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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종로]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직물공예 작품 관람 / 보자기 할아버지 허동화

이번 이태원 참사 소식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낍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다치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빕니다.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직물공예 작품 관람 (2022.10.26.수)


 

서울공예박물관

서울공예박물관

서울시에서 (구)풍문여고 건물 5개 동을 리모델링하여 건축한 한국 최초의 공립 공예박물관.

전통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시대와 분야를 아우르는 2만여 점의 공예품과 공예자료를 수집, 보유.

공예역사, 현대공예, 지역공예, 어린이공예, 공예 아카이브, 공예 도서관, 공예자원관리시스템,

공예작품설치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전시.

2021년 7월,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열었다.

 

서울공예박물관 터는 세종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집이 들어선 곳.

순종의 혼례를 위해 건축된 안국동별궁 등 왕가의 저택이나 왕실 가례와 관련된 장소.

수공예품을 제작하여 관에 납품하던 조선의 장인 '경공장(京工匠)'들이 존재했던 종로구의 중심 지역.

이 터에서 70여년간 학생들의 배움터로 존재했던 풍문여고 건축물을 리모델링하여 재탄생한 공예허브.

주변에 북촌, 인사동, 경복궁 등이 인접해 있어 다양한 문화적 경험이 가능한 장소.

 

(출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자료 발췌)

 

서울공예박물관 전시1동, 안내동, 전시3동. 이곳에 있던 안국동별궁은 사라지고... 풍문여고도 이전하고...
풍문여학교 내 안국동별궁 1960년대 모습 (출처: 서울공예박물관 홈페이지 자료)

서울공예박물관 터 더 자세히!

세종의 막내아들 영응대군이 살았던 곳으로 '동별궁(東別宮)'이라 했다.

세종이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이곳에서 장례를 치렀으며,

문종은 이곳 동별궁에서 즉위했다.

이후 성종의 형 월산대군, 혜순옹주, 선조의 막내딸 정명공주, 연령군이 사는 집이 되었고,

철종 때는 철종의 생부인 전계대원군의 사당이 있었다.

고종 때 왕세자(나중의 순종)의 혼례를 위해 별궁을 새로 짓고 '안국동별궁'이라고 했다.

1882년 2월, 왕세자 이척(순종)과 세자빈 민씨(순명효황후)가 가례를 올렸고,

1904년 순명효황후가 사망한 뒤 두 번째 황후인 황태자비 윤씨(순정효황후)의 가례도감이 이곳에 설치되었다.

1910년 이후 안동별궁은 이왕직(李王職) 소유가 되어 환관, 궁녀 등 나인들의 거처로 사용하였다.

* 이왕직(李王職): 일제 강점기에 이왕가(李王家)와 관련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

1936년에는 안동별궁의 부지 일부가 최창학과 민대식에게 넘어갔고,

민대식은 이 자리에 지금의 풍문여자·중고등학교의 전신인 휘문소학교를 세웠다.

1944년에는 풍문여학교, 1950년에 풍문여자고등학교를 개교했다.

학교에 남아 있던 안동별궁의 건물 가운데 2동은 1965년 8월 31일 운동장 확보와 교사 신축을 위해 해체되어

정화당은 서울 강북구 우이동(현 메리츠화재연수원), 경연당과 현광루는 경기 고양의 한 골프장으로 각각 이전했다.

풍문여자고등학교도 이전했고(2017년 3월 서울 강남구 자곡로로 이전. 남녀공학 풍문고등학교),

2021년, 이 자리에 서울공예박물관이 들어섰다. 

최창학에게 넘어간 터에는 지금 안국빌딩이 들어서 있다.

(출처: 다음백과, 조선의 숨겨진 왕가 이야기)

 

서울공예박물관 어린이박물관과 전시2동. 오래된 은행나무가 옛 역사를 말해주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네.
안내동과 전시3동
전시동 안내 (서울공예박물관 안내 자료)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동>

인포메이션, 박물관 가게와 카페로 이용된다.

서울공예박물관 안내동. 인포메이션, 박물관 가게와 카페로 이용.

 

 

<전시3동>

사랑방, 상설전시실, 보이는 수장고, 사무실로 이용됨.

2층과 3층은 사전가(허동화) 직물관인데,

보자기 할배 허동화와 박영숙의 컬렉션이다.

1976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해 온 허동화・박영숙 부부와

그들의 장남 허원실이 박물관에 기증, 기탁한 섬유 공예 자료 중심의 컬렉션.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앞의 허동화 박영숙 부부 동상
기증자 허동화 소개
'박물관이 된 학교'. 서울공예박물관 직물관 (구 풍문여고) 1/20 부분 모형. 이곳은 옛 풍문여고 자리다.

 

 

* 전시3동 1층 사랑방

전시3동 1층 사랑방

 

 

* 전시3동 2층 상설전시실

직물공예 전시

서울공예박물관 전시3동 직물공예 작품 관람

 

꽃과 새를 표현한 자수 화조도 10폭 병풍. 19~20세기. 비단에 자수
대나무를 표현한 자수 묵죽도 4폭 병풍. 20세기. 비단에 자수.
자수 매화도 병풍. 20세기. 비단에 자수. 10폭 병풍

 

화분이 그려진 자수 작품

 

가운데는 방석(극락왕생 바람. 봉항과 연꽃 무늬), 양쪽은 가마 장식
석류 모양 주머니 가마장식, 복숭아 모양 주머니 가마장식

 

일상 생활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물건에 소망과 염원을 담은 자수를 이용했다.
부귀다남 (富貴多男) - 자식 많이 낳고 행복하라는 뜻
오자등과(五子登科) - 조선 시대 아들 다섯이 과거에 합격하던 일을 말하며, 자녀의 성공과 부귀를 염원
수복강녕(壽福康寧) - 오래 살아 복을 누리고 건강하라는 의미

 

자수 연화당초문 현우경(불교경전) 표지.

 

자수 책가도 10폭 병풍. 19~20세기. 비단에 자수. 서책과 문방사우 등 책거리를 수놓아 만듦.

 

붓주머니
지수의 다양한 기법

 

 

 

* 전시3동 3층 상설전시실

'보자기, 일상을 감싸다' 전시.

'보자기 할아버지 허동화' 전시.

인문 보자기. 마에 그림. 19~20세기.
인문 보자기. 면에 그림. 19~20세기.

 

 

 

보자기 할아버지 허동화 이야기

자수품과 보자기 수집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자 사립박물관의 개척자 허동화
초기 수집품은 도자기였으나 전통 자수에 관심이 많던 부인 박영숙과 민화연구가 조자용의 조언으로 본격적으로 자수품 수집.
어릴 때부터 수집벽이 유별남. 수집 종류가 적고 발품 팔아 수집한다는 원칙을 따름.
황해도 봉산 출생. 육사 졸업. 동국대 법학과 졸업. 한전 재직. 1960년대에 자수에 주목.
1976년 한국자수박물관 개관.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역임. 2018년 평생 수집한 소장품 5,000여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 2018.05.24. 92세 별세
1976년 한국자수발물관 개관 - 사전자수박물관으로 이름 변경 - 1991년 논현동으로 이전, 다시 한국자수박물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의 교류

2012년 당시 국가브랜드 위원장 이배영(이하 님 존칭 생략)
평론가 어어령(2008)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2008)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2013), 명지대 총장 유병진(2013), 만해기념관 관장 전보삼(2014)

 

자수품과 보자기 관련 연구와 예술혼, 그리고 기증의 삶

자수품과 보자기 관련 학술대회 개최, 관련 연구 논문 발표. 다양한 작품 활동으로 예술가의 길을 걸음.
남프랑스 탁자와 의자. 허동화님이 자수 보자기 연구 및 작품 활동 시에 쓰던 탁자.
허동화님 작품. 위의 작품들은 캔버스 이용. 아래는 2000년대 브로치 작품.
위는 허동화 作 <대가족>. 아래는 20세기 이층롱
자수박물관 초기부터 국내외 기관에 다양한 수집 물품 기증. 2018년 5월 92세 별세. 평생 수집한 소장품 5,000여 점을 서울공예박물관에 기증.
3층 전시실 안쪽으로 조각보 만들기 체험 공간도 있어서 나만의 조각보 만들기를 체험할 수도 있다.
보자기 할아버지 사전가 허동화

이번 방문을 통해 사전가 허동화님의 열정적인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에 몰두한다는 건 참 멋진 일~

배울 점이 참 많았던 시간이었다.

이번에는 시간 관계상 전시3동만 돌아보았지만

다음 번에는 전시1동과 2동도 찬찬히 돌아보아야지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2022.10.2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