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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2006.09.23 전주와 고창

2006.09.23 전주와 고창

 

* 전주 경기전과 전동성당

 

  [경기전]

  사적 제339호.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누전(樓殿). 

  1410년(태종 10)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完山)·계림(鷄林)·평양 등 3곳에 창건하여 태조의 영정을 봉안했고, 1442년(세종 24)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했다. 관원으로 영(令 : 종5품) 1명, 참봉(參奉 : 종9품) 1명을 두었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은 소진되었으나 영정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614년(광해군 6) 관찰사 이경동(李慶仝)이 다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중건한 것이다. 건물의 구성을 보면 본전은 정면 3칸, 옆면 3칸으로 되어 있고, 본전 외 창고를 위시하여 여고(輿庫)와 실록각(實錄閣)이라고 하는 문고(文庫)가 있다. 본전은 남향한 다포식(多包式) 맞배집 건물로 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칸,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3번째 기둥렬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壇)을 놓았다. 이 단의 양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의 헌(軒)은 본전보다 1단 낮게 쌓은 석축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의 구성은 정자각(丁字閣) 구성과 같다.
 

[ 경기전 ]

사적 제339호. 1410년(태종 10) 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完山)·계림(鷄林)·평양 등 3곳에 창건하여 태조의 영정을 봉안,

1442년(세종 24)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했다.

임진왜란 때 경기전은 소진되었으나 영정은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

옮기어 보존할 수 있었다.

현재의 건물은 1614년(광해군 6) 관찰사 이경동(李慶仝)이 다시 영정을

봉안하기 위해 중건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말살 정책을 펴기 위한 일본이 경기전 안에 소학교를

지었으나 지금은 이전한 상태다.

 

 
[ 전주사고 ]

조선 초기 4대 사고(서울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 중 하나.

전주사고는 경기전 안에 설치되었으며, 세종실록부터 각 1부씩

4대 사고에 보관. 임란 때 전주사고의 실록만 보존되었다.

 
  [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1가 200-1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진 성당으로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 1914년 완성되었다.
  회색과 붉은색 벽돌을 이용해 지은 건물은 겉모습이 서울의 명동성당과 비슷하며, 초기 천주교 성당 중에서 매우 아름다운 건물로 손꼽힌다.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
 

* 고창 선운사 꽃무릇(석산)  

   일명 상사화로 불리는 꽃무릇은 수선화과 상사화속의 식물로서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함을 안타까워해서 상사화(相思花)라 불리게 된 풀…. 이 풀은 꽃은 피우지만 열매는 맺지 못하며, 풀잎이 말라 죽은 뒤에 꽃대가 나와서 꽃이 피므로 풀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풀잎을 보지 못한다. 

 

꽃무릇은 수선화과의 다년초로 9~10월에 꽃을 피운다.

꽃이 진 뒤에 잎이 돋아나며 이듬해 꽃을 피울 때 쯤엔

잎이 마르고 없는 상태가 되므로 꽃과 잎이 만나는 일이 없어

상사화라는 별명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