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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주에서 본 것들 5(월성 석빙고, 황룡사지, 첨성대)

경주에서 본 것들 5

 

< 월성 석빙고 >

월성... 신라시대에 궁궐이 있었던 곳.

지형이 초승달처럼 생겼다하여 '신월성(新月城)' 또는 '월성(月城)'이라 불렸으며,

임금이 사는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하였단다.

조선 시대부터 반월성(半月城)이라 불려 오늘에 이른다.

남쪽으로는 남천이 흘러 자연적인 방어 시설이 되었고,

동쪽·북쪽·서쪽으로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넓은 도랑인 해자를 팠단다. 

성 안에는 조선시대(영조) 얼음창고인 석빙고가 남아 있다.

다른 곳의 석빙고를 몇 군데 본 적이 있지만 다 규모가 적은 편이었는데,

경주 석빙고의 큰 규모에 놀랐다.

남쪽 계단을 통해 내려가는 구조로 바닥을 비스듬히 하여 배수를 좋게 하였고,

내부 천장은 무지개 모양이며, 3곳의 환기통이 바깥 공기와 통하게 되어 있다. 

 

 

 

 

 

 

 

 

< 황룡사지  >

신라 진흥왕 14년(553) 월성의 동북쪽에 새로운 궁궐을 짓다가 황룡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사찰로 고쳐 짓게 하여 절 이름을 황룡사라 하였다고 한다.

574년에 주존불인 금동 삼존불을 만들고,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의 권유로 백제의 기술자인 아비지를 초청하여

9층 목탑을 완성시켜 4대 93년간에 걸친 공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을 받아 불타버린 후,

옛터만 남아 있던 것을 사역내 민가 100여호를 이주시키고

1976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에서 8년간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사찰의 건물은 남북으로 일탑식 절 배치를 기본으로 하고,

금당의 좌우에 거의 같은 규모의 건물(동금당, 서금당)이 나란히 세워져

이 건물들 역시 금당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음이 밝혀졌단다.

금당 앞에 자리를 차지했을 목탑의 위용은 어디로 가고 빈 터만 쓸쓸했던... 

 

 

 

 

< 첨성대 >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 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

화강석을 가공하여 기단 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을 우물정자형으로 축조하여 정상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

12단까지는 흙을 채워 안정감을 두었단다.

정남쪽의 석단에는 밑으로부터 제13단과 제15단 사이에 네모난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고,

이 출입구 아랫부분 양쪽에는 사다리를 걸쳐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다.

이 곳을 통해 꼭대기까지 올라가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