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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논산]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논산명재고택 (論山 明齋 古宅)

[충남 논산] 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 논산명재고택 (論山 明齋 古宅)

 

2013.02.16~17

설연휴 지난 다음 주말을 맞아 1박 2일 논산 익산 여행을 계획하였다.

이미 가 본 곳이 많지만 더러는 남편이 못 본 곳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나의 방랑끼를 잠재우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첫 코스는 논산의 명재윤증고택...

이곳은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위치: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교촌리)

 

논산명재고택 (論山 明齋 古宅)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윤증(1629∼1714)이 지었다고 전하는 집이다. 후대에 수리가 있었던 듯 하며 그 세부기법은 19세기 중엽의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다. 노성산성이 있는 이 산의 산자락에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잡고 있다.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서,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집 앞에는 넓은 바깥마당이 있고 그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어 정원을 꾸몄다. 또한 안채 뒷쪽에는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독특한 뒤뜰을 가꾸어, 우리나라 살림집의 아름다운 공간구조를 보이고 있다.

모든 건축부재의 마감이 치밀하면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도 양호한 조선의 양반주택으로 중요하다.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하여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

※ 위 문화재는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문화재청)

 

 

논산명재고택 사랑채 

높은 기단 위에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다.

사랑채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중문간채

 

 

사랑채 누마루

 

 

 

중문간채

앞쪽에서 본 중문간채의 모습

 

사랑채 누마루 단 아래에서 본 중문간채

 

안쪽에서 본 중문간채의 모습.

중문간채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도록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을 내었다.

가운데 벽면이 돌아가게 한 중문으로

바깥에서는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한 것이다.

또한 아랫쪽으로 틈을 두어

안채에서 보면 누가 드나드는 것인지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안채

중문간채를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보인다.

왼쪽으로 조금 보이는 곳이 중문간채에서 안채로 들어올 때 돌아가게 만든 벽

  

가운데로 안채 대청이 보인다.

몇년 전에 방문했을 때는 노모님이 계시더니 지금은 요양병원에 계신단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이곳이 노인에게 무리가 되는 듯...

 

안채를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본 모습

 

중문간채에서 안채로 들어서서 맨 오른쪽... 사랑채 뒷쪽과 같이 보인다.

'ㄷ'자 모양의 안채는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이 되고 있다.

 

넓은 마당

 

한 무리의 학생팀이 문화유산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앞 정원

넓은 바깥마당 앞에 인공연못을 파고 가운데에 원형의 섬을 만들었다.

 

인공연못속 원형의 섬

 

 

 

사당

 

독립된 공간의 사당 모습

 

사당 앞쪽에는 장독이 가득.

 

 

 

작은 도서관

 

 

 

 

기타 풍경들 

 

 

 

  

 

 

 

 

2013.02.1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