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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안동] 우리 나라의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을 지닌 봉정사

[경북 안동] 우리 나라의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을 지닌 봉정사

 

 

도산서원을 나와 봉정사로 향하였다.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추정되는

극락전을 안고 있는 사찰이다.

주차장에는 농산물이나 젓갈 등을 파는 천막이 들어서 있었으며

국화 대향연이 열린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아직도 봉정사 입구의 주차장은 협소한 편이어서

대형버스는 차 대기도 어려운 상황인데,

축제까지 열려서 더 복잡하였다.

 

 

봉정사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든 종이 봉황을 부석사에서 날리자

이 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로 여겨지는 봉정사 극락전

 

 

 

주차장에서 내려 살짝 언덕진 길을 따라 봉정사로 향하는 길...

가을이 주는 향기로움이 마음을 녹인다.

 

 

 

비가 내려 축축한 땅. 잠시 비가 그쳤다.

일주문 입구 옆에 국화차 시음장이 보여서 한 모금 목을 축이고...

버스에 가려서 보이지 않네...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만세루에 닿게 된다.

 

 

위 주차장.

여기서 다시 몇 발짝 걸으면 높은 곳에 만세루가 서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만세루가 보이는 풍경

 

 

 

봉정사만세루 (鳳停寺萬歲樓)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25호

 

봉정사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누문이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층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두었으며,

위층은 네모난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봉정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누문으로 원래는 덕휘루로 불리었으나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숙종 6년(1680)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된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문화재청 자료)

 

만세루

 

 

 

 

대웅전 마당에서 본 만세루.

사물 중 법고, 목어, 운판 세 가지가 걸려 있다.

범종은 따로 종각을 두어 걸었다.

 

 

 

만세루 아래를 들어서면 대웅전 구역이다.

가운데로는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이 당당하게 보이고,

좌우로 화엄강당과 무량해회가 보인다.

 

 

안동 봉정사 대웅전 (安東 鳳停寺 大雄殿)

 

국보  제311호


중심 법당인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만세루 아래에서 바라본 대웅전

 

 

봉정사 대웅전. 앞에 툇마루가 있어서 아주 특이한 모습...

 

 

대웅전

 

 

 

안동 봉정사 아미타설법도 (安東 鳳停寺 阿彌陀說法圖)

 

보물  제1643호

 

이 그림은 조선조 후기 아미타설법도상의 규범이 되며

또한 17세기와 다른 18세기 초반의 화풍 경향을 잘 보여주고 있어

불교회화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1713년 도익(道益) 등이 조성한 아미타불화로서,

본존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10보살과

범천, 제석천, 10대제자, 벽지불, 사천왕, 팔금강 등을 배치하였다.

다른 불화에 비해 본존의 비중을 작게 함으로서

다수의 권속들을 표현함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이면서도 답답하지 않은 화면을 구성하였다.

원만한 상호묘사와 균형 잡힌 신체묘사,

유려한 필치, 금니의 화문 등 동일한 화승이 제작한

1731년 수다사 영산회상도 및 삼장보살도와 유사한 특징을 보여준다.

18세기 전반 경상북도 지역 불화의 특징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아미타 설법도

 

 

 

 

안동 봉정사 영산회괘불도 (安東 鳳停寺 靈山會掛佛圖)

 

보물  제1642호

 

이 그림의 화면구성은 기본적으로 경상도 지역 영산회괘불화 도상과 유사하나

좌우 8구의 협시보살을 비교적 크게 배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중앙에 커다랗게 표현된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8보살과 10대 제자가 둘러싸고 있는 간단한 구도를 취하고

화면에 도상들을 부각시켜 꽉차게 묘사하였다.

입상의 본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과 권속들이 둘러싼 이와 같은 형식은

18세기 경상북도에서 유행하던 것인데,

다른 작품에 비하여 보살이 본존의 어깨부분까지 올라오는 등

크게 묘사된 것이 특징이다.

불보살상의 상호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양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육신선과 옷의 처리는 비교적 굵은 선묘로 힘 있고 유연하게 처리한 것이 돋보인다.

색채는 주색과 녹색을 주로 사용하였는데,

천공에는 백색 화문을 흩뜨리고,

황색과 분홍색, 녹색 채운을 활용하여 화사함을 더하고 있다.

아울러 보살상의 하반신 수식 장식에는 금박으로 처리하여 포인트를 주고 있다.

이 작품은 18세기 괘불탱 중에서 이른 시기에 조성되었을 뿐만 아니

화풍도 뛰어난 작품이다.

(문화재청 자료)

 

 

 

 

 

안동봉정사영산회상벽화 (安東鳳停寺靈山會上壁畵)

 

보물  제1614호

 

이 벽화는 1997년 1월 16일에 발견되었으며

현재는 보존처리 한 후 사찰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화면은 중방부분이 휘어지면서 부분적으로 균열이 생기고,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훼손된 부분이 많아 제 모습을 상당히 잃었으나

구도 및 색채 그리고 일부의 문양 등은 판별이 가능하다.

내용은 설법인(說法印)을 짓고 있는 중앙의 본존불을 중심으로

여러 권속들이 에워싸고 있는 도상으로,

남아 있는 화기를 통해 석가모니불이

영축산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하실 때의 장면을 도해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이다.

전반에 걸친 무거운 적·녹색 위주의 채색을 사용하여 다소 묵직한 느낌이 강하지만,

본존불의 선홍색 법의와 호분이 많이 가미된 연하늘색과 연분홍색 등이

잘 조화를 이루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고

뛰어난 필치와 밀도 높은 구성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벽화는 현재 정확한 제작시기를 단정할 수 없지만

대웅전 해체수리 때 종보 하단에 덧댄 통보아지 상면에서 발견된

1435년의 「대웅전중창기」,

1436년의 정면 어칸 기둥 묵서명 등을 통해서 볼 때

1435년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따라서 봉정사 대웅전벽화는 현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영산회상도>로서

1476년 <강진무위사아미타후불벽화>와 함께

조선 초기 불화의 쌍벽을 이루는 벽화이며

이후 전개될 군도형식의 영산회상도는 물론

여타 불회도(佛會圖)의 조형(祖型)이 된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 자료)

 

 

대웅전 앞 양 옆으로는 화엄강당과 무량해회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화엄강당은 아주 간결해 보이는 건물이다.

비가 오는 가운데에도 꽤 많은 사람들이 봉정사를 찾았다.

조심하느라고 해도 지나가는 사람이 꼭 찍힌다.

 

 

 

안동 봉정사 화엄강당 (安東 鳳停寺 華嚴講堂)

 

보물 제448호

 

화엄강당은 스님들이 불교의 기초 교학을 배우는 곳이다.

『양법당중수기』등의 기록에 따르면

같은 경내에 있는 극락전과 대웅전을 17세기에 고쳐 지었을 때

화엄강당도 함께 고쳤을 것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이 부재들이 다른 기법과 섞여 절충 형식을 보이고 있는 점이 특징인데

대웅전보다 간결한 형태의 장식성을 사용하였다.

또한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둥은 낮지만

공포를 크게 잡아 겉모습의 균형을 살리고 있다.

2칸은 방이고 1칸은 부엌으로 되어 있으며

부엌과 방 사이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차분하고 안정감 있게 지은 건물로

우리나라 전통 건축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문화재이다.

(문화재청 자료)

 

화엄강당

 

 

 

안동 봉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 (安東 鳳停寺 木造觀音菩薩坐像)

 

보물  제1620호

 

안동 봉정사 목조관세음보살좌상은

여러 개의 나무들을 접합한 접목조기법(接木造技法)으로 이루어졌으며

눈은 수정을 감입하였다.

사찰에 전하는 대웅전관음개금현판(大雄殿觀音槪金懸板)과

1753년의 중수원문(重修願文)을 통하여

1199년에 처음 조성되어 1363년에서 1364년 사이와

1751년에서 1753년 사이에 중수된 상임을 알 수 있다.

양식적으로도 이 관음보살상은

아직 고려적으로 변모하지 않은 이국적인 풍모,

마치 배흘림기둥을 연상시키듯 맵시 있게 땋아 올린 보계(寶髻),

어깨 위에서 중첩된 고리모양을 이루며 늘어진 보발(寶髮)의 표현,

긴장감 넘치는 옷 주름,

세련된 조각기법과 균형미 넘치는 비례 등에서

중국 남송대의 불상이나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는 안동 보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이나

서산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과 비교 된다.

따라서 이 상은 <대웅전관음중수현판기>에 기록된 대로

승안(承安) 4년, 즉1199년(高麗 神宗 2) 무렵에는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관음보살상은 고려후기 새롭게 대두하는

신고전주의(新古典主義) 양식 불상의 시원적 형태를 간직한 상으로

이러한 불상 양식의 성립과 전개과정을 살펴보는데

매우 중요한 상으로 평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화엄강당에 보관되어 있다는 목조 관음보살좌상(문화재청 사진)

 

 

무량해회.

어느 양반가의 사랑채 같은 느낌이 든다.

 

 

 

대웅전과 화엄강당, 무량해회를 돌아본 후 극락전쪽으로 향하였다.

대웅전과 극락전 사이 공간에는 안정사 석조여래좌상이 놓여 있다.

안동댐 건설로 안정사가 없어져서 가까운 봉정사로 옮겨 놓은 것이다.

제 집을 잃었으니 얼마나 허전할까...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봉정사로 왔으니

어쩌면 기쁨이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안정사석조여래좌상 (安定寺石造如來坐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4호

 

경상북도 안동시 미질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안정사에 있었던 것인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안정사가 없어지면서 인근의 봉정사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금가루가 칠해져 있어 자칫 금동불상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석불이다.

머리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있고 얼굴은 둥근 편이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가슴부분에 표현된 나비 리본 모양의 매듭이 인상적이다.

손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모습으로

땅속의 악귀를 물리친다는 의미를 지닌다.
불상이 앉아있는 대좌(臺座)는 반원형으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

 

안정사 석조여래좌상.

금가루는 벗겨낸 모양이다.

 

 

드디어 극락전...

안을 들여다보니 오래된 표시가 확 났다.

천장도 시커머티티한 게 볼품이 없어 보인다.

보기에는 안팎으로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추정되는 건물이다.

목조 건물인 탓에 과연 '이 건물이 얼마나 오래 갈지~'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안동 봉정사 극락전 (安東 鳳停寺 極樂殿)

 

국보  제15호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1972년 보수공사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에 지붕을 크게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담긴 상량문을 발견하였는데,

우리 전통 목조건물은 신축 후 지붕을 크게 수리하기까지

통상적으로 100~150년이 지나야 하므로

건립연대를 1200년대 초로 추정할 수 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배흘림 형태이며,

처마 내밀기를 길게하기 위해 기둥 위에 올린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 양식을 본받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극락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로 추정되는 봉정사 극락전

 

 

 봉정사 극락전 내부

 

 

 

 

극락전 앞에는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이 하나 서 있다.

주위에 국화를 심어 놓아서 덜 심심할 듯...

 

 

 

 

봉정사삼층석탑 (鳳停寺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82호

 

봉정사 극락전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2층 기단(基壇)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각 부분에 형식화가 심하고,

지붕돌이 두툼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문화재청 자료)

 

극락전 구역의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되는 봉정사 삼층석탑

 

 

 

극락전 앞에는 삼층석탑을 바라보며 동향으로 선 건물인 고금당이 보인다.

깔끔하면서도 안정되고 세련된 이미지를 보이는 건물로

지금은 스님들의 거처로 쓰고 있단다. 

 

 

안동 봉정사 고금당 (安東 鳳停寺 古金堂)

 

보물  제449호

 

이 건물은 극락전 앞에 동향(東向)으로 서 있으며

원래 불상을 모시는 부속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은 승려가 기거하는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1969년 해체·복원공사 당시 발견한 기록에

광해군 8년(1616)에 고쳐 지은 것을 알 수 있을 뿐

확실하게 언제 세웠는지 알 수 없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복원 전에는 북쪽 지붕 모양도 달랐고

방 앞쪽에 쪽마루가 있었으며 칸마다 외짝문이 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앞면 3칸에 2짝 여닫이문을 달았고

옆면과 뒷면은 벽으로 막아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비록 건물은 작지만 다양한 건축기법을 사용하여

구조가 꼼꼼히 짜인 건축물로 주목 받고 있는 문화재이다.

(문화재청 자료)

 

보물로 지정된 고금당

 

 

고금당.

종각 건물이 살짝 보인다.

 

 

 

봉정사동종 (鳳停寺銅鍾)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04호

 

조선 순조 13년(1813)에 만들어진 것으로

크기는 높이 67㎝, 음통 높이 22㎝, 종입구 지름 55㎝이다.

종은 전체적으로 어깨 부분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가

중간 부분부터 종 입구까지는 거의 직선으로 처리되었다.

종 머리에는 종을 매다는 용뉴와 음통이 있는데,

용뉴는 용의 머리를 조각하였으나 약식화되었고

조선시대 종에는 생략된 소리의 울림을 좋게 하는 음통은

모양만 갖추었을 뿐 구멍은 막혀 있다.

종은 전체적으로 가로로 선을 돌려 세부분으로 나뉘었다.

가장 윗부분에는 서있는 모습의 보살상을 2구 조각하여 대칭적으로 배치하고

그 사이에 네모난 유곽이 자리하고 있다.

유곽 안에는 9개의 유두가 있다.

종의 가운데 부분에는 범자(梵字)가 새겨진 동그란 원을 4개 배치하였고

그 나머지 여백에는 종의 내력을 적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종은 비록 약식화되고 형식화되었으나

신라시대, 고려시대의 양식을 갖추고 있어

19세기에 만들어진 종으로서

신라, 고려 시대의 종 모습을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된다.

(문화재청 자료)

 

 

고금당 뒷편으로 보이는 삼성각

 

이렇게 봉정사 경내를 돌아본 후 동쪽에 위치한 영산암으로 가게 된다.

영산암은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되면서 많이 알려진 곳이다.

 

 

2014.11.0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