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창과 서천 ] - 2005.10.31
* 고창 국화 축제, 미당 서정주 생가와 문학관, 인촌 생가, 고인돌군, 선운사, 고창읍성, 신재효 고택 * 서천 신성리 갈대밭 * 안면도 대하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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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창 지역 ---
[미당시문학관]
2001년 개관.
미당의 시적 고향,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의 질마재.. 그곳에 미당시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1층에는 친필 시들, 한국을 대표하는 시로 배우고 읊었던 그의 작품들이 방문객들을 맞이한다.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전망대로 걸음을 옮겨 오르는 길에는 평소 즐겨 신던 고무신, 돋보기안경 같은 손에 익은 유품들과 원고들을 볼 수 있고, 층마다의 계단 벽면에는 세계 유명산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산 사진 아래에는 그냥 읽기에도 어려운 산의 이름과 높이가 빼곡히 적혀 있다. 말년에 치매라도 올까 싶어 습관처럼 산의 이름과 높이를 항상 외웠다는 것이다. 연로한 나이에도 자신을 돌아보길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의 인간적인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전망대에 올라 주변을 둘러보면 바다에까지 닿은 선운리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미당의 생가와 미당의 묘소도 볼 수 있다.
제 2 전시동에는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그의 행적이 벽면을 채우고 있다. 미당의 시세계를 거론하는데 있어서 가장 타격이 큰 친일 행적들..
어쨌거나 그의 시가 우리 가슴에 어머니, 누이 같은 포근함으로 다가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
[인촌생가]
인촌 김성수는 1891년 (고종 28년) 10월 21일 부안면 인촌리에서 김인후의 13대 손으로 태어나 제2대 부통령을 역임, 일제 36년의 피압박 민족의 설움 속에서 거대한 민족자본을 형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한 언론과 육영사업을 통해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는 등 평생을 국가와 민족에 바친 민족의 대 지도자.
인촌 김성수 생가는 호남지방 부호의 집으로 전형적인 규모를 지니고 있는 1880년대에 세워진 건물로 대지는 남북으로 긴 장방형을 이루고 있는데 낮은 담을 경계로 북편에 큰 집, 남쪽에 작은 집이 세워져 있다. 이처럼 한 구역 안에 각각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도록 두 집이 건립되는 예는 흔치 않다. 북쪽의 큰집에는 안채, 사랑채를 비롯하여 곡간, 안행랑채, 사랑채, 바깥행랑채, 대문채 등이 있는데, 작은 집과 비교하면 큰 집에 곡간 한채가 더 있을 뿐 건물 자체의 규모나 치장에 사용된 부재 등은 거의 같다. (高敞郡, 1992, 『高敞郡誌』)
[선운사]
선운산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
선운산은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데 선운이란 구름 속에서 참선한다는 뜻이고 도솔이란 미륵불이 있는 도솔천궁의 뜻으로 선운산이나 도솔산이나 모두 불도를 닦는 산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한 가운데 천년 고찰 선운사가 자리하고 있다. 본사는 선운사로 검단선사가 창건하고 대참사(참당사)는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나 현재는 도솔암, 석상암, 동운암과 함께 참당암이 있지만 옛날에는 89암자가 골짜기마다 들어섰던 것으로 전한다.
이른봄에는 선운사 뒤 동백꽃 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절 주변 개울물을 끼고 상사화가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다.
[고인돌군]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고인돌을 일본에서는 지석묘(支石墓)라 부르고, 중국에서는 석붕(石棚) 또는 대석개묘라 하며, 기타 지역에서는 돌멘(DOLMEN)이나 거석(megalithic culture)으로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고인돌과 지석묘를 같은 의미의 용어로 사용하다가 고인돌이 묘의 기능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보다 더 다양한 기능을 보이고 있어 현재는 '고인돌'로 통용되고 있다.
한반도 전체 고인돌의 숫자는 약 36,000여개가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이 가운데 남방식 고인돌이 북방식 고인돌보다 더 많이 분포되어 있다. 고인돌이란 말은 순 우리말이며 그 말은 남방식 고인돌에서 비롯된 말이다. 즉 고인돌이란 말은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창읍성]
조선 단종 원년(1453)에 외침을 막기 위하여 전라도민들이 유비무환의 슬기로 총화 축성한 자연석 성곽이다.
일명 모양성(牟陽城)이라고도 하는 이 성은 나주진관의 입암산성과 연계되어 호남 내륙을 방어하는 전초기지로 만들어 졌다.
1965년 4월 1일 사적 제 145호로 지정된 이 성의 둘레는 1,684m. 높이 4~6m 면적은 165,858㎡ (50,172평)로 동.서. 북문과 3개소의 옹성 6개소의 치성(雉城)을 비롯하여 성밖의 해자(垓字) 등 전략적 요충시설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축성 당시에는 동헌과 객사 등 22동의 관아건물이 있었으나 병화로 소진된 것을 1976년부터 성곽과 건물 14동을 복원·정비 하였다
또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성을 밟으면 병이 없이 오래살고 저승길엔 극락문에 당도한다는 전설때문에 매년 답성행사가 계속되고 있다. 성밟기는 저승문이 열리는 윤달에 밟아야 효험이 있다고 하며 같은 윤달이라도 3월 윤달이 제일 좋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엿샛날이 저승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초엿새, 열엿새, 스무엿새 날에 답성행렬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성을 한 바퀴 돌면 다릿병이 낫고 두 바퀴 돌면 무병장수하며 세 바퀴 돌면 극락승천한다고 한다. 성을 돌때는 반드시 손바닥만한 돌을 머리에 이고 세번 돌아야 하고 일정한 지역에 그 돌을 쌓아두도록 하였다.
특히 윤삼월의 효험을 강조하고 있음도 겨우내 부풀었던 성을 밟아 굳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머리에 돌을 이게 함으로서 체중을 가중시켜 성을 더욱 다지게하는 의도에서 였을 것이다.
[판소리박물관, 신재효생가, 동리국악당]
고창판소리박물관은 판소리의 이론가이자 개작자, 후원가 였던 동리 신재효 및 진채선, 김소희 등 다수의 명창을 기념하고 판소리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택 자리에 설립되었다. 고택은 현재 사랑채만 복원되어 남아 있으며 바로 옆에는 동리 국악당이 있다. 판소리 박물관은 이와 같은 판소리의 유형무형의 자료를 수집, 보존, 조사, 연구, 전시, 해석함으로써 일반 대중에게 수준 높은 판소리 예술의 재교육과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고 마침내 판소리 성지화를 꾀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 서천 지역 ---
[신성리 갈대밭]
신성리 갈대밭은 또 금강변에 펼쳐진 폭 200미터, 길이 1Km, 면적이 무려 198,000㎡에 이르는.. 우리 나라 4대 갈대밭 중의 하나란다.
갈대 숲이 많아 철새들의 서식 장소로 좋은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금강하구둑 언저리에 위치한 신성리갈대밭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한국갈대7선”으로 꼽히고 있으며, 각종 교육기관의 자연학습장으로, 전국 사진작가들의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햇빛이 금강 물결과 어우러져 신비한 조화를 이루고, 겨울철에는 고니, 청둥오리등 철새의 군락지로도 유명한...
굳이 갈대의 계절인 가을이 아닌 여름날에 가더라도 바람에 스치는 갈대 소리가 스산해 더위마저 잊게 하는 곳이란다.
영화 "JSA(공동경비구역)"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여 가족과 연인들의 발길이 철을 가리지 않고 연중으로 이어지는 광활한 갈대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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