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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북 영동] 아픈 역사의 현장,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와 노근리 평화공원

[충북 영동] 아픈 역사의 현장, 노근리 사건 현장과 평화공원

 

일이 있어 지방에 가는 길에 영동 노근리와 반야사에 잠시 들렀다.

느긋하게 돌아보지는 못하고 마음 바삐...

먼저 노근리 현장에...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등록문화재  제59호

 

1934년 건립

이 다리는 경부선 철도 개통과 함께 개근천(愷勤川) 위에 축조된 아치형 쌍굴 교각으로,

한국전쟁 당시 많은 양민들이 피살된 ‘노근리 사건’ 현장으로 유명하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만인 1950년 7월 26일부터 29일까지 4일간

후퇴하던 미군이 영동읍 주곡리, 임계리 주민과 피난민들을

굴다리 안에 모아 놓고 집단 학살을 자행하였는데

지금까지도 총탄 흔적(○, △ 표시)이 남아 있어

당시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문화재청 자료)

 

 

'이곳은 노근리 사건 현장입니다' 라는 말이 가슴에 멍 하나 생길 듯한 느낌을 주었다.

 

 

아픈 유산...

 

 

 쌍굴다리 주변에는 ○, △로 표시된 총탄 흔적이 가득했다.

당시에 피난민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쌍굴 앞 냇가에는 노근리 사건에 대한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노근리 쌍굴다리와 철로 위 비행기 폭격지점이 표시된 걸 보면서

당시의 처절했던 피비린내를 생각하며 몸서리를 쳤다.

 

 

사건 개요를 보아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노근리 쌍굴다리

 

 

총탄의 흔적들...

 

 

 

 

뒷산으로 올라가 보았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 영위 앞에서 잠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이곳은 노근리 사건 희생자 유해발굴지...

 

 

비행기 폭격지점 쯤이었을 경부선 철로 위로

 열차가 지나가고 있다.

 

 

 열차로 이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이런 슬픈 역사의 현장을 알까~~~

나 역시 지나간 적이 있었지만 당시에는 그저 무심결에 지나갔었을 뿐......

 

 

 산에는 절정을 넘긴 억새가 아직은 볼만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위로 더 올라가면 전망대가 자리잡고 있다.

 

 

 

 

 

경부선 철로 아래로 뚫린 배수로...

아마 이곳으로도 피난민들이 숨었을 것이다.

 쌍굴과 주변을 본 후 건너편 평화공원 쪽으로 이동하였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25∼29일,

이곳 인근의 경부선 철도를 따라 이동하는 피란민 대열을 향해

미군이 공중 공격과 기관총 사격을 가해 일어났다.

정부에서는 2005년에 유족 등의 신고를 받아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을 피해자로 확정.

 

2011년에는 사건 현장 부근에 노근리 평화공원을 조성했다.

위령탑, 평화기념관, 교육관, 조각공원, 야외전시장 등...

 

2004년 '노근리 사건 관련 특별법'을 제정했고,

2011년에 사건 현장 부근에 노근리 평화공원을 조성...  

 

 

 

 

세트장 

 

 

야외 전시장

 

 

조각공원, 위령탑, 기념관...

 

 

교육관...

 

 

 위령탑과 평화기념관

 

 

평화기념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부조를 보며...

 

노근리 지역의 피난민들에게 닥친 시련에서부터

사건을 알리고 진상을 요구하는 일 등을 표현해 놓았다.

 

 

 

 

 

 

 

 

 

 

관련 부조들을 보며 기념관으로 향하였다.

 

 

 

 

기념관 내부를 돌아본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다시 찾아온 시련, 남북 분단...

 

 

 그리고 6.25 전쟁, 그 여름날의 기억...

 

 

그 여름날의 기억을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들의 육성에서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된다.

 

 

 

 

 노근리 사건 현장 모형

 

 

 

 

 

 

비통의 길...

당시의 양민들이 당했을 그 비참함을 느끼며...

 

 

우리는 노근리의 억울한 넋들을 추모한다.

 

 

정부에서는 2005년에 유족 등의 신고를 받아

사망 150명, 행방불명 13명, 후유장애 63명을 피해자로 확정했다. 

 

 

비통의 길을 나오면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이 나온다.

우리는 그 앞에서 다시 한 번 넋을 위로하게 된다.

 

 

위로 올라가 보았다. 

 

 

 

 최초의 노근리 사건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정은용, 1994년)

 

정은용 님의 이 실화소설로 인해 노근리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이 분은 사건 당시에 장남(당시 5세)과 딸(3세)을 잃었고,

아내도 팔꿈치와 옆구리에 상처를 입었다. 

 노근리 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진상 규명에 앞장섰던 그 분은

 지난 여름에 유명을 달리했다.

먼저 간 가족을 잘 만났으리라...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에 제출한 청원서(사진 위 좌우)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유감 표명

피해 보상은 어떻게 할 것인가...

 

 

 노근리 사건 특별법 제정

 

 

 

 

 

 

 한국사 교과서에 노근리 사건 기술되다.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의 옛날과 오늘날 모습 등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정말 전쟁은 없어야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화기념관을 대충 둘러본 듯하다.

영동을 상징하는 것들을 많이 전시해 놓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위령탑을 향하여 가는 길... 평화기념관.

 

 

 

 

경부선 철로 건너편 산에 전망대가 보인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 위령탑

 

 

 

 

 

 

 피난민들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노근리 사건 희생자 위령탑

 

정삼일 시인의 시비도 세워 놓았고,

정구도님의 '노근리여 영원하라' 추모시비도 세워 놓았다.

 

 

생태습지공원 가는 길...

 

 

노근리 쌍굴다리를 바라보며... 

 

 

 

 조각공원

 

 

 

 

 

 

 

시간에 쫓기니 작품 하나하나 담을 수는 없었고,

눈으로 주로 감상하면서 둘러보았다.

 

오래 묻혀 있었던 아픈 역사의 현장을 보면서

참 많이도 참아왔을 유족들의 한없는 슬픔에 숙연해졌고

이런 비극은 다시는 없어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같이 아팠던 시간이었다.

 

2014.11.15(토)

 

* 소재지: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1길 3-2 (노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