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대구 달성] 달성 사직단과 원호루

[대구 달성] 달성 사직단과 원호루

 

 

현풍 석빙고 옆으로 난 나무계단길을 오르면 바로 사직단과 원호루를 만나게 된다.

사직단 바로 아래로는 체육공원도 이어져 있고,

조금 떨어져서 달성문화원이 자리하고 있다.

어디선가 체육회를 진행하는 모양인지 응원 소리가 뜨거웠다.

두리번거리며 살펴보니 내 건너 작은 운동장인 듯한 곳에서 놀이를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선가는 타는 냄새가 나서 보니 문화원 주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낙엽을 태우는 모양이었다.

가을에만 느끼는 그 냄새...

주변으로는 이미 가을이 깊었다.

 

 

달성(옛 현풍) 사직단

 

토지를 주관하는 사신(社神)과 오곡을 주관하는 직신(稷神)에게 고을의 백성이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제단으로, 매년 중춘과 중추에 사직제를 지내고 나라의 큰일이나 가뭄이 있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단다.

 

옛 현풍 사직단은 세조 14년(1469년) 경 당시 현풍현감인 채석견이 현서(지금의 달성군 현풍면 성하리)에 설치하였으나 순종 2년(1908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폐허가 되고 그 자리에 신사를 지었던 것을 1945년 우리 애국지사들이 불태워버렸다.

 

현재의 사직단은 옛 현풍 사직단 터에 충혼탑이 세워져 원래의 자리에 복원하지 못하고 1996년 양시영 군수가 향토 사학자 채수목의 자문을 얻어 이곳 상리에 사직단을 복원하였고, 2009년 12월 향토 사학자 윤홍석 등 유림의 주선으로 옛 문헌인 국조오례의 등의 고증에 의하여 2010년 6월 이종진 군수가 지금의 사직단을 개축 복원하였다.

(출처 : 달성 사직단 현지 설명 자료)

 

 

 

 

 

 

 

 

 

 

 

 

 

원호루(遠湖樓)

 

구한말 현풍현령 홍필주가 집정하고 있을 당시 인근 현령 및 향유들과 정사를 논의하고 풍류와 여흥을 즐기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원래 지금의 현풍면사무소 후원에 있었으나 1989년 면사무소 증축으로 해체되었다가 초대 민선 달성군수 양시영에 의해서 1996년에 현위치에 이축 복원되었다.

처음에는 2층의 아담한 누각이었으나 1957년 중건하면서 높은 댓돌 위에 단층으로 바뀌었고 복원된 현누각은 자연산 주초석을 자재로 하여 기둥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대청마루를 설치하고 그 위의 둥근 기둥에 굴도리를 올린 다락집 형태의 겹치마 팔작지붕이다.

(출처 : 원호루 앞 안내 설명 자료)  

 

 

 

 

 

 

설명판을 읽고 원호루로 올라갔다.

놀랍게도 고등학생인 듯한 남녀가  2층 누각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이불을 덮고 있었다.

누워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남학생, 뭔가를 검색해서 적는 여학생의 모습...

갑자기 맞닥뜨려서 얼마나 놀랐는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서 정말 놀랐다.

 

 

 

 

 

 

2013.10.2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