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세조와 문수동자의 전설이 전해지는 반야사와 문수전
영동 황간에 위치한 반야사는 법주사의 말사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무염국사가 황간의 심묘사에 있을 때
사미승 순인을 이곳에 보내 못을 메우고 절을 창간했다고 전해진다.
반야사라는 절이름은 세조대왕이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낫고 감격하여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를 어필로 하사한데서 비롯되었단다.
절 입구 오른쪽 경사진 곳에 위치한 반야사 부도 2기
반야사 앞을 흐르는 석천과 백화산
심검당 벽에 그려진 반야사의 모습
호랑이와 반야사, 문수전, 건너편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등...
반야사와 호랑이 모양의 산 돌무더기
반야사 삼층석탑 500년이나 된 배롱나무, 긴 꼬리를 세운 호랑이를
반야사 삼경이라고 한단다.
절 마당 건너편 산을 바라보니
꼬리를 치켜든 호랑이 형상의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온다.
극락전, 대웅전, 지장전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대웅전 내부와 불상
반야사 동종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 (永同 般若寺 三層石塔)
보물 제1371호
이 탑은 반야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라 한다.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을 이루고
그 위에 3층의 탑신(몸돌)을 올린 석탑으로 높이는 335cm이다.
토단 위에 건립되어 있는데,
지대석으로부터 마지막 층까지 대체로 완전한 편이다.
이 석탑은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며,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꼽도록 하면에 홈을 판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문화재청 자료)
높이 335cm.
지대석 위에 1층의 기단, 그 위에 3층의 몸돌을 올린 석탑.
초층탑신의 결구수법은 신라 석탑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
아랫면에 홈을 파서 기단면석과 초층탑신을 세우도록 한 점은
충청도와 전라도 일원에 건립된 백제계 석탑의 양식이라는...
삼층석탑과 뒤로 보이는 적묵당
적묵당.
스님들의 수행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수령 500년이나 되었다는 배롱나무
반야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극락전.
원래 반야사의 대웅전으로 건립되었으나
새로운 대웅전 건립으로 극락전으로 쓰이고 있단다.
보호수인 배롱나무와 반야사의 전각들
삼층석탑 옆의 오래된 은행나무
삼층석탑과 대웅전
극락전 앞의 삼층석탑과 배롱나무
범종각
범종각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문수전으로 가기로 한다.
문수전으로 가는 길이다.
석천이 흐르고 있다.
누군가의 소망들이 켜켜이 쌓인 돌탑들이 나그네를 맞는다.
더운 여름날, 조용히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싶은 곳...
석천에서 더위를 식히고
건너편 산에 올라가 전망을 살피고 싶은 곳...
석천 건너 산 허리에 전망대가 보인다.
저곳에서 내려다보는 반야사 전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거기까지 갈 시간은 없고 문수전까지만 가기로 한다.
문수동자가 세조를 이곳으로 안내하여
물을 한 모금 마시게 하신 다음 목욕을 하실 것을 권했고
정말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망경대 높은 곳 아스라한 곳에 세워진 문수전...
세조의 피부병을 낫게 한 문수보살을 기리는 전각이다.
망경대와 문수전
영천과 망경대 주변.
문수전으로 오르는 길에 아래를 내려다본다.
석천 주위에 넓은 바위가 마당처럼 펼쳐져 있다.
문수전으로 올라갈 때는 석천을 거슬러 가서 계단을 이용해서 올라갔다.
가파른 계단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문수전
세조대왕과 문수동자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이곳...
신미대사가 세조대왕(世祖大王)의 분부로 반야사를 중창한 후에
세조대왕이 속리산 복천사(福泉寺)에 거동하였다가
이곳까지 다녀갔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세조대왕이 이곳에서 머무를 때 느닷없이 사자를 탄 문수동자가 나타났다고 한다.
세조가 이 문수동자를 따라서 석천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그곳에 약수가 솟아나는 샘이 있었다고 한다.
임금이 그 약수를 떠서 마시고 그 물로 몸을 닦으니
병환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에 이 사실을 길이 전하기 위해서
사자 위의 문수동자 상을 조각하여 보존하고 있단다.
치악산 상원사에도 세조와 문수동자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도 그랬다.
사자를 탄 문수동자 상
내려갈 때는 절 뒤로 바로 내려갔다.
거리는 석천을 거슬러 가는 것보다 좀 짧은 듯...
심검당
반야사도 템플스테이를 하는 절이었다.
반야사는 고려 충숙왕 때 무이국사가 출가한 곳이며,
조선 초기 벽계정심선사가 이곳에 주석했다고 한다.
반야사에는 여러 가지 설화가 전해오고 있다.
문수동자와 세조 이야기 외에도 황도령과 처녀귀신 이야기,
벽게정심선사 이야기, 호랑이(산신령) 화현 영험 설화 등...
황도령과 처녀귀신 이야기는
고려 충숙왕 때 글재주가 좋은 황도령이 백일장에 참석했는데,
물 수자와 뫼 산자를 몰라 낙방했다고 한다.
상심한 황도령이 반야사의 일우스님에게 배우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황도령 얼굴색이 점점 나빠져서 보니
황도령이 처녀귀신에게 씌었다고 한다.
일우스님은 황도령의 전신에 금강경을 빽빽하게 쓰고
그 위에 옷을 입혔다고 한다.
처녀귀신은 금강경의 힘에 눌려 괴로워하다가
황도령의 귀를 물어뜯고 달아났다고 한다.
황도령의 전신에 금강경을 쓸 때 귀를 빼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황도령은 어쨌든 금강경으로 하여 살아났고
그 인연으로 출가하여 무이(귀가 없다)법사라고 불렸다고 한다.
반야사는 호랑이(산신령) 화현 도량이기도 한다.
반야사에는 벽계정심선사 이야기도 전한다.
조선시대 불교 탄압 시기에 그는 속인처럼 살려고 과부를 얻었다.
그러나 3년이나 거들떠보지 않으니 과부는 떠나기로 한다.
벽계정심선사는 과부에게 수고비로 은 표주박을 건넨다.
과부가 샘물가에서 물을 마시고 보니 표주박이 보이지 않아 그냥 놓아두고
3년이나 떠돌며 영감을 얻으려 하였으나 헛수고였다.
과부가 다시 벽계정심선사를 찾아가니
선사는 과부가 다시 올 줄 알았다고 한다.
표주박을 놓아둔 자리에 가 보라는 선사의 말에
과부가 가 보니 정말 그 자리에 표주박이 그대로 있었다.
그걸 확인한 과부는 죽을 때까지 벽계정심선사를 잘 모셨다고 한다.
반야사에 불이 들어왔다.
이제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할 시간...
입구의 기도접수처
잠시 둘러본다고 한 것이 벌써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았다.
여름날 배롱나무가 한창일 때쯤 다시 한 번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2014.11.15(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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