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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중국

중국 낙양 용문석굴1(입구. 2010.01.07.목)

 

중국 洛陽 龍門石窟1(2011.01.07.목)

 

소림사 근처 영태사 사찰음식점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용문으로 향하였다.

음식은 소위 웰빙식이었는데, 맛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상차림을 돕는 이들은 차림새로 보아 수도 중인 비구니들인 듯...

 

용문석굴은 둔황의 막고굴, 대동의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 3대 불교석굴 중의 하나로서

1961년도에 중국 정부가 처음으로 지정한 전국적인 중요문화재 중의 하나이고

1982년도에 전국적인 중요관광명품으로 지정되고

2000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됐다.

낙양시 남쪽 13㎞ 정도 떨어진 伊河 양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으며

두 산이 맞서고 중간에 이수강이 흐르니 문처럼 생겼기 때문에 옛날 “이궐”이라 불렸고

수나라 때부터 이곳이 용문으로 불리기 시작됐다.

북위 효문제가 낙양으로 수도를 옮겨와서부터(서기 493년) 공사가 시작됐고

400여년이 걸려서 완공됐다고 하며, 지금은 석굴 2300여 개, 불상 10만여 개,

비문 30만자나 남아 있다.

그 중에 북조의 위나라와 당나라 시기에 조각된 불상은 당시 예술의 최고 수준을 이룩했으며

독특한 皇家품위와 중원 특징으로 일찍이나 이후에 공사된 석굴과 다르다.

용문석굴에는 비석이나 비문이 많음으로 세계에서 으뜸이고

“고대비림”이란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렸다. (longmen닷컴 참조)

 

용문교(입장구역)  

 

어딜 가나 거창한 문이 기다리는~~~

 

용문석굴 소개문

낙양 남쪽 13km에 위치한 용문석굴은 동산(향산), 서산(용문산) 두 산에 걸쳐 조성되었고

이수가 천연 궐문으로 흐르니 '이궐'이라 칭했으며

수 양제가 낙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이곳을 용문이라 칭했다고 한다.

용문석굴은 이수 양안 바람벽에 조성되었는데, 남북 1km에 걸쳐 있다.

돈황 막고굴, 대동 운강석굴과 함께 중국 고대3대 불교석굴예술보고로 칭해진다.

1961년, 중국 국무원 공포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2000년 11월, '세계유산명록'.

용문석굴 조성은 북위 시대에 평성(현 대동)에서 낙양으로 수도를 옮겨온 후(493년)부터

동위, 서위, 북제, 수, 당 등 여러 시기 400여 년에 걸쳐 이어졌다.

현존 석굴의 수는 2300여 개, 불탑 약 80좌, 비각 2800여괴, 불상 약 11만 존, 

동산의 주요 불상은 당 무주 시기에 조성되었다.

용문석굴 중 북위 시기의 불상은 전체의 30%에 달하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고양동, 빈양중동, 연화동, 위자동, 황보공굴 등이다.

그 중 고양동이 최고로 오래 되었고, 기록 내용도 풍부하여 '龍門二十品' 중 19개품을 차지한다.

당대 불상은 전체의 60%를 차지하는데,

대표굴로는 봉선사, 잠계사, 만불동, 극만동, 대만오불동, 고평군왕동, 간경사 등.

그 중 당 시대 봉선사 대노사나불과 주위 군상은 당을 대표하는 조각예술작품으로

인류미술 사상 걸작이다.

용문석굴에는 불상에 대한 많은 기록과 관이 있어서 역사 연구에도 도움이 된다.

또 시기가 다르고 서체도 다르다. 그 중에서 '용문이십품'을 뽑았다.

당나라 서법가 저수량(褚遂良)의 이궐불감지비(伊闕佛龕之碑)는 대표적인 예술작품이다.

 

관람지도

이하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 용문산에 서산석굴이, 왼쪽 향산에 동산석굴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 일행은 북문으로 입장하여 관람을 시작하였다.

 

용문을 통과하여 본 용문교의 모습 

 

 

용문석굴 입구 문(북문)

 

2000년 11월 30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고 한다.

 

용문박물관임시전청

 

 

 

전시된 사진들(귀빈들이 다녀갔다는~)

첫 사진 맨 밑줄 왼쪽에서 두번째에 강택민의 얼굴이 보인다.

 

 

 

 

 

이하 건너편 동산의 향산사가 보이는 풍경

 

 

이렇게 사진 몇 장 찍고 일행을 따라잡으며 부지런히 발길을 옮겼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용문석굴 투어에 들어간다.

첫 관람 석굴인 잠계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