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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종로] 우리나라 처음 근대적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 서울 우정총국(현 체신기념관)

우정총국(체신기념관) (2022.10.26.수)


 

열린송현녹지광장과 서울공예박물관 제3동의 전시물들을 본 후

조계사 국화향기 나눔전을 보러 가는 길,

안국동사거리에서 인사동 입구를 지나 

한성도서주식회사터 표시를 만나고

이어서 조계사 못 미처에 있는 우정총국을 만나게 된다.

전의감과 도화서가 있던 곳도 이곳이다.

우정총국 옆  조계사 주차장 자리에는 민영환의 집이 있었다.

우정총국은 우리나라의 근대적인 우편 업무를 시작한 관청으로

그 이전에는 전의감의 부속 건물이었다.

현재 체신기념관으로 이용되고 있는 우정총국을 만나 본다.

 

안국동사거리 인사동길 입구의 커다란 붓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대한민국 전통예술 중심 인사동'이라고 쓰여 있다.
인사동 초입에서 조계사 방향으로 길을 건너 우정국로 조계사 못 미처에서 한성도서주식회사(출판사)터를 만난다.
이어서 우정총국시민광장과 우정총국
우정총국 이전에는 이곳에 전의감이 있었다.
도화서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안국동사거리의 도화서길이라는 아름다운 건물들이 생각나네.
우정총국 안내 설명

서울 우정총국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인 우편 업무를 시작한 관청.

1884년 4월에 일본과 미국에서 신식 우편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홍영식이 건의하여 만듦.

1884년 11월에 전의감의 부속건물을 수리하여 만든 청사.

1884년 12월에 우정총국 개업 축하 자리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민씨 정권을 제거하고 신정부를 조직하는 갑신정변을 일으킴.

(조선의 완전 자주 독립과 자주 근대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

갑신정변 때 본채를 제외한 부속 건물이 모두 불에 탔고,

우정총국의 우편업무도 중단됨.

1893년에 전우총국(電郵總局)이라는 이름으로 우편 업무 다시 시작.

1905년 이후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

해방 후 개인 주택.

1972년부터 체신기념관.

(우정총국 안내 설명 자료)

 

1972년에 우정총국을 중수하고 기념비를 세웠다.
우정총국. 전의감의 부속 건물에 우정총국이 들어섰다고 한다.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400년 된 회화나무가 옛일을 기억하리라...

서울 우정총국 (서울 郵征總局)

 

대한민국의 사적(지정일 : 1970.10.29).

 

조선 말기 우편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으로 1884년에 설치되어, 그해 10월에 처음으로 우편 업무를 시작한 곳이다.

당시 우편 업무는 중앙에 우정총국을 두고 지방에 우정국을 두는 구조체계를 갖추었으나, 갑신정변의 실패로 우정총국은 폐쇄되었다. 이후 1893년에 전우총국이라는 이름으로 우편 업무는 다시 이어졌고, 공무아문 역체국, 농상공부 통신부, 통신원 등으로 이어나갔다.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의 지붕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재는 우정기념관으로 쓰이고 있으며 기념관 기능에 따라 일부를 고쳐 옛날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못하다. 기념관 안에는 우표와 문헌,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이 건물은 처음으로 근대식 우편제도를 도입하여 국내·외 우편사무를 시작한 유서 깊은 곳으로 그 의의가 크며, 우정총국 개국식을 계기로 개화파가 갑신정변을 일으킨 장소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소재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9 (견지동, 우정총국)

 

(출처 : 문화재청)

 

중수기념비 설명에 의하면 우정총국 현판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휘호라네.
우정총국 안으로 들어서자 안쪽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우체국 우정총국'을 안내하는 문구가 나오고 있다.
오른쪽 방향부터~
세계의 우체통과 세계의 우편차
세계의 우체통 모습 장식품
1884년 4월 근대 우정제도의 도입
(위)우정집신분전구역도-1884년 우정 업무 시작 초기에 경성 내 우표판매소 표시, (아래)서양 각국의 근대 우정 현황을 소개한 기사 외
승정원일기. 왕명(고종)으로 우정총국 창설을 반포하고 그 취지를 밝힌 기사.
우리나라 근대 우편제도의 창시자 초대 우정총판 홍영식 흉상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 좌석배치도
우정총국 개설과 근대 우정사업 실현은 조선의 개화 성과. 전세계 네트워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발판 마련.
우체요금표와 우정사업에 쓰이던 날짜 도장, 저울과 자 등
(위) 1902년의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 우표, (아래) 1895년의 태극우표
둘째줄부터 1900~1901년의 이화우표. 최초의 국산 우표. 재한제국 문장인 오얏꽃 문양
둘째줄부터 1903년 발행된 매우표. 근대 한국의 우표 중 가장 큰 크기
우전선로도본. 전국의 우체사, 전보사의 위치와 선로가 표시된 지도.
구한국 우체부들이 입었던 복장. 1900년경 제복을 착용한 집배원과 전배원 모습 재현.
영상홍보 코너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1884년 11월 18일 근대 우편업무의 개시와 함께 발행된 5문, 10문 2종의 우표(문위 보통우표). 미발행 3종 25문, 50문,100문.

우리나라 최초의 우표

 

1884년 11월 18일(음력 10월 1일) 근대우편업무의 개시와 함께 발행된

5문, 10문 2종의 우표.

이때 발행된 우표의 액면 화폐단위가 문(文)이었기 때문에

훗날 수집가들에 의해 지금까지 문위우표로 불리고 있으며

같은 날 우정총국의 사업개시와 함께 한성(서울)-인천간에

이 우표가 붙은 우편물의 왕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정사업을 개시한지 18일째인 12월 4일,

우정국 개국 축하연에서 벌어진 갑신정변의 실패와 더불어 개화파의 몰락과 함께

그들이 주도했던 개혁사업의 하나인 신식우편제도가 왕명으로 폐지됨에 따라

동년 12월 8일을 끝으로 불과 20여일만에 운명을 다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우표발행 총람 우표번호 : 5문 (1번 / 50만장) , 10문 (2번 / 100만장)

 

우리나라의 신식 우편제도의 도입과 더불어

당초 우편업무에 사용될 우표로 5문, 10문, 25문, 50문, 100문의 5종을 발행할 계획을 세우고

일본에 우표인쇄를 의뢰하여 납품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우편사업 개시일까지 5문, 10문의 단 두 종만 도착하여 사용되었고

나머지 3종은 갑신정변의 실패로 신식우편제도가 폐지된 이후인 이듬해 3월에 도착함으로써

사용하지 못하고 미발행에 그치고 말았다.

대한민국 우표발행 총람 우표번호 없음 : 25문(50만장), 50문(50만장), 100문(30만장)

 

(출처: 다음 백과/한국우표에서...)

 

우정총국을 돌아나가며...

우정총국(체신기념관) 관람 안내

* 관람시간: 09:00~18:00

* 점심시간: 11:50~12:50

* 휴무일: 1월 1일, 명절(설, 추석) 

* 관람료: 무료

 

현재 우정총국 앞 조계사 주차장 자리에는 애국지사 민영환의 집터 표지석이 있고,

우정총국 주위에는 시민광장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우표마당, 편지정원, 편지벤치, 세계지도 바닥분수, 면영환 동상 등이 있다.

우리나라 우정의 역사가 남아있는 곳 우정총국과 함께 주위 한 바퀴 돌아보면 좋다.

(2022.10.26.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