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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중국

[산동성 기남] 제갈량 문화 거리

[산동성 기남] 제갈량 문화 거리

 

 

제갈량의 고향인 중국 산동성 기남...

그곳에 제갈량을 기리는 문화 거리가 있었다.

제갈량의 자는 공명으로, 제갈공명으로 귀에 익은 인물이다.

제갈량은 지혜와 지략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평가되고 있는데,

유비 대규모 군대 조직하고 촉한 창건하는 큰 공헌을 하였.

유비가 제위에 오른 후에는 재상이 되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가 제갈량의 명성을 듣고 그가 은거하고 있던 초막으로 세 번이나 찾아가서

자신을 도와달라고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문화 거리 입구에는 제갈량의 동상이 서 있었는데,

앞쪽에 제갈량성이라고 씌어진 돌비가 놓여 있다.

 

 

 

거리 양쪽으로 음식점이 주욱 늘어서 있었다.

 

 

 

아주 젊은 모습의 제갈량

 

오른쪽 거리의 꼬치집에는 웃통을 벗은 남자 셋이 요리를 하고 있었는데,

보기가 좀 민망했다.

 

제갈량 동상 뒤로 이어지는 가운데 거리에는 제갈량과 관련된 이야기를 동상으로 만들어 놓았다. 

 

 

 

 

 

 

 

 

 

곳곳이 연못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가이드가 도대체 설명을 안 해 주니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었다.  

 

와룡원(臥龍源)이라고 쓰여진 문을 통과하는 중... 

와룡문 앞 광장 바닥에는 태극무늬가 장식되어 있었고

더 안쪽으로 올라가면 거리의 끝에 또 제갈량의 동상이 있다.

 

와룡문을 통과하니 멀리 안쪽으로 제갈량의 동상이 희미하게 보인다.

 

제갈량 문화거리 주변에는 아이들의 놀잇감이나 탈것 등이 많이 보였다.

 

가장 안쪽 구역은 입장료를 받는 모양이었다.

 

기념공원 안으로 들어와서 기남시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

가운데로 와룡문이 보인다.

그 아래로 우리가 올라온 문화거리가 이어져 있다.

 

매표구를 통과하여 제갈량 기념공원으로 가는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제갈량 동상

 

아랫쪽에서 본 동상의 모습과는 달리 나이가 제법 들어보인다.

  

 

동상 뒤의 벽에는 제갈량의 일대기가 표현되어 있다.

지혜와 책략의 대명사, 제갈량...

그의 모습들을 들여다본다.

 

출세양도(出世陽都, 제갈량은 양도에서 태어났다.)

이것이 처음 보아야할 것인데, 가이드가 설명을 제대로 해 주지 않아서...

우리는 반대편에서 보기 시작했고 나중에야 그런 사실을 알아서 속상했다.

 

 

궁경남양(躬耕南陽, 남양땅에서 몸소 농사를 지음.)

 

 

삼고초려(三顧草廬, 유비가 제갈량의 초막을 찾아감. 장비와 관우가 밖에서 기다리는 장면.)

중국 삼국 시대 촉한 유비 제갈량 자기의 인재 쓰기 위해 집을 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하는 말로, 인재를 쓰기 위해 참을성 있게 노력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담양 명옥헌에도 삼고(三顧) 편액이 걸려 있다. 인조가 임금이 되기 전에 명옥헌으로 오희도를 세 번이나 찾아가 시국을 논하려 했다고 하여 그곳에 ‘三顧(삼고)’라는 현판이 걸려 있게 되었단다.

 

 

설전군유(舌戰群儒, 손권 앞에서 오나라의 신하와 설전을 벌이다.)

노숙은 제갈량과 마찬가지로 두 나라의 동맹을 주장한다.

손권은 유비와 동맹을 맺고 조조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초선차전(草船借箭, 배에 짚단을 싣고 화살을 얻다)

적벽대전(赤壁大戰)을 앞두고 제갈량(諸葛亮)과 주유(周瑜)가 내기를 했다.

주유가 열흘 안에 화살 10만개를 만들어오라고 했다.
사흘째 되는 날 제갈량은 안개 자욱한 강에 짚단을 실은 20척의 배를 띄웠다.

적진 가까이 접근한 제갈량은 배를 한일자로 벌려놓고 군졸들에게 북을 치고 고함을 지르라 명했다.

안개 속에서 들려온 오군의 함성소리에 놀란 조조는 화살을 퍼부었고,

얼마 후 배 양쪽에 화살을 가득 꽂은 제갈량은 의기양양하게 귀환했다는...

 

 

차동풍(計借東風, 동풍을 불게 하다.)

모든 게 준비됐고 필요한 것은 동풍뿐...

 

 

화소적벽(火燒赤壁, 불타는 적벽)

적벽대전 때 제갈량의 계책으로 불화살을 써서 백만군대의 조조군을 궤멸시켰다고 전한다.

 

 

사천에 들어가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제갈량맹획 일곱 놓아주고 일곱 사로잡았다는...)

맹획은 굽힐 줄 모르는 강직한 성격으로 남쪽 지방 백성들의 지지를 받은 인물이었기에 마음으로 승복시키기로 했고, 맹획을 계속 사로잡았다가 풀어주고 하기를 계속해 7번째만에 맹획이 저항을 포기하고 촉에 충성하기로 맹세했다고 한다. 이후 제갈량은 위나라 공략에 전념할 수 있었다는...

 

 

육출기산(六出祁山, 여섯번 기산으로 나아가다. 제갈량의 북벌을 뜻함)

 

 

목우유마(木牛流馬, 식량을 운반하기 위해 제갈량 소나 말의 모양으로 만든 수레. 기계 장치 움직이게 하였단다.)

  

 

 

실가정(失街亭, 街亭을 잃다),

읍참마속(泣斬馬謖,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다)

제갈량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자기의 명령·지시를 따르지 않고 제멋대로 싸우다가 패한 마속의 목을 베어 전군의 본보기로 삼았다고 한다.  마속과는 두터운 친분을 가진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울며 그의 목을 베었다는... 

 

 

공성퇴적(空城退敵, 街亭을 잃고 空城計를 후퇴시킴)

사마의의 15만 대군을 맞아 서성의 성문을 활짝 열고

제갈량은 적군이 훤히 보이는 성루에 앉아 거문고를 타는 전략이니

성을 비워서 적으로 하여금 혼란에 빠뜨리는 것을 말한다.

사마의는 엄청난 매복과 계략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회군했다는...
 

 

국궁진췌(鞠躬盡瘁, 나라를 위하여 죽을 때까지 몸과 마음을 다 바치다) 

촉한의 유비의 뒤를 이은 유선에게도 충성을...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인증샷~

 

2013.10.18(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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