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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미얀마,라오스

[미얀마 민군] 미얀마 4대 고대도시라는 민군 3 - 민군 종

[미얀마 민군] 미얀마 4대 고대도시라는 민군 3 - 민군 종

 

 

나의 수행비서는 '민군종', '민군종'을 몇 번이고 읊는다.

도중에 '언니, 이뻐요.' 도 한 박자 들어가고...

대답으로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나도 '언니도 이뻐요.'를 추가로 넣어주고...

 

외관.

무게 약 90톤, 종의 둘레 5미터, 높이 약 3.7미터

 

이 종은 1805년에 콩바웅(Kongbaung)왕조의 보다파야왕(Bodawpaya,1782~1819)에 의해 만들어져,

민군 파고다에 헌정되었다고 한다.

 

민군 동쪽, Ayeyarwady강 중앙에 있는 섬에서 주조되었다고 하며,

1811년 Raft Creek운하로 옮겨져,

종 아래에 2겹의 덮개를 씌운 바지선을 축선한 후,

운하에 물이 찰 정도의 비가 오길 기다려 옮겨졌다고 한다.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종 다음으로 큰 규모의 종으로, 현재 타종이 가능한 세계최대의 종이란다.

 

기념사진...

 

종 내부 윗부분

 

내부 아래. 수많은 글씨...

 

흔적을 남기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같은 것인지...

 

 

종각 건물

 

 

(아래는 하나투어 자료 인용)

 

세계 최대의 종.. 민군 종(The Great Mingun Bell)

미얀마 역사상 가장 길었던 왕조인 콩바웅(Kongbaung)왕조의 보다파야왕(Bodawpaya,1782~1819)에 의해 1805년에 만들어져, 민군 파고다에 헌정되었다. 민군 종은 갈라져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종 다음으로 큰 규모의 종으로, 현재 타종이 가능한 세계최대의 종이다. 무게 약 90톤, 종의 둘레 5미터, 높이 약 3.7미터의 민군 종은 갈라져서 사용되지 않고 있는 모스크바 크렘린에 있는 종 다음으로 큰 규모의 종으로, 현재 타종이 가능한 세계최대의 종이다. 종은 민군 동쪽, Ayeyarwady강 중앙에 있는 섬에서 주조되었다. 강을 가로질러 민군 파고다까지의 수송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인력이 동원되었다. 주조된 종은 1811년 Raft Creek운하로 옯겨져, 종아래에 2겹의 덮개를 씌운 바지선을 축선한 후, 운하에 물이 찰 정도의 비가 오길 기다려 옮겨졌다고 한다.

종의 주조작업은 1808년4월 29일 밤에 시작되었다. 무게 65,877비스(약107톤)의 구리가 종의 주조에 소요되었다. 종의 도리부분에 "왕조 28년, 1810년 3월 23일 주조되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는 거의 2년 동안의 작업기간을 말하고 있다.
아름다운 종의 울림소리를 얻기 위해, 고대 미얀마 전통의 제조법에 따라, 5가지의 금속(금, 은, 동, 철, 납)을 합금하여 주조되었다. 종을 주조하는데 쓰인 비용만해도 658,726챠트가 들었다. 종의 무게는 55,555.55비스(90.52톤; 꽁바웅시대측정, 측정시기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지만 대략 90톤~101톤내, 1982년 기네스북기록;101.4톤)이다.

▶종의 무게: 미얀마인들은 무게의 기억을 용이하게 하기위해 연상표현법을 전통적으로 지니고 있다. 종의 무게를 의미하기 위해 사용된 표현인 "민쀼 흐만 흐만 쁘와(Min Phyu Hman Hman Pyaw)" 말을 보면, 자음'M','Ph','Hm','P'는 5의 5번, 매번 돌아오는 5번째날 목요일을 나타내고 있다. 즉, 어원에 따르면 viss단위로 종의 무게를 나타내면 55,555비스가 가장 유력하다.
종의 외지름 16피트 3인치(4.96미터), 외부높이는 12피트(3.66미터), 내부높이는 11피트 6인치(3.51미터), 가장자리의 외부원주는 50.75피트(15.47미터), 두께는 6인치~12인치(14cm~29cm)이고, 종의 꼭대기에서 가장자리까지는 20.7피트(6.31미터)이다.
거대한 종은 민군의 동쪽, 아웨야와디강(Ayeyarwady River)중심에 있는 섬에서 주조되었다. 강을 가로질러 민군까지의 운송은 힘든 작업이었다. 그래서 왕은 운송에 대한 방법을 고안하는 사람을 친히 왕실에 불렀으나, 실행이 불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완전히 제모습을 갖춘 종은 200,000 (viss)/ 730,000 lbs/ 331,120 kg의 무게로, 아웨야와디강 서쪽어귀까지의 운송은 어려운 작업이 남게 되었다. 결국, 포대장, 아마욱 웬(Amyauk Wun)을 양곤에 보내 운송에 필요한 기계장치와 종을 배에 실고 내리는 작업방법을 아는 이를 요청하게 된다. 민군에 종을 운송하기전, 종아래부분를 파서, 그곳에 두 척의 카라웨익 바지선(Karaweik Barge)을 만들었다. '라프트 크릭(Raft Creek)'라고 부르는 36피트(11미터)의 거대한 운하가 건설된 후, 1811년에 왕은 종을 운송할 거대한 바지선 축조를 명하였다.
종아래에 두겹으로 된 바지선과 운하가 완성되어, 이제는 강물이 라프트크릭 운하를 채우고, 바지선을 뜨게 하는 우기만을 기다리게 되었다. 1811년 드디어, 운하에 강물이 차고, 왕은 친히 강을 채운 배들과 황금빛 바지선을 이끌며 자축하였다. 소형선대에 둘러싸인 종을 실은 바지선은 잘 견디었고, 무사히 종을 운송할 수 있었다. 왕과 왕비, 왕자, 공주, 왕손들, 장관, 국민들이 경사스러운 이날 축하연에 참석하였다. 운송에 동원된 금속 주물공, 목수, 브라민, 기술자, 노동자들 모두에게 많은 돈과 옷감, 장신구 등을 포상하였다. (하나투어)

 

 

신쀼미 파고다로 가는 길이다. 

수행비서는 여전히 동행 중...

거리의 상점들

 

  

수호신 같은 큰나무... 

 

옷 가게...

 

이것이 택시란다. ㅎㅎㅎ...

 

2012.12.2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