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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대구 근대문화골목 투어 : 서상돈고택

대구 근대문화골목 투어 : 서상돈고택

 

 

서상돈(1851~1913)은 조선 말기의 기업인, 공무원이다.

대구에서 지물 행상과 포목상으로 성공한 인물로, 국채보상운동의 중심 인물이다.

국채보상운동은 애국심의 발로였으며 국권회복에의 강렬한 의지였다.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융희 1) 2월에 대구에서 시작된 국권회복운동으로 전국민이 합심하여 일본에 대한 국채(1,300만 원)를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이다.

1907년 2월 서상돈·김광제·박해령 등 16명이 대구에서 조직한 국채보상기성회는 곧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로 확대되었다. 특히 대한매일신보·황성신문·제국신문·만세보 등 언론기관이 자금모집에 적극 참여했으며, 이를 위하여 단연운동이 전개되었고, 부녀자들은 비녀와 가락지를 팔아서 이에 호응했다. 그 외에도 여성단체인 진명부인회·대한부인회 등에서는 보상금모집소를 설치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벌였다. 일본까지 파급되어 800여 명의 유학생들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이 실시된 이후 4월말까지 보상금을 낸 사람은 4만여 명이고, 5월말까지 230만 원 이상이 거두어졌다. 이에 대해 일제는 송병준 등 친일파가 지휘하던 매국단체 일진회를 이용하여 방해하고, 통감부에서 국채보상회의 간사인 양기탁을 보상금횡령이라는 누명을 씌워 구속하는 등 적극적으로 탄압했다. 결국 양기탁은 무죄로 석방되었지만 국채보상운동은 더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좌절되고 말았다.

우리 민족의 강렬하고 자발적인 애국정신이 발휘된 국권회복운동...

 

 

 

 

 

 

 

 

2012.01.19(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