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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성주] 성주 역사테마공원: 쌍도정, 비석원, 성지문, 치성, 성주사고, 관천대

성주역사테마공원 쌍도정과 성지문 (2022.11.17.목)


 

지난 11월 중순께 제사 참석차 내려간 김에 부모님을 찾아 뵈었다.

부모님을 위한 한우
비싼 고기여서였을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이 맞네.

 

 

 

 

집안 행사차 내려간 김에 몇 곳 들르기로 하였는데,

그 중 한 곳이 성주 역사테마공원.

이곳에서 쌍도정, 비석원, 성주읍성 북문(성지문), 성주사고, 관천대, 치성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인근의 청사(서석준)도서관, 성주성당 등도 함께 돌아보았네.

 

 

성주 역사테마공원

성주읍성은 고려~조선(1380~1591년)시대까지 축성 및 개축을 거쳐 조성된 둘레 2.1km 규모의 읍성이다.

현 위치에 성지문(북문) 을 포함 270m 구간을 재현해 놓았다.

이곳에는 성주관아에 있던 전통연못의 정자인 쌍도정도 정선의 쌍도정도를 고증하여 현 위치에 재현.

조선시대 국가기록물(태조~명종실록)을 보관, 관리하던 왕실 수장고인 성주사고도 이곳에 재현.

성주읍 일대에 흩어져 있던 지발 관리들의 선정비 등 20기도 이곳에 모아 두었다.

조선 왕립 천문대인 관천대도 이곳에 만들어 놓았다. 

 

 

<쌍도정>

조선시대 성주관아의 객사인 백화헌의 남쪽 연못에 있던 정자.

정선이 그린 그림을 재현하였다.

정선의 그림 <쌍도정도>를 알게 된 뒤부터 쌍도정의 위치가 궁금하였었는데,

원래 성주읍 경산리 관운사 앞에 있던 연못으로 추정된다네.

2020년에 현재의 위치에 재현했네. 

쌍도정
나무만 심겨져 있는 섬과 정자가 있는 섬으로 된 쌍도정
쌍도정이 성주역사테마공원에 재현되어 있다.

 

 

비석원

성주읍 일대에 분포된 지방관리의 선정을 기려 세운 각종 공적비 20여 기를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관찰사, 목사, 현감 등의 애민선정비, 청덕선정비, 영세불망비 등의 비석이다.

현감, 목사, 관찰사의 선정비와 영세불망비 등 각종 비석들
비석원
성지문

 

성지문

성주읍성 북문이다.

성주읍성은 원래 둘레가 2.1km에 달했다고 한다.

고려 우왕 때(1380년) 토성으로 축성되었다고 하며

조선 중종 때(1560년) 석성으로 개축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 발발 한 해 전인 선조 24년(1591)에는 성문 건설.

'성주목읍지'에 따르면 읍성의 둘레는 6,755척으로 약 2.1.km.

당시 성주의  위상은 매우 높아서 영남의 큰 고을인 성주목이었다.

현 위치에 성지문(북문) 을 포함 270m 구간을 재현해 놓았다.

성지문 서쪽 성곽 아래로 분수광장과 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성주성당의 십자가가 눈에 띄네.
성지문
잔디광장의 참외 조형물

 

 

치성

성곽 시설 중 하나.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적을 진압하기 쉽게 만든 시설이다.

치성
치성에서 바라본 성곽과 성지문. 성주사고도 보인다.
치성에서 바라본 서쪽 성곽
성곽 아래로 운동시설과 쉼터가 보인다.
성밖 왼쪽으로 보이는 산허리 아래로 성주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성주 역사테마공원 잔디광장
성주 역사테마공원&nbsp;잔디광장
성주읍성 북문(성지문)과 성주사고

 

 

충헌각

김상헌(1570-1652)의 증손인 김창집(1648-1722) 선생을 추모하는 비각.

연잉군(훗날 영조)의 대리청정을 둘러싼 신임사화 때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상소, 소론의 격렬한 반대로 실패.

역모의 누명을 쓰고 거제도에 위리안치되었다가

이듬해 이곳 성주 요도에 이배되어 사사됨.

 

성주읍성 북문 (성지문)

 

 

성주사고(星州史庫)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장소.

조선 전기의 4대사고(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 중 한 곳.

조선 전기에는 내사고(內史庫)인 한양의 춘추관 실록각과 외사고(外史庫)인 충주사고(忠州史庫)에 실록 보관.

1439년(세종 21) 7월, 춘추관의 외사고 확충(성주, 전주) 계획 승인.

1445년(세종 27) 12월, 성주사고에 실록(태조, 정종, 태종) 봉안.

임진왜란 때 춘추관·충주·성주사고가 불타고 전주사고본(全州史庫本)만 화를 면함.

이후 내사고인 춘추관, 외사고인 마니산(강화)·묘향산·태백산·오대산의 5사고가 마련됨.

인조 대인 1623~1649 이후 마니산(강화)과 묘향산 실록을 정족산(강화)과 적상산(무주)으로 옮김.

그리하여 조선 후기의 5대사고는  춘추관, 정족산(강화)·적상산(무주)·태백산(봉화)·오대산(평창).

재현된 성주사고

 

 

관천대

천문 관측 시설, 간의대.

창경궁 관천대를 본보기로 하여 설치.

봉두산
성주 관천대
봉두산 아래로 성주이씨 재실 봉산재가 보인다.

 

임정사 가는 길
성주읍성 일부, 성주사고, 쌍도정 등이 복원되어 있는 성주 역사테마공원 (2022.11.17.월)

 

성주가 지금은 비록 작은 군부에 불과한 지역이지만

삼국시대 고분군인 성산동 고분군을 통해 성산가야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자태실(세종의 19명 왕자 중 18명, 손자인 단종의 태실)이 있는 곳이니

길지 명당터였음은 분명할 것이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성주사고를 두기도 한 지역이니

조선 세종대에는 성주의 위상이 대단했으리라.

재현된 성주읍성과 성주사고, 선정비들을 모아둔 성주 역사테마공원을 방문해 보니

옛 위상을 더 생생히 느끼게 되네.

(2022.11.17.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