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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대전 충청

[충남 공주] 부모님 모시고 충청도 나들이 1 -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충남 공주] 부모님 모시고 충청도 나들이 1

 - 공주 공산성과 무령왕릉(송산리고분군)


수년 전부터 해마다 친정 어머님 생신을 맞이하여

1박2일 형제모임을 하고 있다.

아버님 생신은 한겨울이라 숙박하며 나들이하기에는 어려워

좋은 계절에 생신이 있는 엄마 때를 맞추어...

올해는 공주를 중심으로 한 충청도 나들이를 하기로 했었다,

행선지는 첫날 공주 공산성, 무령왕릉, 마곡사, 숙소(장승마을 펜션),

둘째날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부여 백제문화단지, 논산 관촉사~


공산성 금서루 주변



미리 온누리공주 회원 가입하여 사이버시민이 되면

공산성, 무령왕릉, 석장리유적 등을 무료로 돌아볼 수 있다.



첫 여행지 공산성으로...

공주의 관문인 공주 금강철교

1932년에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옮겨가면서

그 대가로 이 철교가 놓이게 됐다고 한다.

다리 건너편으로 공산성이 보인다.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사적 제12호

공산성은 백제의 수도가 공주였을 때 공주를 지키던 백제의 산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산성으로,

원래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으나 조선시대에 석성으로 고쳤다.

쌓은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며,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공산성으로,

선 인조 이후에는 쌍수산성으로 불렀다.

동서로 약800m, 남북으로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4방에 문터가 확인되는데,

남문인 진남루와 북문인 공북루가 남아있고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었는데,

1993년에 동문터에는 영동루, 서문터에는 금서루를 복원하였다.

암문·치성·고대·장대·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남아 있으며,

성 안에는 쌍수정·영은사·연지·임류각지, 그리고 만하루지 등이 있다.

또한 연꽃무늬 와당을 비롯하여 백제 기와·토기 등의 유물들과

고려·조선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다.

백제 멸망 직후에 의자왕이 잠시 머물기도 하였으며,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지이기도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김헌창의 난(822)이 일어나기도 하였으며,

조선시대 이괄의 난(1623)으로 인조가 피난했던 곳이기도 하다.

백제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의 백제 도성이었으며,

이후 조선시대까지 지방 행정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큰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문화재청)


세계유산에 빛나는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산성


금서루와 비석군

역대 관찰사 등의 선정비 등을 모아 놓았다.



이번에는 어른들 모시고 간 터라

한 바퀴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금강이 바로 보이는 구간만 돌아보았다.

금서루~공산정~공북루~만하루~영은사를 돌아오는 코스로...





금서루는 서쪽에 위치한 문루로 1993년에 복원


서문인 금서루 주변


문화유산해설사님을 따라 오르는 사람들도 볼 수 있다.


공산정


금서루와 주변 풍경




금강과 공주시내

백제큰다리와 정지산유적도 보인다.


정지산쪽을 바라보며 옛날에 있었다는

안무정도 그려보며...


공산성에서 바라본 금강교와 백제큰다리


 

백제큰다리와 금강교


 

공산성 공산정과 금강


건너편 공주 생명과학고 뒷산이 취리산(취미산)이라고 하며

백제 멸망 후 웅진도독(부여융), 신라(문무왕), 당나라(사신 유인원)가

친하게 지내자는 회맹을 맺었지만 깨졌다는 이야기...


공산정에서 바라본 백제큰다리와 금강교

백제큰다리 뒤로 보이는 얕은 산이 취리산인 모양이다.


아래로 공산성 공북루가 보이는 풍경

멀리 공주대교와 신공주대교도 보인다.


공주 구시가쪽


배다리와 공주철교 이야기


  

공산정과 금강


공북루 가는 길~


비단강(금강)을 사랑한 선비들 이야기...


공산성의 북문인 공북루


공북루에서 바라본 공산성, 공산정과 금강


공북루에서 바라본 금강


한말에 공산성 군영터에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시내로 넘어가는 길을 만든 게 서문고개라는 이야기...


공북루에서 군영터(성안마을터)를 바라보며...


공북루와 공산정


공북루 밖 금강변에서 가족 단체사진


공산성 성곽


잠종 냉장고, 만하루와 연지 가는 길~


잠종 냉장고

조선시대의 얼음창고였던 석빙고.

일제강점기에는 한약재와 얼음창고로 쓰였다고 하며,

누에의 알을 적당한 시기까지 보관해주는

잠종 저온 창고로도 쓰였다고 한다.


 

잠종 냉장고와 잠종냉장고 위에서 바라본 공북루와 공산정


잠종 냉장고를 지나 만하루와 연지에 다다르게 된다.


연지 앞 영은사


연지 주변


만하루



만하루와 연지


만하루와 연지


영은사 앞 은행나무


영은사


이번에는 대가족이 함께한 터라 다 둘러보지는 못하고

다시 공북루쪽으로 나오게 된다.


칠갑옷의 비밀~~~


이곳은 백제왕궁 부속시설지였단다.


비운의 의자왕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부여성)이 함락되자

의자왕은 이곳 공산성으로 피신한다.

그러나 믿었던 신하 예식진의 배신, 항복으로 포로가 되었고

당나라에 끌려간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는 비운이 왕이 되었다.


서문으로 나가는 중~


고려시대에 망이와 망소이 형제가

귀족들의 횡포와 차별에 불만을 품고 난을 일으켰는데,

이곳 공산성을 본부로 삼았었다.


공산성 일부를 돌아본 후 이학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됐다.

불고기 전골과 공주국밥으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 (公州 宋山里 古墳群)

사적  제13호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웅진 백제시대 왕들의 무덤이 모여있는 곳이다.

무령왕릉을 포함한 이 일대의 고분들은 모두 7기가 전해지는데,

송산을 주산으로 뻗은 구릉 중턱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는 무령왕릉과 5 ·6호분이 있고

동북쪽에는 1∼4호분이 있다.

1∼6호분은 일제시대에 조사되어 고분의 구조와 형식이 밝혀졌고,

무령왕릉은 1971년 5 ·6호분의 보수공사 때 발견되었다.

고분들은 모두가 표고 약120m 정도 되는 송산(宋山)을

북쪽의 주산(主山)으로 한 중턱 남쪽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1∼5호분은 모두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무덤 입구에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널방(현실)에 이르는 널길이

널방 동쪽벽에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1∼4호분은 바닥에 냇자갈을 깔아 널받침(관대)을 만들었는데,

5호분은 벽돌을 이용하였다.

이처럼 같은 양식의 무덤이면서 구조와 규모에 있어서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시기 차이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5호분은 원형으로 남아 있으나,

1∼4호분은 조사되기 전에 이미 도굴되었다.

이외에 벽돌무덤(전축분)으로 송산리벽화고분이라고도 불리는 6호분과 무령왕릉이 있다.

6호분은 활모양 천장으로 된 이중 널길과 긴 네모형의 널방으로 되어 있는데

오수전(五銖錢)이 새겨진 벽돌로 정연하게 쌓았다.

널방 벽에는 7개의 등자리와 사신도 · 일월도 등의 벽화가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도 6호분과 같이 연꽃무늬 벽돌로 가로쌓기와 세로쌓기를 반복하여 벽을 쌓았다.

벽에는 5개의 등자리가 있고,

무덤주인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지석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6호분과 무령왕릉은 현재 남아있는 백제의 벽돌무덤으로,

모두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으며 긴 배수로도 갖추고 있다.

이러한 형식의 벽돌무덤은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벽화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령왕릉의 경우 확실한 연대를 알 수 있어

백제사회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절대자료로 평가된다.

(출처 : 문화재청)


송산리고분군 입구


먼저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 들르게 된다.


 

송산리고분군 모형전시관에

실제 고분의 모습을 재현해 놓아서

모형이지만 고분에 들어가보는 경험도 할 수 있다.

 

무령왕릉

무령왕의 묘지석(오른쪽이 앞면 묘지석, 왼쪽은 뒷면 간지석)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지석이다.

무령왕비의 묘지석(오른쪽이 묘지석 앞면, 왼쪽은 매지석)

무령왕과 왕비의 지석 진품은 국립공주박물관에 전시 중이고

국보 제163호.


 

 

왕과 왕비 모두 옻칠된 목관에 각기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무령왕릉에서는 왕의 관장식을 비롯하여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국보로 지정된 것만도 12가지에 이른다.


무령왕릉 모형


모형전시관을 나와 잠시 송산리고분군을 돌아보게 된다.


송산리5호분을 지나~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이 무령왕릉


 

무령왕릉 앞에 다다른다.


무령왕릉

언뜻 보기에는 무덤 입구로 보이는 않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도굴되지 않았던 거겠지...

여기에서 나온 수많은 유물들은

 백제시대의 사회 ·문화상을 연구하는 자료가 되고 있다.


지금은 영구 폐쇄 결정이 나서 막혀 있지만

오래전에 이곳에 직접 들어가 본 적이 있다.

연꽃무늬의 벽돌과 아치형 입구가 그렇게나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난다.


무령왕릉이 있는 산리고분군


(2017.11.1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