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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문경] 보물 제172호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碑)

 

보물 제172호 문경 봉암사 정진대사탑비 (聞慶 鳳巖寺 靜眞大師塔碑)

 

 

일주문을 통해 봉암사를 둘러본 터라 정진대사탑비는 내려가는 길에 들렀다.

봉암사 공양간을 내려와 해우소를 지나 상봉대사탑비를 지나치고 휴휴암을 지나면

바로 정진대사탑비가 보관된 비각이 보인다.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창건한 스님이라면 정진대사는 봉암사 중흥에 힘쓴 스님이다.

이수에는 정진대사탑비임을 알려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비몸에는 바둑판 모양의 틀에 글자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문화재 명칭 통일에 의해 정진대사원오탑비에서 정진대사탑비로 부르게 되었다.

아래는 문화재청 설명 자료이다.

 

 

봉암사에 자리잡고 있는 고려전기의 탑비로 봉암사를 중흥한 정진대사의 것이다.

정진대사(878∼956)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활약한 승려로, 효공왕 4년(900) 당나라에 들어가 25년간 유학하고 경애왕 1년(924)에 돌아와 신라 경명왕의 극진한 예우를 받았다. 고려 태조 18년(935)에는 봉암사를 두번째로 크게 짓고, 불교의 중흥에 이바지하기도 하였다. 특히 고려 전기의 태조·혜종·정종을 선문(禪門)에 들게 한 장본인으로, 79세의 나이로 입적하자 왕은 ‘정진’이라는 시호와 ‘원오’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리돌을 올린 모습으로, 거북의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이 두드러지게 커 보인다. 꼭대기에는 불꽃무늬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가 또렷하게 조각되어 우뚝 솟아있다.

고려 광종 16년(965)에 세워진 비로, 전체적인 조형이 간략화되었으며 조각 기법이 퇴화하였다.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 이몽유가 짓고, 명필 장단열이 글씨를 썼다.(문화재청)

 

 

귀부

 

비몸

 

 

 

 

 

이수에는 정진대사의 비임을 알려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보주가 얹혀 있다.

 

 

  

군데군데에 앞 글과 조금 띄어져서 上자가 나오는데, 임금을 뜻한다고 한다.

 

 

 

 

이수에는 네 귀퉁이마다 두 마리씩, 가운데 위로 한 마리를 더하여 모두 9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 481-2

 

정진대사탑을 찾으러 옆길로 올라갔다가 결국 찾지 못했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길을 막아 놓았기에...

아쉽지만 돌아설 수밖에...

 

 

2012.05.2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