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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안동] 퇴계 선생을 기리는 도산서원

[경북 안동] 퇴계 선생을 기리는 도산서원

 

 

전날에 내린 비로 청량산 산행을 포기하고

퇴계 선생을 기리는 도산서원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산서원은 여러 번 방문한 곳이지만

늘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던 곳이다.

참 오래 전, 30년도 넘은 그 시절에 비를 맞으며 도산서원에 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차로 도산서원 가까이까지 가지만

그 때만 해도 버스를 타고 삼거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었지.

그래도 젊음이 있었기에 좋았던 기억...

 

도산서원 앞마당의 고목 사이로 보이는 도산서원

 

 

 

사적 제170호 안동 도산서원 (安東 陶山書院)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 선생이 도산서당을 짓고

유생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주자학을 집대성한 유학자로

우리나라 유학의 길을 정립하면서 백운동서원의 운영,

도산서당의 설립으로 후진양성과 학문연구에 전력하였다.

중종, 명종, 선조의 지극한 존경을 받았으며

일본 유학의 부흥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도산서원은 조선 선조 7년(1574) 그의 학덕을 추모하는 문인과 유생들이

상덕사(보물 제211호)란 사당을 짓고

전교당(보물 제210호)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으며,

선조 8년(1575) 국왕에게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면서

영남지방 유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서원의 건축물들은 민간인들의 집처럼 전체적으로 간결,
검소하게 꾸며

퇴계의 품격과 학문을 공부하는 선비의 자세를 잘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도산서원 → 안동 도산서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2011.07.28 고시)

(문화재청 자료)

 

 

 

도산서원 안내도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우산을 받쳐도 좋은 풍경이다.

 

 

주차장 가까이의 도산서원 입구

 

 

수많은 단풍잎이 떨어져 단풍밭이 만들어진 모습... 

 

 

바닥에 떨어진 단풍을 보니 그 자체만으로도 한 폭의 그림과 같다.

 

 

사계절이 다 아름다운 곳이지만 가을 풍경은 특히나 아름다운 길...

 

 

낙동강 물줄기는 여전히 여유롭게 흐르고...

 

 

운영대

잠시 더 걸으면 운영대를 만나게 된다.

 

 

사색 수도의 장으로 이용했던 운영대.

도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는

퇴계 선생이 살아가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휘돌아가고...

운영대와 천연대도 남아서 옛 일들을 말해주려는 듯하다.

 

 

운영대에서 저쪽 길 끝으로 천연대가 보이는 풍경이 곱다.

 

 

시사단

운영대에서 바라본 강 건너의 시사단

 

 

 

 

시사단

 

 

시사단 (試士壇)



정조(재위 1776∼1800)는 이황의 학덕과 유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조판서 이만수에게 도산별과를 새로 만들어 지방의 인재를 선발하게 하였다.

이러한 과거시험을 기념하기 위해 정조 20년(1796)에

영의정 채제공의 글로 비문을 새기고 시사단을 세웠다.

그 뒤 순조 24년(1824)에 고쳐 세우고,

1974년 안동댐 건설로 현 위치에서 지상 10m의 축대를 쌓아

그 위로 비각과 비를 옮겨 지었다.

비각은 앞면 1칸·옆면 1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기둥 사이 벽 가운데를 가로질러 댄 나무인 중방 아래에는

비바람을 막기 위해 판벽을 둘렀고,

추녀 4곳에 얇은 기둥을 받쳐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시사단은 퇴계 선생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과거를 본 장소를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건축이다.

안동댐 건설로 원래 자리의 송림은 없어졌으며

10m 위로 단을 쌓아 비를 옮겨 세우고 옛 과거 자리를 표시하고 있다.

 

 

 

도산서원

농운정사는 보수 중...

 

 

 

도산서원의 역사를 알게 해 주는 고목이 서원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열정

 

 

도산서당의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

 

 

 

 

몽천

 

 

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끈다는 뜻을 지닌 샘.

 

 

도산서당

 

 

도산서당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몸소 지은 건물로

 직접 거처하시면서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에 전력하였다.

 

 

도산서당과 암서헌 글씨.

도산은 옛날 이곳에 옹기 굽는 가마가 있었다하여 생긴 지명이란다.

 

제자들을 가르치던 마루 '암서헌'

 

 

퇴계 선생이 거처하던 방인 '완락재'

 

 

정우당

 

 

도산서당 앞에 자리하고 있는, 연꽃을 심은 정우당.

 

 

매화원

도산서원의 가운데에 매화원이 조성되어 있다.

 

 

하고직사

(하)고직사.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으로 상고직사와 하고직사가 있다.

 

 

매화원을 지나 도산서원 진도문을 향하여...

 

 

 

진도문.

도산서당에서 도산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학문을 하여 도(道)로 나아간다는 뜻.

안으로 도산서원 전교당 건물이 보인다.

 

 

 

진도문 양 옆의 광명실.

 

 

 

 

동광명실. 책을 보관하는 서고이다.

 

 

'光明室' 현판은 퇴계 선생의 친필이라고 한다.

 

 

전교당 앞 마당에서 바라본 광명실

 

 

 

도산서원 전교당

안동 도산서원 전교당 (安東 陶山書院 典敎堂)

 

보물  제210호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처음 세웠다.

그 중 전교당은 유생들의 자기 수양과 자제들의 교육을 하는 강당으로서,

전교당의 앞 마당 좌우에는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하고 있다.

이 전교당은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은 것을 1969년에 보수한 것이며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고

온돌방과 대청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매우 간소하게 지은 건물로

선조가 서원에 내려준 ‘도산서원’이라는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한다.

(문화재청 자료)

 

보물  제210호  도산서원 전교당

 

도산서원 전교당.

전교당은 도산서원의 강당으로

늘 지켜야 할 가르침 또는 가르침을 담당한다는 뜻...

 

 

 

 

명필 한석봉이 임금님 앞에서 쓴 글씨라고 전하는 陶山書院’이라는 현판 글씨.

진품은 유교박물관에 가 있고 이것은 모사품이란다.

 

 

 

 

도산서원 전교당.

지붕은 옆면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장판각

 

 

장판각.

선조 어필과 퇴계 선생 문집, 도산십이곡 등을 보관해 오다가

보존과 학술연구를 위해 자료들을 한국국학진흥원으로 이관했단다.

 

 

장판각 주변에도 단풍이 무척이나 곱다.

 

 

 

안동 도산서원 상덕사 및 삼문 (安東 陶山書院 尙德祠 및 三門)

 

보물  제211호

 

도산서원 제일 뒤쪽에 있는 상덕사는 이황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조선 선조 7년(1574)에 지었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9년 수리한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상덕사를 드나드는 정문은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문은 상덕사를 지을 때 같이 지은 것으로

앞면 기둥은 계단 높낮이때문에 다른 기둥보다 길이가 길다.

정문 양옆으로 사당 주위를 둘렀던 토담은

1969년 보수공사 때 돌담장으로 모두 바꾸었다.
간결하고 매우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문화재청 자료)

 

 

상덕사 정문인 삼문

 

 

 

 

상덕사에 딸린 정문

 

 

문이 닫혀 있어 담 너머로 본 상덕사...

퇴계 선생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상덕사는 덕을 높이 여긴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전사청

 

 

 

 

전사청.

상덕사에서 향사를 지낼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

 

 

도산서원 전교당의 서재(홍의재)

 

 

고직사 

서원을 관리하는 수호인들의 살림집인 고직사

 

 

고직사에서 내려와 옥진각에 닿았다.

왼쪽 건물이 옥진각.

 

 

옥진각

 

 

옥진각에는 퇴계 선생의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유품이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하였다.

내부는 촬영 금지...

 

 

농운정사는 보수 중이었다.

농운정사는 문도들이 거처하고 강실(講室)로 사용했던 곳.

농운이란 고개 위에 걸려있는 구름을 뜻하는 말로
청렴한 선비가 되라는 교훈적인 의미가 담겨 있단다.

 

 

역락서재

 

 

 

 

퇴계 선생이 도산서당에 학문을  강론할 때

제자들이 세웠다고 한다.

 

 

'亦樂書齋' 현판은 퇴계 선생의 글씨란다.

 

 

역락서재 바깥쪽의 아름다운 단풍

 

 

운영대로 향하는 주변

 

 

도산서원의 상징과도 같은 고목...

 

 

 

 

 

 

 

 

 

 

 

천연대

 

 

천연대.

퇴계 선생께서 산책하시던 곳으로

시경 중 '하늘에는 새가 날고, 물에는 물고기가 뛰어 논다.'에서

인용하여 천연대라고 하였다고 한다.

 

 

 

 

 

 

 

 

 

 

 

 

 

 

 

 

 

 

 

 

 

천상의 화원처럼 예뻤던 단풍밭 풍경...

 

2014.11.0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