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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남 장성] 조선의 청백리 아곡 박수량과 박수량 백비


[전남 장성] 조선의 청백리 아곡 박수량과 박수량 백비



<2015.5.1.> 장성 여행

 장성 필암서원과 유물전시관 - 홍길동테마파크(홍길동축제) - 아곡 박수량 백비

<2015.5.2.> 광주여행

금남로 - 광주공원(광주향교) - 사직공원 - 5.18민주묘지 - 망월동묘역 - 중외공원 - 송정떡갈비

<2015.5.3.> 목포여행

목포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회사) - 경동성당 - 국도1.2호선기점 기념비

- 구 목포 일본영사관 - 유달산(노적봉) - 이훈동정원(성옥기념관) - 유달산 조각공원

- 오거리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 삼학도 - 갓바위 - 평화광장(도자기축제)

<2015.5.4.> 진도여행

세방낙조전망대 - 급치산전망대 - 천종사(동석산이 보이는 풍경) -  유채꽃이 보이는 풍경

- 팽목마을, 진도항 - 남도석성(진도 남도진성) - 배중손사당 -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와 오층석탑

- 허정무 감독 고향마을 - 뽕할머니 영당(모세의 기적) - 운림산방 - 진도개 테마파크 - 진도타워

<2015.5.5> 진도, 해남여행

명량해협(진도쪽에서...) - 진도대교 - 벽파진 이충무공전첩비

- 해남 명량(울돌목) 우수영관광지 - 충무사 - 우수영 강강술래길(법정스님 생가터)

- 우향리공룡화석자연사유적지 - 송호리 해송림 - 땅끝전망대 - 미황사 - 대흥사


전라남도 기념물 제198호 장성박수량백비 (長城朴守良白碑)

(2015.5.1)


홍길동 테마파크에서 머물다 박수량 백비를 보러 이동.

부랴부랴 움직여서 박수량 백비 주차장에 닿았다.

주차장에서 바로 보이는 이 건물~ 밀양박씨 재실이라고 한다.


행주 기씨 집안의  비들.

송암기선생유허비라고 쓰인 비석(왼쪽)과 오른쪽의 덕양기공묘비.

송암 기정익은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란다.

덕양 기준은 조광조의 문하생으로 기묘사화가 일어나자 조광조 등과 함께 하옥,

유배 생활을 거치며 결국 사사. 

저서로 〈복재집>,〈덕양유고>,·<덕양일기> 등...

기준의 묘는 고양에 있는데, 이 비는 무슨 연유인지~


역시 봄날의 풍경은 아름답다.


한 칸짜리 이 조그만 건물이 박수량 백비 전시실...

백비를 찾은 기관과 단체들이 건물벽과 게시판을 메우고 있다.


박수량(朴守良, 1491~1554)


선 중기의 정치가. 청백리(淸白吏).

장성 출신으로 본관은 태인(泰仁).

24살 때 과거에 급제.

한성판윤 등을 지냈음에도 늘 청빈하게 살았다.

유언으로 사후에 묘도 크게 하지 말고 비석도 세우지 말라고 했다.

명종이 어려운 사정을 알고 백비를 하사했다.

시호는 정혜공.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 청백리의 표본이 되고 있다.


박수량 백비 가는 길 입구...



 장성박수량백비 (長城朴守良白碑)


전라남도 기념물 제198호

박수량의 묘 앞에 서있는 호패형 빗돌 비석으로

글이 써 있지 않은 백비이다.

박수량은 중종 9년(1514)에 벼슬길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쳤는데

명종 원년(1546)에는 청백리에 올랐다.

명종 9년(1554)에 세상을 떠나면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청백리로서 청빈한 삶을 살았다.

그가 죽은 후 장례를 치르지 못할 정도로 빈곤하였다고 한다.

이에 나라에서 장례를 치루게 해주고

일생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서 찬양한다는 것은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이 백비는 박수량의 일생을 통한 청백정신과 행적을

당대는 물론 후세에까지 귀감이 되는

청백정신의 상징적인 유물로서 그 의미가 깊다.


(출처 : 문화재청)


박수량 묘와 백비


박수량은 묘도 작게 쓰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했지만

한양에서 고향으로 모실 장례조차 어려웠던 사정을 안 명종이

장례를 치루게 해주고 백비를 세워 주었단다.



박수량 백비

묘 바로 앞의 호패형 빗돌 비석으로 글이 써 있지 않다.

박수량은 명종 원년(1546)에 청백리에 올랐다.

세상을 떠나면서

 “시호도 주청하지 말고 묘 앞에 비석도 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후에 장례를 치를 비용이 없어 나라에서 장례를 치루게 했으며,

명종은 서해의 좋은 돌을 골라 묘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일생의 청백한 행적을 글로서 찬양한다는 것은

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글을 쓰지 않고

상징적으로 백비를 세우도록 하였다고 전한다.


아곡 박수량 묘역


황희, 맹사성과 함께 조선 3대 청백리 중 한 분이라는 아곡 박수량~

청빈한 삶을 살았던 한 분을 그렇게 기억한다.


박수량 묘역 입구 주차장쪽

신도비가 보인다.


가장 중요한 백비를 보았으니 이제 청백당으로~~~

박수량 묘역과 백비를 본 후 다시 홍길동 테마파크로 향하였다.

홍길동테마파크에는  '청백당'이라는 한옥체험 시설이 있다.


명종 임금은 아곡의 청빈함을 알고 99칸 집을 지어

'청백당'이라는 이름과 함께 하사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아름다운 봄날에 돌아본 홍길동 축제장...


아곡의 청백리 정신을 이어 복원한 청백당 고택체험장


청백당...



홍길동 테마파크에 복원된 청백당


경포정과 연지


청백당 입구


초당과 별당


사당(경모사)


사랑채(강수재)


협문


안채


경포정


높은 관직에 올랐으면서도 청빈한 생활을 실천했던 청백리,

아곡 박수량~~~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도 많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음식점


멀리서 내려갔기에 장성 여행지 몇 군데 보니 벌써 어두워진다.

보는데 욕심이 많은 나는 박수량 생가까지 가고 싶었지만

저녁도 먹어야 하고 숙소까지 가야 하기에

여기서 더 머물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의 욕심을 조금 비우며

다음날 돌아볼 일정을 생각해서 광주로 이동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