 묵어가는데 별 불편함은 없었다.

실내는 찍지도 않았네.

잠만 자고 내일은 새벽같이 길을 나서야 하는 상황이라

훈강 야경과 새로운 상업지역을 방문하려던 일은 포기하기로 한다.

'내일은 날씨가 좋아야할 텐데'

하는 생각만 하며 잠이 들었다.

 

(2024.07.03. 백두산 여행 첫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