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군산] 군산 근대역사문화의 발자취를 따라...2
< 2013.02.27(수) 오전 >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 히로쓰 가옥) - 해망굴 - 복성루 - 이영춘 가옥
-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과 석등 - 개정면 구 일본인 농장 창고 - 탑동 삼층석탑 - 임피역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
전날엔 이미 문이 닫혀서 들르지 못했던 곳...
다시 찾았다.
조금 일찍 간 감이 있었는데,
때마침 일찍 출근하신 해설사님 덕에 별로 기다리지 않고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아픈 수탈의 역사... 그 한 장면을 장식했던 주택이다.
등록문화재 제183호.
전북 군산시 구영1길 17 (신흥동).
(구) 히로쓰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유층 거주지역이었다.
이 주택은 포목점을 운영하던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지은 2층 목조주택으로
(구)호남제분의 이용구 사장명의로 넘어가 오늘날까지 한국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다.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등 많은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이 주택에서 촬영되었다.
가옥 구조도.
‘ㄱ’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다.
두 건물 사이에는 일본식 정원을 꾸며놓았다.
2층 건물.
1층에는 응접실, 온돌방, 다다미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금고 등이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일본식 정원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나무가 우거진 정원
1층 끝 연결된 두 개의 다다미방이 있는 곳
1층 끝 다다미방 두 개 연결된 곳 내부.
장군의 아들인가~~ 하야시 나오는 장면... 영화 촬영장소로 이용되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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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응접실. 장식물을 올려 놓는 공간이 있는 곳 |
내부 - 방 |
내부 - 1층 금고 2층 금고는 비공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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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1층 금고 문턱이 무척 높고 단단한 쇠문턱이다. |
2층 다다미방 앞 복도에서... |
1층 온돌방 앞 복도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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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뒷편 - 우물이 보이고 오른쪽 옆으로는 관리인의 집도 붙어 있다. |
바깥 뒷편 |
바깥 뒷편 - 작은 대문이 보인다. 이 집에는 대문이 여러 개 |
출입 대문
군산 해망굴
군산시의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자리한 해망령을 관통하는 터널로서
수산물의 중심지인 해망동과 군산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1926년에 시작된 제 3차 축항공사를 통해 화물하차장 확대, 부잔교 추가설치, 창고건설 등이 수행되었고
해망굴도 이 과정에서 완공된 것이다.
길이 131m, 높이 4.5m.
현재는 자동차의 출입을 막아 보행자만 통과가 가능하다.
한국전쟁 중에는 군산에 진주한 인민군 지휘소가 이곳에 자리하여
매일 같이 연합군과 공군기들의 기관총 폭격을 받아 총알자국이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군산을 생각하면 월명공원의 겹벚꽃이 생각난다.
5월 초 봄날, 이곳 위의 월명공원에 오르면 왕겹벚꽃이 그 화사한 웃음을 한껏 보여줄 텐데......
수시탑 주변과 채만식 문학비 주변으로 가득하던 그 연분홍빛...
다시 한 번 그 환한 웃음을 보고 싶은 마음 간절한데~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중국음식점 복성루
짬뽕이 유명한 집.
이 초라한 음식점을 찾는 이가 그렇게나 많다니...
주로 외지에서 찾아오는 이가 많다는...
주위가 너무 지저분하다.
내부도 그런 편이어서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은 주인이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당분간 휴업이라는 문구가~~~
일부러 찾아온 듯한 사람들...
아쉬워하며 문에 붙은 쪽지를 자꾸만 쳐다본다.
이영춘 가옥(李永春家屋)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0호.
전북 군산시 개정동 413-11.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식, 일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띠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소가 되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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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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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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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뒷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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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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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보조금이 나와 지어졌다는 군산간호대학교(옛 개정간호전문)의 일부 건물
지금은 군산간호대학교 학생회관으로 쓰이고 있다.
발산초등학교 내의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과 발산리 석등 주변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群山 鉢山里 五層石塔)
보물 제276호.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
원래는 완주(完州) 봉림사터에 있던 것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였으나
지금은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까지만 남아있다.
아래·위 기단 모두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으며,
기단 위로 4층의 탑신에는 각 층의 몸돌마다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경사가 급하고 추녀 끝이 약간 들려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밑에는 3단의 받침을 두어 고려시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탑 머리 부분에는 머리 장식이 일부 남아 있으나 훗날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있으며,
고려탑의 간결한 아름다움이 잘 나타나 있다.
군산 발산리 석등 (群山 鉢山里 石燈)
보물 제234호.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뒷뜰).
원래는 완주지역에 세워져 있던 석등으로, 일제강점기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이다.
받침의 가운데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모습으로,
표면에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는데,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화사석은 4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깍아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 면에는 4개의 창과 사천왕상(四天王像)을 번갈아 두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화사석에 새겨 놓아 등불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붕돌은 8각으로 각 모서리선이 뚜렷하며,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 치켜올림이 시원하다.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된 머리장식 받침대를 마련해 놓았으나,
머리장식은 남아있지 않다.
화사석의 사천왕상과 지붕돌의 양식 등을 통해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듯 하지만,
받침부분의 기둥이 4각으로 변하고 화사석 역시 4각을 닮은 8각으로 이루어져 있어,
8각에서 4각으로 변해가는 과도기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석등을 만든 시기도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산리 육각부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85호.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5-1(발산초등학교 뒷뜰)
이 부도는 1903년 군산에 농장을 개설한 일본인 시마따니 야소야라는 사람이
위치를 알 수 없는 절터에서 가져온 것으로 전하며,
현재 발산리오층석탑(보물 제276호) 및 석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육각의 지대석 위에 2단의 하대석이 있는데
하단은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단은 복련과 함께 중대받침이 높게 각출되어 있다.
육각의 중대석에는 우주를 모각하고 있으며
앙련의 상대석 위에는 낮은 탑신받침이 있다.
육각의 탑신석은 2개소에 문비를 모각하였으며,
4면에는 희미하여 확실하지는 않지만 사천왕상이 각출된 것으로 보이며,
옥개석 아래에는 3단의 옥개받침과 함께 연자와 부연을 모각하였으며
상면은 기왓골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오각부에 귀꽃장식이 있었으나 모두 결실되었으며 상륜부도 결실되었다.
전체높이는 175㎝ 내외이다.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群山 開井面 舊 日本人農場 倉庫) - 시마타니 금고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뒷뜰에 위치)
이 건물은 군산 지역의 일본인 대지주가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철근 콘크리트조로 견고하게 지었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이중 잠금 장치가 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 때문에 한국전쟁 때에는 군산에 주둔한 인민군들이 옥구 지역 우익인사들을 감금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였다.
현금과 서류뿐만 아니라 일본인 대지주가 불법 수집한 수많은 한국의 서화와 도자기 등 골동품을 보관하던 건물로,
일본인이 자행한 수탈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이곳에 보관되었던 수많은 보물급 예술품들이 중앙박물관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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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동 삼층석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6호.
전북 군산시 대야면 죽산리 66-1.
옛 백제 지역에 세운 고려시대의 석탑으로서, 백제탑 양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어 지방적 특색을 보여준다.
1층 기단(基壇)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으로, 백제탑 양식을 일부 보이고 있다.
기단은 밑바닥돌이 탑의 보수 당시 콘크리트에 묻혀 버렸다.
탑신부는 각 부분을 조립하듯 여러 돌로 짜 맞추었는데,
1층 몸돌은 큰 편이나, 2·3층의 몸돌은 높이가 급격히 낮아졌다.
1층 지붕돌은 별도의 돌로 2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돌은 얇고 넓으며 네 귀퉁이가 살짝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노반(머리장식받침),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앙화(활짝 핀 연꽃모양장식) 등이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있다.
임피역
등록문화재 제208호
전북 군산시 임피면 서원석곡로 39 (술산리)
임피역사는 일제시대 군산선으로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로써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임피역은 당시 농촌지역 소규 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임피역사는 2동, 1층 규모로 역사 건축면적 86.48㎡, 화장실 43.32㎡이다.
역사는 폐역되었다가 활용할 목적으로 현재 공사중이다.
군산에서 더 돌아볼 곳도 많았지만 이번엔 일단 여기까지...
귀경할 생각을 한다.
2013.02.27(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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