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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경기 평택] 서해수호관 견학 - 천안함 기념관, 천안함, 참수리 357정, 서해수호관

서해수호관과 참-357정 (2023.05.19. 금)

 

6월 호국의 달을 앞두고 지난 5월에 서해수호관을 방문했다.

서해수호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다 전사한 55명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고

국민들에게 안보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2011년 해군2함대사령부 내에 개관한 전시관이다.

오래 전에 예약하지 않고 갔다가 관람하지 못 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이 꽤 많이 흐른 후에야 가 보았네.

 


 

서해수호관

대한민국 해군이 서해를 지켜낸 역사를 전시하고 있는 곳으로,

서해를 평화의 바다로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과 역사를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곳입니다.

해군 장병들의 생동감 있는 해설과

참-357호정, 천안함 등 실물을 보시면서

현장감 있는 견학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해군 2함대 안보공원에서

역사의 현장과 부두에 있는 해군 군함도

직접 보실 수 있는 기회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견학시간 매주 화요일 ~ 토요일 (입장시간 : 10시, 13시, 15시)
*입장시간 15분 전까지 도착바랍니다.
*휴관일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공휴일
견학코스 서해수호관 / 참수리 357정 → 충무동산 → 천안함 전시시설 → 천안함 기념관
문의전화 031 - 685 - 4123, 4125

* 주소: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 2함대길 122

 

<서해수호관 견학신청하는 곳>

* 서해수호관
 
* 해군홈페이지에서 견학신청하기

해군기지, 해군 제2함대사령부를 향해 가는 길~ 

해군 제2함대사령부 가까이 들어서자

양쪽으로 늘어선 메타세쿼이아가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해군2함대 정문에 도착한 후 서해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서해회관 2층의 견학안내실을 찾아간다.

견학시간이 되면 해군 병사가 견학버스를 타라고 안내한다.

그리고 해군 병사의 안내에 따라 이동하며 설명을 듣게 된다.

개인 행동은 안 된다.

 

 

 

[천안함기념관]

내부를 군함의 승조원 식당, 디젤엔진실 등의 격실처럼 만들어져

방문객들이 실제 군함에 승조한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었으며

천안함이 피격당하기 이전 승조원들이 어떠한 생활을 하였는지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이곳에서는 천안함을 인양하면서 나온 가스터빈, 발전기 등의 유물들과

천안함에서 전사하신 46분의 유품들을 전시함으로써

천안함 46용사를 다시 한 번 기리고 추모할 수 있습니다.

(출처: 서해수호관)

서해수호관 / 참수리 357정 → 충무동산 → 천안함 전시시설 → 천안함 기념관 순서로 견학한다는데,

우리는 천안함기념관에 먼저 들렀다.

같은 시간대에 어느 학교에서 단체견학을 왔었는데,

서로 부딪치지 않게 하는 모양이었다.

충무동산으로 따로 이동하지는 않았다.

 

 

기념관 초입, 천안함 폭침 시각이 멈춰진 시계와 승조원 명단

2010년 3월 26일에 천안함 사건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시, 천안함 승조원 명단,

천안함 46용사 순국 10주기에 붙이는 시가 먼저 맞이해주네.

가슴 아픈 천안함 피격 사건에 숙연해진다.

 

 

기념관 내부는 군함 격실처럼~

천안함기념관 모형실에는 기관조종실, 디젤기관실, 승조원식당, 기관부침실, 후타실 등이 안내되어 있다.

 

 

인양된 천안함 부품들 전시

잔해물 탐색 인양작전시 인양된 천안함 부품들.

위: 가스터빈  / 아래: 어뢰발사장비, 발전기

 

 

천안함 사건일지, 인명구조, 인양활동, 합동조사 상황

천안함 사건일지와 인명구조, 인양활동, 합동조사 상황 등을 알 수 있었다. 

천안함 대원들이 서로 살리려고 했다는 사연~

희생적인 전우애에 감동이 전해져오고

'772함 수병은 귀환하라'는 시가 가슴을 억누른다.

출동명령이 없었지만 자발적으로 구조작전에 참여한 한주호 준위의 순직도 간과할 수 없었다.

안타까움과 감동이 동시에 느껴졌던 시간~

 

 

추모 공간

이승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병사들~

천안함 46용사의 모습과 유품 등이 전시된 공간이다.

국가를 위해 근무하다가 생떼같은 목숨을 잃었으니

그 얼마나 가혹한가!

일제강점기로부터 나라를 되찾았건만

남북으로 갈라져 이리 편안하지를 못 하니......

 

 

추모 및 유족활동

천안함 추모활동, 천안함 사건 이후 유족들의 활동도 소개되어 있다.

전사자 추모행사, 천안함재단 출범, 천안함승조원 지원사업 등.

계단 위 유리창 밖으로 천안함이 보인다.

 

 

천안함기념관과 광장

천안함기념관 앞 광장에는 '희망의 도약'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대한민국 해군의 모습을 표현했단다.

 

 

이어서 방문한 곳은 인양 전시되고 있는 천안함~

가슴 졸이며 걸어가게 된다.

 

 

[천안함]

함번: PCC-772.

제작: 한진중공업(현 HJ중공업) 

진수: 1987년 대한조선공사 건조

취역: 1989년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 소속

1999년 제1연평해전 참전

최후: 2010년 3월 26일 21시 22분 백령도 남방 2.5㎞ 지점 서해 NLL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해군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

인명피해: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현장에서 구조되었으며 46명 전사.

2010년 3월 26일 격침된 천안함을 인양하여 이곳에 전시해두었다.

 

 

 

두 동강 난 천안함

천안함은 함수쪽과 함미쪽이 완전히 두 동강이 난 처참한 모습이었다.

방송에서만 보아오던 천안함을 직접 보니 가슴이 답답해지고 말문이 막혔다.

우리 병사들이 이렇게 처참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것에 대해

우리 국민이라면 분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천안함 사건 당시에 나의 아들도 군대에 있을 때였으니

아들을 군에 보낸 엄마로서의 분노는 더했었지.

이때 목숨을 잃은 아들, 남편, 형제를 잃은 가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나도 이리 치가 떨려 몸이 오그라지는데......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어뢰로 인한 침몰이 확실하다는

해군 병사의 설명을 듣는다.

선저부분의 둥근 버블 흔적~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가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는 부분이란다.

 

 

아래는 천안함 피격사건 합동조사결과 보고서 중 요약 부분이다.

 

(출처: 서해수호관 홈페이지 자료실)

 

 

아래는 나무위키 자료.

2010년 5월 20일 당시 민군 합동조사단 발표내용이다.

 

천안함은 가스터빈실 좌현 하단부에서 음향자장복합감응어뢰의 강력한 수중폭발에 의해

선체가 절단되어 침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어뢰 폭발로 발생된 충격파로 인하여 선체의 용골이 함정 건조 당시와 비교하여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고,

외판은 급격하게 꺾이고 선체에는 파단된 부분이 있었다.


주갑판은 가스터빈실 내 장비의 정비를 위한 대형 개구부 주위를 중심으로 파단되었고,

좌현측이 위쪽으로 크게 변형되었으며,

절단된 가스터빈실 격벽은 크게 훼손되고 변형되었고,

함수, 함미의 선저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꺾여 있었다.

함정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것을 방지해주는 함안정기에 나타난 강력한 압력흔적,

선저부분의 수압 및 버블 흔적,

열흔적이 없는 전선의 절단 등은

수중폭발에 의한 강력한 충격파와 버블 효과가 침몰의 원인임을 알려주고 있다.

생존자들은 거의 동시적인 폭발음을 1~2회 들었으며,

충격으로 쓰러진 좌현 견시병의 얼굴에 물이 튀었다는 진술과,

백령도 해안 초병이 2~3초간 높이 약 100m의 백색 섬광 기둥을 관측했다는 진술내용 등이

수중폭발로 발생한 물기둥현상과 일치하였다.

또한 사체검안 결과 파편상과 화상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고,

골절과 열창 등이 관찰되는 등 충격파 및 버블 효과의 현상과 일치하였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진파와 공중음파를 분석한 결과,

지진파는 4개소에서 진도 1.5 규모로 감지되었으며,

공중음파는 11개소에서 1.1초 간격으로 2회 감지되었다.

지진파와 공중음파는 동일 폭발원이었으며,

이것은 수중폭발에 의한 충격파와 버블효과의 현상과 일치한다.

몇 차례에 걸친 시뮬레이션 결과에 의하면

수심 약 6~9m, 가스터빈실 중앙으로부터 대략 좌현 3미터의 위치에서

총 폭발량 200~300kg 규모의 폭발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되었다.

조사단이 백령도 근해 조류를 분석해 본 결과,

어뢰를 활용한 공격에 제한을 받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리고 수사가 진행되던 중,

합동조사단은 침몰해역에서 어뢰로 확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물로

어뢰의 추진동력부인 프로펠러를 포함한 추진모터와 조종장치 등을 수거하였다.

이 증거물은 북한이 해외로 수출할 목적으로 배포한

어뢰 소개자료의 설계도에 명시된 크기와 형태가 일치하였으며,

추진부 뒷부분 안쪽에 "1번"이라는 한글표기는

우리가 확보하고 있는 북한의 어뢰 표기방법과도 일치한다.

이상과 같이 침몰 원인이 북한의 어뢰 공격이라는 점은

공식 조사에 참여한 미국·영국·스웨덴·호주 4개국 전문가들이 모두 동의하였다.

이후 2013년 신영식 KAIST 해양시스템공학전공 초빙교수

별도의 수중폭발 실험으로 어뢰의 폭발로 인한 버블 진동이

천안함 고유진동수와 맞아 공진을 일으키면서 선체를 절단, 침몰시킬 수 있음을 입증하였다.

 

 

 

 

몸서리치게 안타까운 천안함을 본 후 이동한 곳은 서해수호관과 참수리 357정 앞.

이곳에서는 함대본부쪽이 보이는 곳으로 사진을 찍을 수 없다.

 

 

[참수리 357정]

건조: 한진중공업

함종 선체번호: PKM 357

함명: 참수리 357

인수: 1992-08-28

퇴역: 2002-06-29, 제2연평해전 중 격침, 2함대에 보존 중

서해수호관과 참수리 357정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서해 연평도 부근 NLL 북서쪽 방향 일대에서

북한 해군 경비정 등산곶 684호정의 86mm 전차포 선제 포격 도발로 일어난 해전이며

우리 해군 피해는 6명 전사, 18명 부상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제2연평해전 참수리 357정은 대파당하여 전투 후 침수 과다로 최종 격침당했다.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정의 포탄 88%가 고속정 좌현에 집중됐다.

주갑판 상부에 122발, 주갑판 하부에 136발.

주갑판 하부 중 선체에 치명적인 흘수선(바닷물과 선체가 접하는 부분)에 모두 42발의 피격 흔적,

특히 85㎜ 전차포에 의한 피격 5발 중 2발이 흘수선 부근에 명중돼 축구공만한 구멍이 났다.

 

빨간색 동그라미로 칠해진 부분은 반대편에서부터 포탄이 뚫고 나온 흔적이란다.

반대편에는 포탄이  들어간 부분이라 더 넓은 범위의 자국이 나 있는 모습.

이런 참혹한 모습을 보고서는 누구든 함부로 막말하지 못 할 것이다.

당시에는 얼마나 긴박했을까?

내 아들이 저 배에 있었다면?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참수리 357정

북한 해군 등산곶 684호정의 포탄 88%가 고속정 좌현에 집중되어

우현쪽에는 포탄 흔적이 보이지 않네...

 

 

[서해수호관]

파도의 형상을 본 따 지어진 서해수호관은

거친 파도에도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의 강한 의지를 표현합니다.
서해수호관에서는 제 1 연평해전부터 연평도 포격전에 이르기까지

한반도의 안보현실을 정확히 보여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서해수호관은 제 2 연평해전에서 교전한 참수리-357호정과 천안함 함체 등

모형이 아닌 실물을 전시함으로써

국민들에게 보다 더 와닿게 되는 안보교육의 중심지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서해수호관)

서해수호관으로 들어가고

영상실에서 서해수호 관련 영상자료를 본 후 1층과 2층 전시실을 돌아보게 된다.

 

 

서해수호관 1F - NLL과 해전실

우리 해군이 밤낮없이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는 NLL의 역사와 설정배경에 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곳은 NLL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과 벌였던 주요 해전들과 이 과정에서 전사하신 분들의 숭고한 희생을

제 1, 2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서 나온 각종 유물 및 사진자료를 통해 보고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NLL의 역사, NLL의 중요성,

제1연평해전, 제2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사건, 연평도 포격전 상황 등을 알려주는 자료들~

 

 

제1연평해전(1999.06.15.)

 

 

제2연평해전(2002.06.29.)

2002년 여름, 한일 월드컵 열기에 취해 있을 때 일어났던 제2연평해전~

이때 전사자 중 박동혁 병장의 시신에서는 포탄 파편이 3kg이나 나왔다고 한다.

이 글을 읽는데 눈물이 앞을 가려 읽을 수가 없었다.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니?"

박동혁 병장 어머니의 육필수기 또한 눈물이 먼저 난다.

지금의 나도 이럴진대 군에서 아들을 잃은 부모 마음은 어떨까?

그것도 몸에서 포탄이 3kg이나 나왔다면?

피눈물로도 모자랄 그 심정, 아픔~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대청해전(2009.11.20.)

 

내 아들이라는 마음으로 숙연하게 돌아보았다.

사진 찍는 것도 미안할 지경이었다.

 

1층 견학을 한 후 2층으로 올라가면 통유리 너머로 참수리-357정이 내려다보인다.

이곳에선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함대사령부가 보이는 방향이어서다.

 

 

 

서해수호관 2F - 천안함실

2010년 3월 26일 천안함이 피격 당했을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우리 해군이 수행한 구조, 수색, 인양작전을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높일 수 있도록 디오라마 및 각종 영상자료를 통해 전시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안함실에서는 천안함을 공격할 때 쓰였던 북한의 어뢰추진 동력장치와 어뢰공격 시뮬레이션 등을 통해

천안함 피격사건이 북한에 의한 도발이라는 것을 한 눈에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연평도 포격전(2010.11.23.), 천안함 탐색 및 구조 작전(2010.03.26.~05.20.)

 

 

재발방지 활동

 

 

우리 해군의 역사

창군기: 1945~1950년 

한국전쟁기: 1950~1953년

발전기: 1960~1980년

대양해군건설기: 1990~

 

 

 

 

추모의 벽

서해수호관을 돌아나가는 곳 벽에는 서해를 수호하다 목숨을 잃은 병사들의 이름이 새겨진 명판이 붙어 있다. 

천안함 46용사, 재2연평해전 6용사, 연평도 포격전 2용사, 천안함 탐색 및 구조 작전 중 목숨을 잃은 한주호 준위가 그들이다. 

이들은 죽어서도 우리 서해를 지키는 영웅들이라고 하겠다.

 

 

서해수호관을 나와 방문기념사진 한 장 찰칵~

같이 견학했던 분들이 찍길래 우리도 한 컷 부탁했네.

다시 해군버스를 타고 서해회관 앞에 도착하며 견학 끝.

 

견학하는 내내 다시는 이런 비극적인 일이 없어야 할 텐데~

순국용사들 가족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해서는 안되는데~~

나라 위해 목숨 잃은 분들 그 가족에겐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2023.05.19.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