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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문경] 대중에게 일년에 한 번 문 여는 절집, 문경 봉암사

 

대중에게 일년에 한 번 문 여는 절집, 문경 봉암사

 

 

문경 봉암사는 일년에 한 번 부처님오신날에만 대중에게 문을 여는 절집으로 알려져 있다.

실은 백중날(음 7.15)에도 문을 연단다. 그러니 연중 두 번 여는 셈...

6년 전에 이곳 봉암사를 한 번 찾은 적이 있었다. 부처님오신날에...

그 때는 절집 한참 아래 동네인 상괴리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를 탔었는데

이번에 찾았을 때에는 사람들이 더 많아서 7km 후방인 하괴2리라는 동네 어귀에 차를 댔다.

셔틀버스가 거기까지 와서 사람들을 실어나른다.

주변에 전경들이 나와 있었는데, 줄을 서 있던 사람들과 언쟁이 조금 벌어지기도 했다.

미리부터 주차하고 줄을 서 있던 사람들을 지나쳐가는 차들의 모습이 곱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

누구는 통제하고 누구는 들여보내느냐는 항의였다.

다행히도 얼마 기다리지 않아 셔틀버스를 탈 수 있었다.

 

봉암사는 다른 절들과는 달리 연등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

대웅보전과 금색전 앞에는 오직 흰 팔각등 한 가지만...

누구나 성의껏 헌금을 하고 등을 달 수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6년 전에도 그랬듯이 성의껏 등값을 지불(?)하고 식구들 이름을 적어 빈 등에 붙인다.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일년에 한 번 있는 이 행사에는 꼭 참석을...

 

이곳저곳 누비며 문화재 감상을 하고 사진도 좀 찍었다.

좀 느긋하게 점심 공양을 하고 더 돌아볼 찰나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그 때까지 점심 공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비를 쫄딱 맞기도 하는 모습...

지나가는 비였는지 금방 그쳐서 경내를 조금 더 돌아보고 마애불좌상이 있는 백운대로 향하였다.

백운대로 오르는 도중의 산길이 있는 곳마다에는 줄을 쳐 놓아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아예 스님이 지키는 곳도 있었다. 

백운대에도 사람들이 많았고, 이곳에도 스님 한 분이 당번을 서는 모습...

백운대 주변은 경치가 참 좋다.

주변의 바위 풍경도 좋고, 소 풍경도 좋고, 나즈막한 폭포는 정겹다.

 

백운대에서 내려와 다시 절집을 살피며 정진대사탑비가 있는 쪽으로 이동하였다.

마침 그곳에는 대학에서 답사나온 교수님과 학생 몇이 공부 중...

잠시 탑비를 살펴보고 정진대사탑을 찾으러~

산길을 올라갔으나 표시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 말고도 다른 부부가 먼저 갔었는데, 찾지 못 한 상태...

뒤이어 따라온 답사팀도 찾지 못 하고...

산 속 경작지를 발견하고 따라가니 산 속에 집이 한 채 보인다. 

집으로 통하는 길은 보이지 않는데 사람 소리가 난다.

큰소리로 외치니 스님인 듯한 한 분이 나오신다.

결론은 지금은 통제 중...

그곳이 위험하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것이 문화재 보호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흠... 가긴 틀렸다.

길은 도중에 본 출입통제구역이라고 붙은 그곳이렸다!  

 

조금은 아쉬운 발걸음을 떼며 내려간다.

이미 사람들은 많이 빠져나간 상태...

셔틀버스가 있는지 없는지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내려가는데,

셔틀버스다!

참 운이 좋았다.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버스를 타게 되었으니...

버스가 우리가 차를 댄 바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 많던 차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차만 달랑 한 대 외로이 있는 걸 보니 절에서 보낸 시간이 참 길었나 보다. ㅎㅎ...

 

 

< 창건 >

  봉암사는 지금부터 약 1100여년전 신라 헌강왕 5년에 지증국사께서 창건한 고찰로서 선종산문인 구산선문의 일맥인 희양산문으로 그 사격이 매우 당당하다.

  당시 이곳은 신라 문화의 정수인 선풍을 크게 일으켜 구산선문 가운데 희양산파의 주봉을 이루었던 곳이다. 특히 신라 제 49대 헌강왕은 화풍으로 소폐하고 혜해로 유고할 유신정치를 뜻하고 있었는데 이런 헌강왕의 개혁 의지에 이념을 제공한 것이 지증대사의 선이었다.

 

< 중창불사 >

  그후 봉암사는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였는데 고려시대에도 많은 고승을 배출하여 불교중흥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던 대선찰이다. 그런데 조선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사찰 건물이 소실된 것을 불기 2499년(1955) 금색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을 다시 건립하였으며 최근의 도량으로 모습을 일신하게 되었다.

  봉암사는 불기 2526년(1982)부터 종립선원으로 희양산 남쪽 너른터에 자리하고 있다. 희양산은 백두대간의 단전에 해당하는 높이 998m의 거대한 바위산으로 서출동류하는 30리 계곡을 끼고 있어 천하 길지로 이름나 있다. 멀리서 보면 우뚝한 모습이 한눈에 영봉임을 알수 있는데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로고 있어 예로 부터 봉암용곡이라 불렀다.

  봉암사는 신라 헌강왕 때인 879년 지증 도헌국사가 창건하였다. 당시 심층거사가 대사의 명성을 듣고 희양산 일대를 희사하여 수행도량으로 만들 것을 간청하였다. 대사는 처음에 거절하다가 이곳을 둘러보고 "산이 병풍처럼 사방에 둘러쳐져 있어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흩는 것 같고 강물이 멀리 둘러 쌓였는 즉 뿔 없는 용의 허리가 돌을 덮은 것과 같다."며 경탄하고 "이땅을 얻게 된 것이 어찌 하늘이 준 것이 아니겠는가. 스님들의 거처가 되지못하면 도적의 소굴이 될것이다" 라 하며 대중을 이끌고 절을 지었다.

  지증대사가 봉암사를 개산하여 선풍을 크게 떨치니 이것이 신라 후기에 새로운 사상흐름을 창출한 구산선문 중 하나인 희양산문이다. 그 후 후삼국의 대립 갈등으로 절이 전화를 입어 폐허화되고 극락전만 남았을 때인 고려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중창하여 많은 고승을 배출하였다. 조선조 세종대왕때 험허당 기화 스님이 절을 중수한 뒤 머물면서 원각경소를 저술하였고. 1674년 다시 소실된 절을 신화 스님이 중건하였으며 1703년 다시 중건하였으나 이후 크게 쇠퇴하였다.

  구한말 1907년 의병전쟁 때에 다시 전화를 입어 극락전과 백련암만 남고 전소되었다. 1915년 윤세욱스님이 요사와 영각, 창고 3동을 신축하였고, 1927년에는 지증대사의 비각과 익랑을 세웠다. 근래에 들어 당시 조실을 지낸 전 조계종 종정 서암스님과 주지 동춘스님 후임 원행, 법연스님등의 원력으로 절을 크게 중창하여 수행도량으로 면모를 일신했다. 지증대사 적조탑, 지증대사 적조탑비, 정진대사 원오탑, 정진대사 원오탑비, 봉암사 삼층석탑 등의 성보문화재가 옛 선사의 향기를 은은하게 전하고 있다.

 

< 선원의 역사 >

  봉암사 선원의 역사는 저 멀리 신라 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지증대사 도헌스님이 구산선문중 하나인 희양산문을 이곳에서 개창하였던 것이다.

  이후 태조 18년 정진대사가 사찰의 소임을 볼때는 이 봉암사에 3천여 대중이 머물러 동방장과 서방장으로 나누어 정진을 할 정도였다. 이러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 '태고 보우국사'를 비롯한 많은 수행자들이 이곳에서 정진하여 "동방의 출가 승도는 절을 참배하고 도를 물을 때 반드시 이곳 봉암사를 찾았다" 고 한다. 이렇게 유서 깊은 선사 봉암사에 근대 선원이 다시금 부흥된 것은 1947년이다.

  해방 직후 사회적 혼란이 극심한 상황에서 봉암사는 한국불교의 현대사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한 결사도량으로 거듭난다. 이름하여 '봉암사 결사' 가 그것이다. 봉암사 결사는 1947년 성철스님을 필두로 청담. 자운. 우봉스님등 4인이 "전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임시적인 이익 관계를 떠나서 오직 부처님 법대로 한번 살아보자. 무엇이든지 잘못된 것은 고치고 해서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는 원을 세우고 결사도량을 찾으니 그 곳이 봉암사였다

  그 후 청담. 행곡. 월산. 종수. 보경. 법전. 성수. 혜암. 도우 등 20인이 결사에 참여하였다. 당시 결사대중은 공주 규약을 제정하여 추상같은 법도를 세워 오늘날 수행의 근간을 세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사정진도 1950년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단되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된다. 그후 1970년 초부터 다시 수좌들이 봉암사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불교신문 기록으로 보건대 봉암사 희양선원은 1972년 향곡스님을 조실로 모시고 15명의 납자가 정진했다. 이후 1974년에 서옹스님이 조실을 맡은 것을 제외하고는 78년까지 향곡스님이 줄곧 조실역활을 하면서 납자를 제접했다.1980년경 서암스님이 정식으로 태고선원 조실로 모셔지면서 선원은 청룡의 승천과 봉황의 날개짓처럼 웅대한 자태를 희양산 자락에 펼치게 되었다.

  1982년 6월 종단은 봉암사를 조계종 특별 수도원으로 지정하여 성역화 의지를 표명하였다. 1982년 7월 문경군에서는 사찰 경내지를 확정 고시하였다. 그래서 희양산 봉암사 지역은 특별 수도원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막아 동방제일 수행 도량의 분위기를 조성하였던 것이다. 이어 1984년 6월 제 13차 비상종단 상임위원회에서는 선풍 진작과 종단 발전을 위해 봉암사를 종립선원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1994년 범룡스님이 조실로 추대되어 2년여간 납자를 제접하여오다, 2000년 하안거 해제에 진제스님을 조실로 모셨으며, 그후 2001년 하안거 결제에 서암스님을 다시 조실로 추대하여 대중 스님들을 지도 하시다가 2003년 3월 29일 날 열반에 드셨습니다.

(이상 봉암사 홈페이지 자료 인용)

 

 

 

봉암사 일주문

 

침류교...

 

남훈루

 

남훈루를 통해 본 대웅보전

 

남훈루

 

계단 위 왼쪽이 보림당

 

보림당, 극락전...

 

보림당 입구에서 내려다본 남훈루

 

보물 제1574호 극락전.

극락전 오른쪽이 산신각

 

극락전쪽에서 내려다본 보림당

 

대웅보전

 

 

 

대웅보전 앞에서...

 

대웅보전

 

 

누구나 같은 연등... 차별 없는 세상...

대웅보전에서 남훈루쪽으로 내려다본 모습.

 

대웅보전 내부의 모습

 

 

 

 

 

 

조사당과 비각(지증대사탑과 탑비)

 

좌로부터 보이는대로 삼층석탑, 지붕만 살짝 보이는 범종루, 금색전, 산문 입구문, 조사당...

 

비각(지증대사탑비와 탑)

 

국보 제315호 지증대사탑비(구 지증대사적조탑비)

 

보물 제 137호 지증대사탑(구 지증대사적조탑)

 

조사당.

지증대사를 비롯하여 여러 대사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왼쪽으로 보이는 곳이 선원

 

조사당 내부

 

조사당 옆 선원으로 통하는 문, 묘유문

 

희양산문 태고선원

이곳 봉암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희양산문의 개창지이다. 

 

마애불 가는 길에 본 선원

 

금색전 뒷편. '대웅전'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건립되기 전까지 대웅전이었던 곳이다.

 

금색전

 

금색전 내부의 비로자나불상

 

봉암사삼층석탑. 보물 제169호이다.

상륜부가 온전히 남아 있다.

 

 

 

금색전에서 내려다본 모습

 

범종각

 

 

범종각과 금색전

 

남훈루와 요사

 

금색전과 삼층석탑, 그리고 희양산...

 

 

 

 

 

금색전, 요사, 대웅보전...

 

대웅보전

 

대웅보전, 보림당

 

해회당

 

선열당, 해회당

 

해회당

 

해회당과 선열당

낮 한 때 소나기가 내린 공양간 앞...

대부분의 사람들이 점심 공양을 마친 시각이라 그나마 다행.

조금 늦은 점심 공양에 나선 사람들은 비를 쫄딱 맞아야 했다.

 

백운대의 봉암사마애보살좌상

 

 

 

백운대...

 

해우소 앞 나무 세 그루...

 

휴휴암 근처 상봉대사비명

 

 

 

 

휴휴암

 

 

 

 

정진대사탑비각

 

보물 제 172호 정진대사탑비(구 정진대사원오탑비)

 

 

 

신축 중인 건물들...

 

통제 중인 이곳이 정진대사탑 가는 길 입구인 듯...

 

 

 

정진대사탑을 찾으러 산길로 올라갔으나 거기까지 가지 못 하고 이 부도만 하나 보고 내려와야 했다.

사람이 잘 다니지도 않는 이 산중에서 멧돼지라도 만나면 어떡할 거냐는 둥

여긴 통제구역이라는데 왜 가느냐는 둥 얼마나 잔소리를 늘어놓는지...

아마도 혼자 갔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갔을 것이라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정진대사탑(=구 정진대사원오탑). 문화재청 사진 자료이다

 

입장길과 퇴장길을 일방통행식으로 표시해 놓았다.

봉암사 방문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사진에는 보이지 않지만 왼쪽으로 올라가면 일주문...

 

절에서 내려가며 본 희양산 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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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입구 아래 계곡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길 313(원북리) 봉암사

 

2012.05.28(월) 부처님오신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