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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북 보은] 보은 우당고택(선병국 가옥)

보은 우당고택 (2024.07.15. 월)

 


 

서원리 소나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보은 우당고택이 있다.

우당고택이라?

선병국 가옥으로 볼리던 곳이다.

전에도 돌아보았던 고가다.

인상 깊었던 장소였기도 하고 이름도 바뀌었고 해서 다시 찾아본다.

 

* 우당고택 : 충북 보은군 장안면 개안길 10-2

* 관람시간 : 09:00~18:00

* 무료 관람

 

 

 

보은 우당고택 (報恩 愚堂古宅)

국가민속문화유산.

시냇물이 모이는 넓은 삼각주의 소나무 숲속에 자리잡은 집이다. 자연경관과 집이 어울려 대단히 아름다운 환경을 이루는데, 건축 당시에 훌륭한 목수들을 가려뽑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사랑채·안채·사당채를 둘러싸고 있는 안담의 바깥으로 널찍하게 외담을 두껍고 높게 둘러쌓았는데, 1980년 대홍수 때 피해를 입어 많이 허물어졌다.

'H'자 평면의 사랑채는 남향하여 자리잡았는데 보통의 사랑채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앞·뒤 모두 툇마루를 설치하여 더욱 넓은 공간을 활용하게 하였다. 가운데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양 옆에 큰사랑방을 비롯한 골방·약방·마루 등을 시설하였다. 역시 'H'자 평면의 안채는 사랑채의 왼쪽에 자리하였는데 가운데의 대청이 중심이 된다. 대청은 앞·뒤 툇마루를 통하여 어떤 방으로도 갈 수 있다. 부엌은 아주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위에는 다락이 마련되었다. 대체로 사랑채와 비슷한 구조를 하였으나, 사랑채가 전체적으로 원기둥을 사용한 반면 안채는 앞쪽만 원기둥이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안채를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만들고 있는 'U'자형의 행랑채는 대문간·문간방·구들·광으로 만들었다. 사당채는 행랑채의 북쪽에 사랑채와 축을 나란히 해서 배치되었다. 남쪽에 부엌을 두고 있는 제수채와 사당을 연결하는 복도채는 20세기에 들어와서 나타난 시설물로 비바람이 칠 때도 의례를 거행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1919∼1921년 사이에 지은 이 집은 개화의 물결을 타고 개량식 한옥구조를 시험하던 때에 진취적인 기상으로 새로운 한옥의 완성을 시도한 것이어서 학술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국가유산청)

 

주차장에 차를 대고 우당고택을 찾아간다.

 

우당고택은 보은 선병국 가옥으로 불리던 곳이다.

오랜만에 오니 이름이 바뀌어 있네.

안내 설명에 '우당'이라는 이름이 왜 붙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 궁금했다.

선정훈님이 지은 집이라는데 우당이 그분의 호도 아니고...

나중에야 그 윗대이신 부친 선영홍의 호가 우당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가옥 이름이 바뀌었으니 그에 대한 설명이 있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었다.

 

 

 

주차장에서 사주문쪽으로 걸어왔다.

이 문을 들어서면 사당-장독대-안채로 바로 이어진다.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정문을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서 솔밭길을 따라 걸어도 되고... 

 

 

 

우당고택 바깥 담장과 체험관.

이곳을 돌아가면 정문을 만나게 된다.

 

 

 

우당고택 팔도 장독대.

각 지방마다 다른 장독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선처흠 효열각

선처흠과 부인 경주 김씨의 효열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선처흠은 아버지의 안질이 심하자 침과 약, 매를 잡아 아버지의 병을 치료했고,

부인 김씨는 남편의 병세가 위급해지자 넓적다리를 베어 먹였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주어 여러 날을 더 연명하게 하였다고 한다.

 

 

관선정(觀善亭)

선처흠의 손자인 선정훈이 건립한 서숙(書塾)으로

1950년대 초까지 전국 각지 수 백명의 젊은이들에게

개인 재산으로 음식과 잠자리를 무료로 제공하고

영남에서 홍치유(洪致裕)라는 좋은 스승을 모셔다 가르쳤다.

이곳에서 수학한 이들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 한문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는데,

후에 우리나라 금석문의 대가인 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을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였다.

 

관선정에는 '착한 사람끼리 모여 좋은 본을 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한다.

1944년 일제 탄압으로 철거될 때까지 수백 명이 수학했다고 기록돼 있단다.

보은군에서는 올 연말부터 서당 '관선정'을 재현하고

소나무 길 정비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1년 후에는 변모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시혜비, 송덕비와 우당고택 솟을삼문(정문)

 

 

 

전비서경선공영홍시혜비( 前祕書卿宣公永鴻施惠碑 )

철비이다.

남헌 선정훈 선생의 아버지이신 전비서경영홍공(前秘書卿永鴻公)이

소작농민에게 논밭을 나누어 주어 은혜를 베풀고

이 농지에 대한 세금도 몸소 부담하여 주니

농사짓는 사람들이 배고프고 가난한 것을 몰랐다고 한다.

1922년 전남 고흥군  두원, 점암, 남양, 남면 등 4개면 소작농민이

뜻을 모아 이 비를 세운 것이 비문의 내용.

 

이 비는 도로확장사업으로 인하여 옮길 상황이 되어

본손(本孫)들이 뜻을 모아 아버님 처흠 공의 효열각 옆으로 이건하였다.

(2004년 4월 7일)

 

선영홍님의 호가 우당인 모양이다.

 

 

 

왼쪽부터 차례로 전승지선공정훈송덕비(前承旨宣公政薰頌德碑), 관선정기적비(觀善亭紀蹟碑),

남헌선정훈선생송덕비(南軒宣政薰先生頌德碑).

선정훈을 기리는 비들이다.

 

 

 

우당고택 솟을삼문(정문).

예전에는 고택 현판이 없었는데,

'우당고택' 현판이 걸려 있네...

 

 

 

정말 어마어마한 대지를 지닌 고택이다.

전국에서도 손꼽는 면적이 아닐까 싶다.

 

 

 

사랑채와 바깥화장실

 

 

 

'H'자 평면의 사랑채.

안에 주인분이 계셔서 들어가지는 않았다.

옛날에는 바깥주인과 안주인의 역할이 확연히 구분이 되어서

이렇게 집을 지은 거겠지.

특히 이 집은 안채와 한참 떨어져서 서로 드나들기도 어려웠을 것 같다.

 

 

 

사랑채와 한참 떨어진 안채.

행랑채와 초가화장실이 보이고 오른쪽이 안채 들어가는 길.

어마어마한 대지를 보여주는 우당고택이다.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데

잠시 방해되지 않게 휘리리 돌아나가기로 한다.

 

 

 

안마당 규모도 엄청나다.

 

 

 

'H'자 평면의 안채.

가운데의 대청이 중심이 되고 어떤 방으로도 통한다.

어느 핸가 방문했을 때는 여기서 무슨 행사가 열렸었는데~

아마 장 만들기 체험이었던 것 같다.

지금도 여러 가지 행사를 진행하는지 모르겠네.

 

 

 

행랑채만 해도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안채를 넓게 둘러싸서 안마당 공간을 만들고 있는 'U'자형의 행랑채는

대문간·문간방·구들·광으로 이루어졌다. 

예전의 이 집 사세를 알 수 있는 모습이 아닐까?

이런 대가에서 살았을 보성 선씨 선정훈님은 교육에 힘썼고

그의 부친과 조부는 소작농민들에게 은혜를 베풀었고 효를 행했으니 

가히 모든 사람들에게 귀감이 될 만하다.

 

 

 

안채를 돌아나오니 '선씨종가' 라고 쓰여 있다.

출입자제 안내문도 붙어 있네...

예전 방문 때는 아무 거리낌없이 드나들었던 것 같은데...

당시에는 행사가 있어서 그랬나~~~

아무튼 주인이 불편하지 않게 돌아보았으니 다행이다.

그리고 이렇게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

 

 

 

안채 밖으로 행랑채와 초가화장실이 다시 보인다.

정말 넓은 터를 가진 보은 우당고택이다.

 

 

 

장독대.

선씨종가에서는 씨간장을 이어서 간장을 만들어오고 있는 걸로 안다.

전국의 장을 연구하고 있단다.

명품 전통장인 간장, 된장, 고추장을 판매한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사당.

조상을 섬기던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선조들의 혼이 느껴진다.

 

 

 

탱자 열매가 커 가던 때에 잠시 돌아본 보은 우당고택...

 

 

 

 

충북 보은군 장안면 소재지에

삼가천이 휘돌아 삼각주를 만든 곳에 자리잡은 우당고택~

1919∼1921년 사이에 지었다고 한다.

건축 당시에 훌륭한 목수들을 가려뽑아 지은 집이라고 한다.

지금 보아도 훌륭한 가옥이다.

예전 방문 시에는 선병국 가옥이라고 알고 갔었는데,

이번에 가 보니 우당고택이라고 쓰여 있다.

선정훈님이 지은 집으로

그의 부친 선영홍의 호가 우당이네.

가정집 치고는 대지가 워낙 넓어서

사랑채·안채·사당채를 둘러보는 데도 한참 걸린다.

특히 안채를 둘러싼 행랑채는 입이 떡 벌어지는 규모다. 

선씨종가에서는 전통장을 담가 판매하고 있고

별채에서는 한옥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100년이 넘은 건축 역사를 지닌 우당고택이

오래도록 잘 보존되었으면 하는 마음~

우리의 옛 가옥이나 전통이 대대로 잘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