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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중국

대련 가족여행 12 - 여순(뤼순)감옥 5 끝 (안중근기념관 - 사형장, 추모 공간)

여순감옥 안중근기념관의 안중근 흉상

(2024.10.20. 일)

 


 

며칠 전에 영화 <하얼빈>이 개봉되었다.

영화 <하얼빈>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다룬 영화이다.

시간 내어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포스팅은 여순감옥 마지막 편~

안중근기념관 사진들이다.

여순감옥 담장과 감시소

뤼순의 국제지사들 전시관을 나와 안중근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여순감옥 안중근기념관

안중근 사형장

 

 

사진 찍기도 민망하였지만

우리 국민이라면 알아야 할 중대한 사건이기에

민망하고 죄송스러움을 무릅쓰고 찍었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당당하게 임했던 최후가 떠오른다.

풍전등화에 놓였던 국가 운명 앞에서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누가 그렇게 했던가?

앞으로도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안중근 사형장 안의 여러 자료들

 

 

동생에게 전한 최후의 유언, 아내에게, 어머님께 쓴 편지가 가슴을 절절히 울린다.

 

 

 

김구와 이시영, 중국의 손문과 장태염의 안중근에 대한 평가

 

 

 

안중근 추모 공간

안중근 상 앞에서 모두 마음 속 기도를 올렸다.

 

 

안중근의 서예 작품들

 

 

사람들이 나간 뒤 다시 한 번 돌아보며...

옥중에서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안 의사님!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 거사,

11월 3일 뤼순감옥으로 압송,

1910년 2월 14일 뤼순 관동지방법원의 사형선고,

3월 26일 순국할 때까지 일제에 당당하게 맞서셨다.

옥중의 남은 삶 기간에도 '동양평화론' 서문과 '안응칠역사'를 썼고,

수많은 휘호도 작성하셨다.

비록 몸은 일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지만

그 정신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슴에 남아있음을......

 

 

 

아픈 마음을 뒤로 하고~

우리가 퇴장할 때 입장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다시 안중근 독방을 보며 퇴장하는데

발걸음이 무거워 떨어지질 않는다.

 

 

 

출구

 

 

 

안 의사는 사형 집행 전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하라”

고 유언을 남겼다.

일본은 안 의사의 묘가 한국인들에게 독립운동의 성지가 될 것을 두려워 해

유족에게 유해 인도를 하지 않고 감옥 담장 바깥의 묘지에 묻었다고 한다.

사형집행 보고서에는 “감옥 묘지에 묻었다.”고만 적혀 있을 뿐

구체적인 매장 위치에 대해선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국권이 회복되었지만 안중근 의사의 유해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 했고

최후의 유언으로 남긴 유해 반장도 하지 못 하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현재는 서울 효창공원에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가이드님께 가족사진 한 장 부탁하여...

관람 내내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르며

여순감옥 방문 기념 가족사진 한 장 남겼다.

우리 아이들과 외손녀도

우리 역사에 대한 관심을 더 가져주기를 바라며......

(여순감옥 끝)

 

방문 : 2024.10.20.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