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대산동(한개마을) 북비고택(大山洞北扉故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44호(1983.06.20 지정)
경북 성주군 월항면 대산리 421 한개마을
이석문은 사도세자가 죽은 뒤 세자를 그리워하여 조선 영조 50년(1774)에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을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순조 21년(1821)에 손자 이규진이 안채와 사랑채를 새로 지었으며, 사랑채는 고종 3년(1866)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장판각, 안대문채, 마굿간, 아래채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져 전해지지 않는다. 사랑채와 안채가 ㅁ자형을 보이고 있으며, 솟을대문이 남아 있어 당시 고관가옥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한옥 주택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좋은 자료이다.
북비고택 입구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하여
이 집은 비교적 연대를 믿을 수 있는 건물로
입구 오른쪽에 응와종택(대감댁)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북비고택 대문
'정헌공 응와 이판서 구택'이라 쓰인 대문을 들어선다.
대감댁으로 불린다. 판서를 지낸 분의 집이라 대감댁으로 불렀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사랑채, 오른쪽으로 북비채가 있다. 대문을 들어서서 바로 오른쪽으로 '북비'문이 보인다. 돈재 이석문은 사도세자가 죽은 뒤 세자를 그리워하여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을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다.
북비문 북비채. 돈재 이석문이 사도세자를 그리워하여 북쪽으로 사립문을 내고 평생을 이곳에서 은거하며 살았다고 한다.
북비채
북비채에서 북비문을 바라보며...
북비고택 사랑채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왼쪽에 위치하고 있다. 사랑채
사랑채
대문에서 안채 가는 길...
사랑채를 지나 안채로 들어서면 안채 왼쪽에 사당이 보인다. 가운데가 사당~
사당 안채
안채
현 종손이 지은 건물인 안채 앞마당의 자혜당
2011.02.0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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