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양 북릉공원 (2024.07.07.일)
심양(선양)은 청나라가 처음으로 수도로 삼은 곳이다.
심양에는 청의 황제들 중 두 사람의 능이 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태조)의 묘는 시내 동쪽에 묻혀 동릉(청복릉 淸福陵),
제2대 홍타이지(태종 숭덕제)의 묘는 시내 북쪽에 묻혀 북릉(청소릉 淸昭陵이라 불린다.
제3대 황제인 세조 순치제는 북경으로 천도하여
베이징의 동쪽에 묻혔다(청동릉 淸東陵).
북릉의 정식 명칭은 소릉(昭陵, 자오링)이고
현재는 주변이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심양 서탑거리 코리아타운 들렀다가
점심 식사까지 한 후에 북릉공원으로 이동한다.
사진이 많아서 북릉공원과 북릉의 두 편으로 나누어 올린다.
청나라의 첫 수도였던 심양(선양)~
이곳은 심양 북릉 남쪽을 흐르는 신카이강(Xinkai River)인가 보다.
선양(Shenyang , 심양 沈阳)
중국 둥베이(東北)에서 가장 큰 도시이며,
중국 전체에서도 가장 큰 공업 중심지 가운데 하나이다.
10세기까지는 요나라의 중요한 국경마을이었다.
17세기 초 만주족이 수도로 삼고 성경으로 개명했다.
청나라의 첫 수도였다.
선양은 만주족이 중국 전역을 정복할 때 훌륭한 편성기지 구실을 했다.
수도가 베이징으로 옮겨진 후에도 지배왕조의 옛 수도로서 특권을 누렸다.
1895년 이후 만주의 철도부설권을 획득한 러시아의 요새가 되었다가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선양을 차지하였다가
일본이 항복한 후 중국의 국민당 군대가 점령했다.
국공내전 당시 공산군이 중국 본토 전체를 정복할 때 기지 구실을 했다.
1950년 이후 선양이란 이름을 되찾았으며,
줄곧 중국에서 가장 큰 만주 남부 종합중공업단지의 중심지였다.
(다음백과에서...)
12:15, 북릉공원 앞에 도착했다.
점심 식사 장소에서 15분 정도 걸렸나보다.
북릉공원 입구(남문)에서...
용 조형물과 주위를 두른 붉은색 조형물이 눈에 확 띄는데
어지러울 정도이다.
중국 사람들은 빨간색을 정말 좋아하나보다.
매표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부채를 들고 모여 있다.
옷도 같은 걸로 입은 걸 보니 아마도 부채춤을 출 모양이다.
북릉(北陵, 베이링 beiling)공원
심양 도심의 북쪽에 위치.
부지 면적은 330만 평방미터(3,300,000 m², 약 100만평).
기존에는 황실의 왕릉이었으나
1927년에 공원으로 개조.
공원 내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소릉이 있다.
청소릉은 청태종 황태극(홍타이지)와 효단문황후의 능묘로
심양 시내 북쪽에 있다고 해서 북릉으로 불린다.
왕릉 앞쪽으로 정원, 호수가 넓게 조성되어 있다.
북릉공원 입구(남문. 이 문이 정문).
오가는 사람들을 보니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공원이라는 느낌이 드네.
문 가운데 위에 소릉(昭陵)이라고 쓰여 있다.
만주어도 함께 쓰여 있다.
공원 출입구 양쪽 앞으로 세워져 있는 이 석상들~
설명을 들었지만 기록해두지 않아서 잊어버렸다.
남녀가 다른 석상을 만지라고 했던 것 같은데......
방문 당시에 꼬리뼈쪽인가도 만지고 했는데,
감쪽같이 잊어버렸다.
전에는 기억을 잘 했는데......
나이는 못 속이나보다.
입구 바깥에도 북릉공원 안내도가 있고
안쪽에도 안내도가 있다.
엄청나게 큰 공원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1.5km 정도 걸어야 북릉이 있단다.
걸어야 할 거리가 좀 있어서인지 전동카도 다닌다.
우리는 두 다리를 이용해서 가기로 했다.
넓은 길~
공원의 규모를 느낄 수 있는 모습이다.
북릉공원 입구의 모습(남문, 정문).
돌아나갈 때 찍은 한 컷...
꽃도 많이 심어 놓았고 포토존도 많고
아이들이 탈 것도 많이 보인다.
가족용 자전거도 도로를 누빈다.
꽤 자유로운 모습이다.
연못에는 연꽃과 여인상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고
정자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한때를 즐기고 있다.
소나무와 각종 꽃들이 피어난 공원의 모습.
북릉공원 안내를 그림으로도 잘 나타내었네.
심양 시민들의 휴식처로 손색이 없는 듯 보이는 북릉공원이다.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찾은 모습도 보인다.
저만치 동상이 하나 보인다.
홍타이지 광장에 서 있는 홍타이지 동상이다.
북릉의 주인을 만났으니
진짜 북릉이 시작되나보다.
홍타이지 동상
홍타이지 광장에 홍타이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애신각라 (愛新覺羅) 황태극(皇太極)'이라 쓰여 있다.
생몰연도 : 1592년~1643년.
홍타이지는 후금의 제2대 칸이자 청나라의 황제.
후금을 세운누르하치의 8번째 아들.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조선 인조에게 '삼전도의 굴욕'을 주게 한 인물이다.
1636년에 국호를 새롭게 청으로 정하고 황제에 즉위한 홍타이지는
조선에 조공을 요구하였고 명나라 출병도 요구하였다.
인조의 거절에 홍타이지는 직접 군사를 이끌고 조선을 침공했으며
조선은 채 두 달을 버티지 못 하고 항복하였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현 석촌호수 부근)에서 홍타이지를 향해
삼궤구고두례(三跪九叩頭禮) 또는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라고 하는
세 번 절 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항복 의식을 하게 된다.
이후 인조의 항복을 받은 자리에 자신들의 승리를 기록한 비석을 세우도록 요구하여
조선에서는 어쩔 수 없이 삼전도(三田渡)에 비를 세웠다.
삼전도비~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 라 쓰인 비가 석촌호수 옆에 세워져 있다.
예전에는 서울 송파구 삼전동 주택가 놀이터 옆에 있었는데,
지금은 석촌호숫가에 세워져 있다.
소현 세자와 봉림대군을 이곳 심양에 볼모로 붙들어가기도 했다.
치욕스럽고 억울한 역사를 생각하면 북릉을 방문하기도 사진 찍기도 싫었지만
이렇게 기록으로 남기며 우리 역사를 생각한다.
앞으로의 우리 역사에는 그런 아픔이 없어야 한다고......
조선에 치욕스러움을 겪게 하였던 청태종 홍타이지~
몇몇 사람들이 이런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옆에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나는 가까이 가기는 싫어서 멀찍이 떨어져서 찍었다.
음악소리가 나와 다가가보니 광장 옆 호숫가 조망대 건물 안에서
댄스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도 볼 수 있었다.
호수를 바라보며 쉬는 사람들도 보이고...
아무튼 자유로움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유람선 부두에 매표소가 있다.
호수에는 다양한 배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여유로움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중국도 자유경제 체제를 도입하면서 많이 자유로워진 것 같다.
청 소릉으로 가는 방향이다.
남문을 통과하여 홍타이지 광장을 지나 주욱 직진하여 가는 방향.
입구에서부터 이런 길을 1.5km 정도 걸어야 북릉...
하마비며 망주며 돌사자 등이 양쪽에 도열해 있다.
조금 더 걸으니 양쪽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역사를 잠시 떠나 청나라의 능묘제를 알아본다는 생각으로 보며 간다.
망주
무덤 앞에 세우는 돌기둥...
돌사자
청소릉 본릉에 가까워지고 있다.
심양 시민들이 많은 찾는 휴식처 북릉공원 일부.
호수에는 다양한 모양의 유람선도 운행되고 있다.
이제 신교를 건너 청소릉 본릉으로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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