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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세계/이집트,호주+뉴질

2007.01.07 이집트 3(룩소, 룩소르)

 2007.01.07 이집트 3(룩소, 룩소르)

 

예전 다음 플래닛 시절에 파이 상태로 사진을 올렸었는데,

다음의 정책에 따라 블로그로 티스토리로 변경되어온 과정에서

사진이 제대로 뜨지 않아 캡처 사진 상태로 다시 저장했다.

 

 

 

 

이날 오후 일정 사진이 사라졌다!

오후 사진들도 따로 파이로 만들어두었었는데......

카르낙 신전과 룩소르 신전 다녀온 거~

그 규모에 입을 다물 수 없었던 카르낙신전(아몬대신전)~

대열주실 입구의 스핑크스와 대열주, 거대한 오벨리스크 등...

갔을 때 곧 불빛이 들어와서 더 신비로웠던 룩소르 신전...

워낙 거대하고 신비로워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는데,

그 사진은 어디 갔느뇨?

그간의 다음 정책에 불만을 표해 본다. ㅠ.ㅠ...

 


 



 
 
 
[제 3일 ] 2007년 1월 7일


[03:00] 기상, 짐은 벨보이가..
[05:30] 호텔을 나서다
[조식] 도시락(빵, 요플레, 찐 계란, 주스, 치즈)
[06:15] MS135편 카이로 출발, 룩소로..
[07:20] 룩소(룩소르) 도착


오전 ① 멤논의 거상
     ② 왕가의 계곡
     ③ 핫셉수트의 장제전
        람세스 2세 장례신전이 입구 좌측에 있다.


[13:00] 중식 현지부페(빵, 대추야자, 감자 으깬 것)
[체크인] 호텔 체크인 후 15:00 오후 코스로 출발


오후 ④ 카르낙 대신전
     ⑤ 룩소 신전       


[석식] 김가네식당(구룡관 분점 - 불고기, 된장찌개, 오이, 감자채, 열무김치, 배추김치, 누룽지탕)


[숙소] LE MERIDIEN LUXOR HOTEL 342호
      옆방과 연결되어 있는 방이었다.





<여행지 소개>


Colossi of Memnon



  
  원래 이곳은 제 18왕조인 아멘호텝 3세(Amenhotep III)의 신전으로 자연과 고대 여행자들에 의해 파괴되어 현재는 신전을 지키는 2개의 거상만 남아있으나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남겨준다.

 
멤논의 거상은 19.5m 높이의 거상으로 2개의 좌상 중의 하나이다. 멤논(Memnon)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오스(Eos)와 티토노스 (Tithonus)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에티오피아의 왕으로 트로이 전쟁 때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를 도우러 갔다가 그리스군 아킬레스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전설에 의하면 어느날 이른 아침 햇살이 비칠 때 이 상에서 이상한 신음소리가 났는데, 그리스인들은 이것을 멤논 왕이 그의 어머니 이오스에게 인사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남아 있는 2개의 거상 중 하나가 멤논과 닮았다고 하여 멤논의 거상으로 불려졌다고 한다. 아가멤논과는 다른 인물.

  북쪽의 입상은 아멘호텝의 어머니 무테무이아와 여왕 티이의 입상이 있었으나 지진으로 파괴되었다. 붕괴된 유적에서 바람이 부는 날이면 음악소리가 났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이집트인들은 이 소리가 신이 전하는 소리라고 믿었다. 이 소리를 듣기 위해 AD 130년 하드리안 황제를 포함해서 멀리서 많은 방문자들이 방문을 했는데, 이 상이 로마인들에 의해 AD 199년 수리되면서 멈췄다고 전해진다. 
 




The Valley of the Kings



  신왕국 시대의 제18 왕조에서 제20왕조까지의 왕들의 묘소로 만든 일종의 파라오들의 공동묘지인 셈이다.
  연대로 추정해 볼 때 BC 1600년에서 BC 1200년까지로 이 계곡의 무덤은 일반 피라미드 양식과 조금 다른 암굴을 파서 만든 분묘로 부활을 위해 미이라가 도굴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원의 안식처로 이곳을 처음으로 선택한 최초의 왕은 투트모모스1세로 자신의 묘가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곳을 선택했다.
  그러나 왕가의 골짜기에 있는 많은 묘소들은 대부분 초기에 도굴당하고 하워드 카터가 1922년에 발굴한 투탕카멘왕의 무덤만이 원상태로 남아있었다. 모든 묘소는 지금까지 64기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람세스 2세의 아들과 람세스 2세 그리고 람세스 3세, 4세, 7세, 11세, 세티 1세, 2세, 아멘호텝 2세, 핫셉수트 여왕, 투탕카멘 등의 파라오들이 묻혀 있으며 이중 일부만 일반에게 공개되어 있다.

 



Tutankhamun's Tomb



   카이로에 있는 이집트 박물관이 투탕카멘의 박물관이라고 표현될 만큼 그의 유물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집트 초기의 카이로와 그 주변에 피라미드로 만들어진 왕들의 무덤은 이미 오래전에 도굴되었기에 우리는 파라오의 무덤이 화려하다는 사실을 듣기만 하였지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런 면에 있어서 투탕카멘의 무덤발견은 세계 고고학계에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22년 하워드 카트에 의해 발견된 무덤으로 BC 1565년에 태어나 종교와 정치적 갈등 속에서 9세의 나이에 파라오로 등극하여 18세라는 어린 나이에 죽은 투탕카멘왕의 묘이다.
투탕카멘은 재위기간이나 그 영향력에 있어서 다른 파라오보다 못하지만, 그 무덤이 원형그대로 보존되어 당시의 장례문화를 한눈에 확인시켜준 것으로 유명하다.
  보다 화려하고 거대한 피라미드는 모두 도굴 당했고, 8년이라는 짧은 재위기간을 보낸 보잘 것 없는 어린 왕의 무덤이라 세인의 눈을 피해 숨겨져 있다가 영국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트의 끈질긴 추적에 의해 오늘에야 발견된 것이다.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이 그토록 다양하고 화려하다면 다른 왕들의 무덤은 어느 정도였을까?
  그의 무덤은 계곡 깊은 곳에 바위를 뚫고 만든 묘이다. 밖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함정을 지나 전실 등을 지나 석관이 놓여 있는 현실에 이른다. 왕가의 계곡에서 개장하고 있는 무덤은 투트모스 3세, 아멘호테프 2세, 투탕카멘, 하르엠헤브왕, 세티 2세, 메르엔프타흐, 람세스 3세, 람세스 6세, 람세스 9세의 묘다. 어느 무덤에서나 사진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벽화가 아름다운 곳은 혼잡하고 항상 감시인이 있으므로 몰래 찍는 것은 무리이다. 특히 투탕카멘의 무덤에서는 입구에 카메라를 맡기도록 되어 있다.
  모든 유물은 이집트 박물관으로 옮겨져 무덤 안에서는 더 이상 발굴당시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수 천년동안 잠들어 있던 투탕카멘의 무덤이 열리던 그 순간을 상상하면서 무덤 속으로 들어가 보자

 




 
핫셉수트 장제전

 


  핫셉수트 장제전은 핫셉수트 여왕이 건축한 유일한 신전으로 다이르알바리 석회암절벽 바로 아래에 3개의 단으로 건축된 장례신전이다.
  이집트 초기의 여왕 핫셉수트 장례신전는 남편 투트모스 2세가 죽은 후 아직 나이 어린 투트모스 3세의 섭정을 하였으며, 이후에 스스로 파라오가 되었다. 이 장례신전은 여왕의 시아버지 투트모스 1세의 부활과 그녀 자신의 부활을 기리며 건립된 것으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가장 거대한 제전 중 하나이다. 15-16세기에는 그리스 교도들의 교회로 이용되었고, 여왕의 탄생 이야기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여왕은 통상에 주력하였고 향료를 찾아서 분트(현재의 소말리아)와 무역했다는 것이 장례신전의 벽화에 잘 나타나 있다.

 
Deir el Bahri

 

아랍어로 '북쪽 사원'이라는 뜻의 다이르알바리는 몬투호테프 2세의 장제전과 핫셉수트 장제전이 위치한 곳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핫셉수트 장제전을 일컫기도 한다.
다이르알바리는 테베의 폐허도시 북쪽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나일강변 만을 형성하는 지역이다. 고대 이곳을 '성스러운 곳'이라는 의미의 '제세르(Djeser)'라 불렀으며, 이곳 옆에 11대 왕 몬투호테프(Montjuhoteph)왕의 장제전과 파라오로써 이집트를 다스렸던 핫셉수트 여왕이 직접 건축한 그녀의 장제전이 자리잡고 있다.  



 
람세스 II세 장례신전, Ramasseum



  지진으로 인해 좌상이 부서진 채로 남아 있다. 입구에서 똑바로 가면 제2중정이 나온다. 왼쪽이 제2탑문, 제1중정이며, 오른쪽이 열주실이다. 그 입구에 파손된 람세스 2세의 오시리스 기둥 4개가 나란히 서 있고 바로 앞에 람세스 2세 좌상의 머리가 있다.  


  낭만파의 대표적인 서정시인 셀리(1792~1822; Shelley, Percy Bysshe)는 고대 이집트의 폐허로 변한 이 유적을 그린 그림을 보고 그는 그의 시 오지만더스(Ozymandias)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업적을 보라! 그리고 절망하라!" 이것이 바로 나일강 서안 테베에 있는 람세스 II세의 람세움을 보고 묘사한 글이다.
  지금은 페허로 변해 보잘 것 없지만 람세스 대제의 광대한 업적을 찬양하고 세월의 덧없음을 나타낸 시이다.



 



GREAT KARNAK TEMPLE

 


  아몬대신전으로 잘 알려져 있는 카르낙신전은 현재 남아있는 고대 이집트의 신전 가운데 최대 규모의 신전이다. 특히 그 크기에 압도되는 것이 대열주실이다, 입구에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있는 참배의 길, 제1탑문, 제2탑문으로 이어진다. 대열주는 높이 23m, 15m 두 종류의 큰 기둥이 134개나 늘어서 있어 당시의 화려하고 거대했던 신전의 위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또한 카르낙 신전에서는 매일 빛과 소리의 쇼가 신전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쇼는 입구 부근, 제2탑문 앞, 제7탑문 앞, 그리고 성스러운 연못 등 광대한 신전 안을 빛과 소리로 안내하면서 진행된다. 소리도 매우 깊이 있는 스테레오이므로 만족도도 높다.
  핫셉수트 여왕과 투트모스3세 두 정적간의 오벨리스크가 나란히 남아있는 카르낙 신전은 고대이집트 시대 이후로 그리스정교회와 이슬람 사원 등으로 사용된 흔적이 남아있어 그 긴 역사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런 이유로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당시의 위용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여전히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신전 입구에는 양 옆으로 양의 머리를 한 스핑크스가 20개씩 나열돼 있다. 일부는 훼손되기도 했지만 거의 완벽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염소머리는 이집트신화의 오시리스신을 상징한다고 한다.
    



THE TEMPLE OF LUXOR



  고대 테베에서는 많은 제전이 있었다. 룩소에 있는 룩소 신전도 이러한 제전을 치르는 가장 중요한 사원 중의 하나였다.
  원래 이곳은 카르낙 신전의 부속 신전으로 건립되었다. 대부분은 아멘호텝 3세와 람세스 2세에 의해 세워졌고, 이 사원은 그러한 제전의식을 준비하는 적당한 공간이었다. 이러한 제전은 통치자이자 신성한 존재인 파라오와 백성들과의 친목도모에 목적이 있었다.
  제18왕조에 이르러 이러한 제전은 11일간 지속되었고, 제20 왕조의 람세스 3세에 이르러서는 27일간 치뤄졌다. 그 시기에 제전은 11,000 조각의 빵과 85개의 케이크, 385 동이의 맥주를 헌납하고 치러졌다.
  저녁이 되면 불빛으로 빛나는 신전의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