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 비 오는 날에 찾은 사적 제194호 서울 헌릉과 인릉
사적 제194호 서울 헌릉과 인릉 (서울 獻陵과 仁陵)
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무덤이다.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다.
1·2차 왕자의 난을 진압하고 정종 2년(1400)에 왕위를 물려받았다.
토지와 조세제도를 정비하고 군사제도도 개혁하였으며,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압하는 등 국정전반에 대한 개혁을 단행하여,
조선 초기의 민생안정을 이룩하였다.
태종의 부인인 원경왕후 민씨는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이며,
태종이 왕위에 오르기까지 큰 힘이 되었다.
헌릉은 쌍릉으로 무덤 아랫부분이 병풍석으로 둘러있으며,
무덤의 형식은 태조의 건원릉을 따랐다.
각 무덤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러서 서로 연결하였고
무덤 앞에는 양석과 호석·문석인·마석을 배치하였다.
무덤 앞의 석물은 고려시대의 현릉·정릉, 조선시대의 후릉과 같이
망주석을 제외하고는 각각 하나씩을 더 갖추었다.
언덕 아래에는 정자각이 있고 비각을 세웠다.
인릉은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무덤이다.
순조는 11세에 왕위에 올랐으나 나이가 어려서
대왕대비인 정순왕후 김씨에게 정치를 돌보게 됨으로써
외척에 의한 정치가 극에 달하였고, 사회가 혼란했다.
인릉은 무덤에 병풍석을 세우지 않았고,
12칸의 난간석을 둘렀으며 양석과 마석·상석·망주석을 세웠다.
언덕 아래에는 2개의 비석을 세웠다.
(출처 : 문화재청)
2016.06.08(수). 비
헌릉과 인릉에 가기로 한 날,
아침부터 비가 오락가락~
그래도 나름 운치가 있을 거라며 들렀는데,
갈수록 비가 더 세차게 오는 것이었다.
돌아갈 수도 없고~
그냥 휭하니 한 바퀴 돌고 왔다.
조선 제3대 태종과 원경왕후의 쌍릉인 헌릉.
아래로 정자각과 비각.
태종(1367 ~ 1422, 재위 1400~1418)
조선 제 3대 왕.
아버지를 도와 조선 왕조를 세우는데 큰 공을 세웠으나
세자 책봉에서 배제되자 불만을 품고 왕자의 난을 일으킴.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에 힘씀.
다음 왕위를 물려줄 세자 책봉에서
3남인 충녕대군을 지목했고,
그 분이 바로 세종대왕이시다.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보물 제1804호.
태종 이방원(1367~1422, 재위 1400~1418)의
생애와 업적 등을 기리기 위해 일대기를 새겨 넣은 비석이다.
1424년(세종 6)에 세운 것으로
조선 초기의 서예문화와 그 경향을 연구자료로써 손색이 없는 금석문이다.
비문은 변계량(卞季良, 재세 1369~1430)이 짓고,
글씨는 성개(成槪, 재세 ?~1440)가 썼으며,
전액(篆額, 전서체로 쓴 머리글자)은 권홍(權弘, 재세 1360~1446)이 썼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귀부(龜趺)는 손상되었지만
이수(螭V首)는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초기 새롭게 명나라의 석비 전통을 받아들이는
비석의 이수양식을 연구하는데 기준작이 된다.
(출처 : 문화재청)
서울 태종 헌릉 신도비 (서울 太宗 獻陵 神道碑)
(출처 : 문화재청)
정자각 뒤에서 바라본 헌릉.
작년에 갔을 때만 해도 왼쪽 언덕 옆으로 올라갔었는데,
이제 산책로 초입으로 바뀌었다.
원경왕후(1365∼1420)
조선 제3대 왕 태종의 비로 본관은 여흥.
여흥부원군 민제의 딸.
18살에 방원과 결혼.
제1차 왕자의 난 때 남편을 도움.
방원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됨.
제1차 왕자의 난 때 방원을 도운 동생들(민무구, 민무질 형제)이
탄핵을 받아 잃는 아픈 가족사를 지니게 됨.
소생으로 양녕, 효령, 충녕(세종), 성녕대군, 4공주.
비를 맞으며 봉분 근처까지 올라가 보았다.
아주 오래 전에는 봉분 앞까지 가 볼 수 있었는데,
이제는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막아 놓았다.
3면의 곡장 안으로 석양 4쌍, 석호 4쌍, 망주석 1쌍...
봉분에는 병풍석을 두르고 난간석을 세웠다.
앞에는 5개의 고를 고인 혼유석...
혼유석(魂遊石)은 혼이 노는 돌이라는 뜻으로
왕릉의 봉분 앞에 이런 직사각형의 돌을 놓았다.
왕릉에서의 제사는 정자각에서 지낸다.
헌릉은 조선 왕릉 중 가장 석물을 잘 배치한 왕릉인 듯 싶다...
규모도 클뿐만 아니라 석물도 많이 배치한 왕릉.
세종의 효심을 알 수 있다.
자신을 왕위에 올려주고, 왕권강화까지 이뤄준 아버지~
최대한 예우를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중간층에는 문인석 2쌍, 마석 2쌍, 팔각형 장명석 2좌...
다른 왕릉에 비해 석물이 많이 배치된 모습...
중간층에는 문인석 2쌍, 마석 2쌍, 팔각형 장명석 2좌...
한 단 아래에는 무인석 2쌍, 석마 2쌍
몇 번이고 들러도 감동으로 다가오는 헌릉...
비가 오는 가운데에 헌릉 봉분 근처까지 돌아보고
다시 내려가 인릉쪽으로 향하였다.
들어올 때 인릉부터 보고 왔지만
봉분 근처까지 돌아보지 못하였기에...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의 합장릉인 인릉.
봉분 둘레에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양석, 마석, 망주석을 세웠다.
합장릉이라 봉분이 하나이고, 문인석과 무인석도 각각 1쌍씩.
왕릉 조성 시기에 따라 석물 배치가 다른 점도 있지만
어쨌거나 헌릉에 비하면 조촐한 편...
순조(1790 ~ 1834, 재위 1800~1834)
아버지는 정조, 어머니는 수빈박씨(정조의 후궁), 왕비는 순원왕후 김씨.
묘호는 원래 순종이었으나 철종 때 바뀜.
정조의 후궁인 수빈 박씨 소생(정조의 2남)이나
정조의 1남인 문효세자가 일찍 사망하여 왕세자가 됨.
11세의 나이로 즉위.
한동안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인릉 전경.
인릉의 비각에는 2개의 비석이 있다.
하나는 철종이 직접 글을 써서 세운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종이 순조를 순조숙황제로 추존하면서 세운 것.
순원왕후1789(정조 13)∼1857(철종 8)
본관 안동.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딸.
익종(효명세자)의 생모, 헌종의 조모.
아들(효명세자)을 잃었고,
손자(헌종)가 어린 나이(8세)에 왕위를 잇자
순원왕후가 7년간 수렴청정을 하게 됨.
헌종 사후에는 철종을 왕위에 올렸으며
3년간 수렴청정을 함.
헌릉과 인릉을 돌아본 후 재실로 향하였다.
재실 마루에 앉아 잠시 수다...
해설사님께 해설을 부탁하고 싶었으나
비도 내리고 하여 포기하고
인근의 화훼단지에 잠시 들렀다.
화훼단지를 휘이 돌아 다시 걸음을 옮겨
'새소리물소리'라는 카페에 들렀다.
옛 기와집을 개조해 꾸민 찻집...
모임원들과 전에도 몇 번 들른 곳~
툇마루에 앉아 밖을 바라본다.
6월의 짙은 초록 풍경이 눈 안 가득 들어온다.
어느 핸가는 저기 뒤편으로 올라가 밤도 줍고 그랬는데......
지난 기억을 더듬는데, 어느새 나온 대추차 한 잔~
이 집 쌍화차와 대추차가 진하다.
나는 이 집에서는 주로 이 두 가지 중 하나를 마신다.
곁들여 나온 떡 한 점씩~
건물 뒤편의 300년 된 노거수 느티나무...
성남시 보호수이다.
바로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벼리'라는 한정식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차만 마시고 가려던 것이 어째 식사까지 거꾸로....
여전히 비는 많이 내렸고
폰에 담는 건 깜빡 잊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퀸스 테이블'이라는 레스토랑인데,
여기도 모임원들과 전에 들렀던 곳~
분위기 괜찮고 음식도 괜찮았던 곳~
다음에는 이 집에 가기로 하고 이날의 모임 끝...
2016.06.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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