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강을 나와 야은 길재 선생의 청풍사를 만나고 이어서 보석사를 찾아간다.
보석사는 오래전 문화재 찾아다니던 시절에 찾았던 사찰이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건지~ 연도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록으로 남기기 전에 다녀온 곳들은 정확한 기억이 부족하니...
이래서 기록이 필요한가 보다.
그런 이유로 요즘은 포스팅에 꼭 방문 날짜를 쓰게 된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수령이 1000년 넘는다는 은행나무는 잘 있을까?
적벽강에서 10여km~
보석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예전엔 아주 산골이라고 느꼈었는데,
당시의 느낌은 좀 덜한 것 같지만
꼬불거리는 동네길을 들어가서
차 10여 대 댈 정도의 주차장을 만난다.
예전에도 이랬나~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앗~ 꽃무릇이다!
승병장 영규의 순절비와 1000년 넘은 은행나무를 생각하며 찾았는데,
생각지도 않았던 꽃무릇이 반기다니......
와~ 복터졌네!
의병승장비(義兵僧將碑)
임진왜란 때 승병장이 되어 나라를 구하려다 전사한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고 있는 비이다.
영규대사(∼1592)는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3일동안 통곡한 후 스스로 승병장이 되었다. 승병 수백명을 모아 관군과 더불어 청주성의 왜적을 쳤고, 이어 조헌과 함께 금산전투에 참가하여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 일은 이후 전국적으로 승병이 일어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숙종 5년(1839) 5월 금산군수 조취영이 세운 비로, 일제가 1940년 비를 보호하던 비각을 부수고 비를 묻어놓았던 것을, 해방 후 다시 꺼내 세워 놓은 것이다.
(문화재청 자료)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 (錦山 寶石寺 銀杏나무)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000살 이상 될 것으로 추정(지정일 기준)된다. 높이 34m, 가슴높이의 둘레 10.72m의 크기로 뿌리 부분에 2∼3m 높이의 새로 난 싹이 수없이 돋아나 신기하게 보인다. 이 나무는 마을에 큰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준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마을을 지키고 보호해주는 신성한 나무로 여기고 있다.
조구대사가 보석사 창건(886년) 무렵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1945년 광복 때와 1950년 전란 때, 1992년 극심한 가뭄 때 소리내어 울었다고 전해진다.
금산 보석사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보석사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진악산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
신라 헌강왕 11년(885)에 조구선사(祖丘禪師)가 창건.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재위 1863∼1907) 때 명성황후가 다시 세우고
원당으로 삼았단다.
보석사 대웅전 (寶石寺 大雄殿)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11년(885)에 조구선사(祖丘禪師)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절 앞에서 캐낸 금으로 불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절 이름을 보석사라고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고종(재위 1863∼1907) 때 명성황후가 다시 세웠다.
보석사 대웅전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의 규모의 다포식 맞배지붕 건물로 고풍스런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전내에는 주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문화재청 자료)
금산 보석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 (錦山 寶石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삼존좌상 모두 둥글넓적한 얼굴, 반듯한 코에 반개한 눈과 입매가 살짝 올라간 입술 등이
조화를 이룬 단정한 인상을 하고 있으며,
어깨가 폭이 넓고 허리가 길며, 무릎 폭이 넓어 전체적으로 균형있고 안정감이 있다.
석가불은 변형우견편단을 입고,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으며 옷주름 표현도 유연하면서 힘이 있음.
협시보살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석가불과 같이 당당하고 균형 잡힌 신체를 하고 있다.
다만 문수보살은 어깨에 천의를 걸치고 보현보살은 편삼에 대의를 걸친 착의법을 하고 있으며,
서로 반대반향으로 연꽃 가지를 들고 있는 점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문수보살은 배부분에 화문장식이 있고 양 무릎에는 장식구가 있는데
이는 복갑과 갑대의 단순한 형태로 여겨진다.
보석사 석가여래삼존좌상은 복장물이나 발원문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전형적인 17세기 석가여래삼존불의 특징을 보이는 작품으로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힘이 있으면서도 우수한 조형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의선각 (毅禪閣)
의선각은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계룡산 갑사와 이 곳 보석사를 왕래하며 수도할 때
처소로 이용하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싸운 승려로
의병장 조헌과 합세하여 금산에 들어온 왜구를 물리치다 칠백의사와 함께 순절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창녕위(昌寧尉) 김병주(金炳疇)가 ‘의선각(毅禪閣)'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문화재청 자료)
범종루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이 걸려 있다.
바깥에는 '보석사' 현판이 걸려 있다.
예전에는 이 누각을 통해 출입했었는데,
지금은 의선각 옆 해탈문으로 출입할 수 있다.
반야문이나 심검당 옆으로도 출입할 수 있다.
이렇게 금산의 보석 같은 절 보석사를 다시 찾아보았네.
의병승장비를 보며 승장승병장 영규대사와 칠백의사의 혼을 위로하고
전나무 숲길의 싱그러움과 천년 넘은 은행나무의 위용을 새삼 느꼈으며
명성황후가 다시 세우고 원당으로 삼았던 보석사의 면면을 다시 접했다.
오래도록 이어져 옴에 감사한 마음 가지며~
앞으로도 계속 남아 있기를~~~
(2022.09.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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