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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북 충주]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 (2023.06.07.수)

 

[충주·단양] 1박 2일 여정

* 1일(2023.06.07.수) - 충주

충주 고구려비-중앙탑공원(충주 탑평리 칠층석탑)-탄금대-점심(삼정면옥)-관아공원(충주읍성)

-활옥동굴-저녁(단양 성원 마늘약선요리)-단양읍내 남한강가 산책(야경)-숙소(단양 소노문 리조트)

* 2일(2023.06.08.목) - 단양

남한강가 산책(꽃양귀비)-만천하 스카이워크-남한강(단양강)잔도-이끼터널-(수양개유물전시관 경유)

-새한서점-점심(다원 떡갈비)-카페산(패러체험 두산마을)-구경시장(주전부리)-도담삼봉-귀가

 

 


 

지난 달 초 충주·단양 1박2일 여행지 중

처음 들른 곳은 충주 고구려비...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고구려비이며 국보로 지정되어 보호 중입니다.

학창 시절에 중원 고구려비로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충주시와 중원군이 분리되어 있던 때의 명칭은 중원 고구려비였죠.

 

 

중원 고구려비 당시의 비각 (문화재청 자료 중~)

오래 전에 방문했을 때는 비각에 비가 세워져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문화재 탐방을 즐겨 하던 시절에 보았던 모습이네요.

 

 

문화유산 채널 자료 중~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입구

처음에는 비각을 세우고 비를 보호했지만

현재는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이 개관되어 그 속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새로운 전시관이 생긴 후에도 가 본 적이 있지만

충주를 거쳐 가는 여행이라 다시 들러 봅니다.

 

 

전시관 앞에는 전에 없던 고구려 역사 벽화가 조성되었네요.

여기도 돌아보게 됩니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 관람 시간: 09:00~18:00

* 관람 요금: 무료

* 관람 코스: 1. 입석마을 이야기 - 2. 고구려 이야기 - 3. 충주 고구려비 이야기

 

 

충주 고구려비

국내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구려 석비로, 장수왕이 남한강 유역의 여러 성을 공략하여 개척한 후 세운 기념비로 추정된다. 1979년 입석마을 입구에서 발견되었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탓에 발견 당시 비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있었다.

석비는 돌기둥 모양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면에 모두 글을 새겼는데, 그 형태가 만주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와 비슷하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앞면과 왼쪽 측면 일부만 읽을 수 있는 상태로, 내용 중 처음에 ‘고려대왕(高麗大王)’이라는 글자가 보이는데 여기에서 고려는 고구려를 뜻한다.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제위(諸位)’·‘사자(使者)’ 등 고구려 관직 이름과 광개토대왕 비문에서와 같이 ‘고모루성(古牟婁城)’등의 글자가 보이고, ‘모인삼백(募人三百)’·‘신라토내(新羅土內)’ 등 고구려가 신라를 불렀던 말들이 쓰여 있어 고구려비임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로,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함락하고 한반도의 중부지역까지 장악하여 그 영토가 충주지역에까지 확장되었음을 말해준다. 또한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국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자료로서,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라는 점에서 커다란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문화재청 자료)

 

 

전시관 중앙에 세워져 있는 충주 고구려비를 먼저 만납니다.

각 면별 설명은 전시관 영상자료 캡처로 대신합니다.

 

 

 

충주 고구려비 제1면(뒷면)

충주 고구려비 제1면(뒷면)

 

 

충주 고구려비 제2면(우측면)

충주 고구려비 제2면(우측면)

 

 

충주 고구려비 제3면(앞면)

충주 고구려비 제3면(앞면)

 

 

충주 고구려비 제4면(좌측면)

충주 고구려비 제4면(좌측면)

 

 

전시관 가운데에 보존되어 있는 충주 고구려비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고구려 영토의 경계를 표시하는 비,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고구려비여서 

역사적인 가치가 아주 큽니다.

 

 

 

전시관의 자료들도 참고자료로 올려 봅니다.

중심 고을 충주 이야기

 

 

 

 

입석마을 이야기

선돌마을에서 찾은 국보 비석

돌이 하나 서 있어 마을 이름이 선돌마을이었다.

한자로 옮기니 입석마을이 됐을 뿐,

그 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도 관심을 두는 이도 없었다.

설화에 따르면 조선 시대 숙종이 이곳을 지날 때

마을에 사는 전의 이씨에게 두 돌기둥을 기준으로 안쪽의 산과 밭을 하사했는데,

돌기둥 하나가 충주 고구려비다.

숙종도 이 비석이 무엇 인지 모르고 흔한 돌기둥으로 여긴 것이다.

그 돌기둥은 고구려 장수왕 때 남진 정책으로

충주가 고구려 땅이 된 뒤에 세운 고구려비다.

판독 가능한 비문만 모아도 그동안 공백으로 남았던 충주 지역에서

삼국의 관계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충주 고구려비는 고구려의 한강 이남 진출을 입증하는 유물이자,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고구려 비석이다.

국보 205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에 있다.

(충주 문화관광자료 중~)

 

 

 

 

 

 

고구려 이야기

충주에서 고구려를 만나다

 

 

 

 

 

 

 

고구려의 주력부대 개마무사

 ‘개마’는 기병이 타는 말에 갑옷을 입힌 것을 말하며,

개마에 탄 기병을 개마무사라고 불렀다.

개마무사는 공격 시 적진 돌파 돌격대였고,

방어 시 적의 공격을 방어하는 방호벽이었다.

개마무사들은 화살이나 창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으므로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 당시 개마무사가 5만명에 이르렀다.

(개마무사 설명 중~)

 

 

개마무사 조형물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구려 비석, 충주 고구려비 이야기

  

 

 

야외 전시장

고구려 왕계표와 업적, 생할모습, 고분벽화, 국방 관련 내용들이 벽화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 조형물도 있고 개마무사 조형물도 설치되어 있습니다.

몇 년 사이에 다양한 조형물이 생겼네요.

두루 돌아보며 대표로 몇 장 찍어 봅니다.

 

 

 

 

 

 

 

 

 

 

 

 

 

 

 

 

 

 

 

 

 

 

 

입석마을에 있던 다른 비도 이곳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야외전시장에서... 

 

 

충주 고구려비는 우연히 발견되기 전까지

평범한 농촌마을인 입석리의 경계석으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1979년에 이름 없는 한 아마추어 답사팀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1979년 2월 25일, 송별 답사 모임 중 가금면 부근 한 마을을 지나가다가

차를 세우고 돌아보게 됩니다.

마을 입구에 커다란 돌 하나가 서 있어 입석마을로 불리는 곳인데,

그 비석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던 거지요.

다가가 보니 논두렁에 커다란 돌이 하나 세워져 있는 거였습니다.

여느 마을에서나 볼 수 있는 돌처럼 보였으나

돌 위로 석양빛이 비치자 얼핏얼핏 뭔가가 드러나 보이는 것이었어요.

손끝으로 더듬어보니 뭔가가 새겨져 있었고요.

돌에서 '태왕(太王)'이라는 글자를 확인하자

분명 진흥왕 순수비라고 확신한 회원들은 곧바로 학계에 보고했고

그해 4월 8일부터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진흥왕 순수비로 굳게 믿었으나

수많은 고증과 토론 끝에 결국 고구려비로 판명났다네요.

이끼로 뒤덮인 돌표면에서 글자가 드러났을 때의 그 기분은 어떠했을까요?

하마터면 영원히 묻힐 뻔한 충주 고구려비는

그렇게 해서 세상에 모습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 유일의 고구려비, 충주 고구려비의 발견!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탐구했던 답사팀의 열정과 노력에

실로 존경하는 마음과 무한한 박수를 보냅니다.

 

(2023.06.07.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