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제천] 배론성지
의림지를 나와 제천 마지막 일정인 배론성지로 향하였다.
제천 10경 중 하나인 탁사정이 가까이에 있지만
이미 마음 속으로 포기를 한 터라 입밖에 내지도 않았다.
늘 운전하느라 수고하는 옆지기에게 미안한 터여서......
배론성지
제천 배론성지 (堤川 舟論聖地)
충청북도 기념물 제118호
조선 순조 1년(1801)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 때부터 지금까지
천주교 신자들이 많이 찾는 천주교의 성지이다.
‘배론’이라는 이름은 이곳의 지형이 마치 배 밑바닥과 같은 모양이라해서 붙여진 것이다.
유적으로는 조선 후기 천주교도 황사영이 머무르며 ‘백서’를 썼던 토굴과
성요셉 신학교, 최양업 신부의 묘가 있다.
1801년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은 이 토굴에서 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해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교에게 보낼 글을 썼으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성 요셉 신학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신학교로 성직자를 양성하는 곳이었다.
조선 천주교사상 두번째로 신부가 된 최양업 신부는 천주교의 교리 번역 등
우리나라에 천주교가 전파되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배론성지는 우리나라 천주교의 성립과정에 있어 중요한 성지이다.
(문화재청 자료)
왼쪽의 양업교 다리를 건너면 대형주차장, 순례자들의 집, 로사리오의 길, 대성당과 소성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양업교 건너로 대성당이 보인다.
양업교 오른쪽으로 먼저 올라가기로 하였다.
본당, 황사영토굴, 성요셉성당, 최양업신부묘 가는 길이다.
배론성지 안내도를 보며...
배론성지는 1801년 황사영 순교자가 머물며 백서를 썼고,
1855년에는 사제양성을 위한 성요셉 신학교가 세워져
1866까지 신학교육이 이루어진 곳이다.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의 무덤이 있는 곳이며,
장주기 성인을 비롯한 여러 명의 순교자들이 살던 곳이다.
배론성지 본당
사제관
성모 동산
본당 가는 길.
우리는 오른쪽 윗길로 가게 된다.
신학교쪽으로 가 본다.
1831년에 설정된 조선 교구는 파리 외방 전교회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파리 외방 전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가장 큰 목표는
조선인 사제를 양성하여 이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
1836년에 먼저 3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마카오로 유학을 보냈는데,
그 3명의 신학생이 김대건, 최양업, 최방제였다.
복원(2003년)된 배론 신학교
충북 기념물 제 118호
정확히 고증하기 어려우나
1930년 정규하 신부를 비롯한 배론 교우들이 함께 찍은 사진과
1948년 9월 27일 주재용 신부가 작성한 도면 등을 참고로
현 위치에 건축되었단다.
배론 신학교(1855-1866년, 주보성인 성요셉) 설립자는
당시 조선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메스트로 신부.
마카오에 가서 김대건과 최양업을 가르치기도 했단다.
순교자의 한을 말해 주듯 주위에는 수선화가 곱게 피어 반긴다.
황사영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박해를 피해 배론으로 피신하여
황심, 김한빈, 송재기로부터 박해의 진행사항을 들었고
교회의 재건방안을 생각하거나 글 쓰는 일로 소일.
그 해 8월 23일 황심으로부터 박해의 소식과 주문모 신부의 순교사실을 듣고는
박해의 경과와 교회 재건에 관한 자신의 의견을 비단에 적어
북경주교에게 전달하려고 백서를 쓰기 시작했다.
황심이 9월15일 체포되고,
황사영은 9월 29일 체포되었으며 백서는 압수되었다.
황사영과 관련자들이 순교한 후 백서 사건은 종료되지만
박해로 인해 많은 순교자가 생겨났다.
신학교 뒤의 산 아래에 황사영 백서가 쓰여졌다는 토굴이 복원되어 있다.
토굴 안에는 황사영 백서 복사본이 걸려 있다.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는
1801년(순조 1년) 신유박해 때 천주교신자인 황사영이
혹독한 박해를 받는 조선교회의 전말보고와 그 대책을
흰 비단에 기입한 밀서(密書)이다.
신유박해에 대한 귀중한 사료이다.
백서는 비단
옹기가마굴
배론성지 이곳은 조선교회의 교우들이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굽는 육체노동으로써 생계를 유지하며
그리스도 신앙을 키워 나간 교우촌이다.
황사영 순교 현양탑
뒷산에 오르면 성직자들의 묘소와 최양업 신부의 묘소가 자리잡고 있다.
거기까지 오르고 싶었으나 그냥 가자고 눈치를 주는지라 포기해야 했다.
가을에 다시 한 번 다녀가리라 생각하면서 돌아섰다.
성 요셉 성당
성 요셉 성당
배론 본당
배론 본당
배론 본당은 성지에서 가장 오래된 한옥 누각 성당
순교자들의 집과 황사영 순교 현양탑
이렇게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작은 내를 건너 대성당쪽으로 이동하였다.
최양업 신부를 기리는 공원이 먼저 보인다.
순교자 최양업 신부의 일대기를 벽화로 나타냈다.
샌드블라스트 기법이란다.
앞쪽은 공원식 봉안당.
왼쪽으로부터 최양업 신부의 출생에서부터의 일대기를 벽화로 기록해 놓았다.
오른쪽 끝으로 선종과 안장까지를 나타냈다.
조각공원의 최양업 신부상
최양업(崔良業)(1821-1861년) 신부는 두 번째 한국인 사제로서,
세례명은 토마스, 양업(良業)은 아명(兒名)이고,
관명(冠名)은 정구(鼎九), 본관은 경주,
충청도 다락골(현 충남 청양군 화성면 예암리)에서 출생.
대를 이어 순교한 최양업 신부 가계...
안양 수리산 최경환 성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최경환(프란치스코 1805~1839) 성인은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로
1839년 안양 병목안에 천주교우촌을 만들고 헌신하다가 순교하신 분.
조각공원쪽에서 바라본 풍경
내 건너 보이는 배론 본당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대성당)
대성당 내부
잠시 수녀님이 들어가실 때 덩달아 빼꼼히 바라보았는데,
금방 문을 닫으니 그냥 바라보고만 나와야 했다.
대성당에는 김대건, 최경환, 남종삼 성인의 유해가 보관되고 있다고 한다.
최양업 신부 "바다의 별" 대성당과 소성당(왼쪽은 소성당, 오른쪽이 대성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성덕을 기리고 시복시성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배 모양으로 설계 시공되었단다.
소성당은 문이 닫혀 있어서 내부를 보지 못했다.
소성당에는 장주기 성인의 유해가 보관되고 있단다.
잔디밭의 성모자상
순례자들의 집(대식당)
묵주의 기도(로사리오) 길 입구
미로의 기도길과 대성당
미로의 기도길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배론성지를 잠시 돌아보았다.
순교자들이 그렇게 피를 흘려가며 지킨 댓가가
한국의 천주교를 지금까지 이어지게 한 게 아닐까 싶었다.
2015.04.12(일)
[ 배론성지 ]
충북 제천시 봉양읍 배론성지길 296 (구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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