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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북 옥천] 어질고 자애로웠던 영부인을 생각하게 되는 육영수 생가

[충북 옥천] 어질고 자애로웠던 영부인을 생각하게 되는 육영수 생가

 

 

'옥천'하면 먼저 육영수 여사와 정지용 시인을 생각하게 된다.

옥천 I.C에서 더 가까운 정지용 생가를 찾고,

이웃한 육영수 여사 생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정말 지척지간에 있으니...

 

복원된 육영수 생가

 

 

 

옥천 육영수 생가 (沃川 陸英修 生家)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고(故)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 29일에 태어난 장소이다.

현재 건물은 없지만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송정승 및 민정승이 거주하여 삼정승의 집이라 불리던 가옥을

육영수 여사의 부친인 육종관씨가 민정승의 자손 민대감에게서 1920년 매입하였다고 한다.

6,047㎡의 대지 위에 1970년 초에 개축된 관리사·사당 등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울창한 산림이 형성되어 있고

본채·사랑채·별당 등 10여동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 터만 남아 있으며

주변은 연못과 정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의 배치는 대문을 들어서면 넓직한 사랑채 터가 있고

그 뒤에 안채 터가 있으며,

청기와 지붕의 사당과 별당 터가 있다.

그리고 주위에는 관리인과 고용인들이 기거하던 부속건물이 있으며

사랑채 터 동쪽에는 연못이 있다.

육영수 여사는 옥천지방의 독농가(篤農家) 육종관의 2녀로 출생하였으며,

이름있는 문벌이었고 우리나라 전통적인 부덕(婦德)을 갖춘 현대여성이었다.

특히 불우한 사람을 위해서 봉사와 희생으로 일관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1974년 8월 15일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여

8월 19일 국민장으로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1600년대 김정승 이후 정승들이 살던 곳으로

조선시대 상류계급의 전형적인 양식의 건축구조를 갖추고 있었던 곳이며,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곳으로 가치있는 자료이다.

(문화재청 자료)

 

 

문화재청 자료는 복원 전의 모습을 나타낸 것 같고

지금은 복원이 된 모습을 볼 수 있다.

 

대문채, 곳간채

 

 

 

아래 대문채, 차고쪽

 

 

 

 

안내도

2010년에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메르스 때문에 한동안 문을 닫았던 육영수 가옥...

우리가 간 날(6.27, 토)에 처음 문을 연 것이라고 하였다.

 

 

 

대문을 들어서면 먼저 사랑채가 당당하게 손을 맞는다.

 

 

 

사랑채

 

 

 

사랑채와 사랑채 오른쪽으로 연당사랑이 보인다.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 왼쪽으로는 창고가 보인다.

더 왼쪽은 아래 대문채 차고쪽이다.

 

 

 

사랑채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연당사랑이 보인다.

연당사랑 앞으로 연지가 조성되어 있다.

 

 

 

연당사랑. 연당사랑 뒤로는 위채,

연지 왼쪽은 중문채이다.

 

 

 

중문채 옆 살구나무에서는 살구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연당사랑쪽에서 본 중문채

 

 

 

연당사랑을 돌아가며...

 

 

 

연당사랑 뒤편에 전시된 사진들

 

 

 

연당사랑에 전시된 사진들

(박근혜 대통령 16세 때의 모습)

 

 

 

여가를 즐기기도 하고 손님 맞이를 하기도 했다는 연당사랑

 

 

 

가신 님의 우아한 자태를 생각나게 했던 접시꽃...

 

 

 

안채 뒤

 

 

 

안채 뒤 마루에 전시된 사진들

육영수 여사의 휘호, 수예작품, 여고시절 사진

 

 

 

육영수 여사를 떠나 보낸 박정희 대통령의 애절한 사랑의 메시지들...

 

 

 

 

 

 

대구 계산성당에서 올린 결혼식 사진

 

 

 

약혼식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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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의 방

 

 

 

안채 육영수 여사의 방

 

 

 

 

 

 

육영수 여사의 방

 

 

 

사당에서 바라본 안채 뒤편 

 

 

 

안채 뒤 높은 곳에 자리한 사당

 

 

 

안채 뒤와 사당 아래에 자리한 석빙고

여름에 음식을 보관하려고 땅을 광처럼 판 냉장시설

 

 

 

위채

 

 

 

 

 

 

위채 문 입구

 

 

 

위채

 

 

 

위채 뒷뜰

 

 

 

위채 뒤편의 텃밭

 

 

 

정자 가는 길

 

 

 

정자

육영수 여사가 이곳에 와서 많이 놀았다고 한다.

 

 

 

 

 

 

활짝 핀 원추리가 육영수 여사의 환한 웃음을 보는 듯 반가웠다.

 

 

 

 

 

 

정자에서 내려가며 바라본 위채 주변 모습

 

 

 

 

 

 

정자에서 내려와 위채 입구를 바라보며...

 

 

 

다시 육영수 여사의 방 앞을 지나 안채로 향한다.

 

 

 

큰 뒤주 2개가 놓여 있다.

 

 

 

연자방아까지...

한눈에 보아도 부잣집임을 느끼게 된다.

 

 

 

오른쪽이 안채

 

 

 

안채

가운데 왼쪽 끝방이 육영수 여사의 방이었다고 한다.

 

 

 

 

 

 

안쪽이 육영수 여사의 방

 

 

 

모친의 방

 

 

 

대청마루

 

 

 

육영수 여사의 휘호를 걸어 놓았다.

 

 

 

오른쪽 끝방이 부친의 방

 

 

 

중문채쪽에서 안채로 통하는 곳

 

 

 

아래채쪽으로 가는 길...

가운데 큰 건물은 창고

 

 

 

아래 대문채, 차고

 

 

 

아래

함께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 사진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

육영수 여사의 부친은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고

한참동안 이 집에 발을 딛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대단한 집안이었으니

당시로서는 군인이었던 박정희와의 결혼을 반대했을 만도 하다.

 

 

 

전국의 많은 사찰에 모셔진 두 분의 영정 모습들...

 

 

 

아래채에서 안채 가는 길, 통하는 문이 보인다.

정말 어마어마한 집이다. 아흔아홉칸집...

 

 

 

다시 안채를 거치고~

 

 

 

안채에서 중문채로 통하는 문을 거쳐서~

 

 

 

사랑채에 딸린 방

 

 

 

사랑채쪽으로 돌아서 나간다.

 

 

 

다시 사랑채...

 

 

 

사랑채 왼쪽의 창고

 

 

 

대문채

 

 

 

옆 담장이 길기도 하다.

삼정승이 거쳐간 곳이라 하니 길지임은 분명할 것... 

 

 

 

대문채

 

 

 

육영수 생가 앞 길가에 세워진 향수바람길 안내도

 

 

 

동네 주변

저편에 오래된 느티나무(370년 된 보호수)와 옥천교동리비석군이 보인다.

오른쪽 골목으로는 옥천향교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곳 구읍 지역이 옥천군 소재지였던 곳이다.

여기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정지용 생가가 있다.

그 사이에 향교와 옥주사마소도 있고...

 

 

 

육영수 생가 앞 논

배산임수 지형을 길지로 치는데, 집 앞의 논이 임수에 해당된다고 한다.

 

육영수 생가를 돌아보면서 문득 어릴 때 기억이 떠올랐다.

고향에서 대단한 고택들을 드나들며 놀았던 기억이...

고대광실 위세당당하던 그 고택들이 부러웠던 기억이...

기억의 저 편~~~을 잠시 더듬게 된다.

 

 

 

2015.06.27(토)

 

[육영수생가지]

전화번호 : 043-730-3417

위치 :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