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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남 장성]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는 장성 필암서원

[전남 장성]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는 장성 필암서원


두 해 전 2015년에 전남여행을 한 사진들이 잠자고 있다.

어쩌나 고민하다가 두서없이 사진 위주로 올려두기로 한다.

가장 먼저 방문한 필암서원부터 짬짬이~


<2015.5.1.> 장성 여행

 장성 필암서원과 유물전시관 - 홍길동테마파크(축제) - 아곡 박수량 백비

<2015.5.2.> 광주여행

금남로 - 광주공원(광주향교) - 사직공원 - 5.18민주묘지 - 망월동묘역 - 중외공원 - 송정떡갈비

<2015.5.3.> 목포여행

목포근대역사관(구 동양척식회사) - 경동성당 - 국도1.2호선기점 기념비

- 구 목포 일본영사관 - 유달산(노적봉) - 이훈동정원(성옥기념관) - 유달산 조각공원

- 오거리문화센터(구 동본원사 목포별원) - 삼학도 - 갓바위 - 평화광장(도자기축제)

<2015.5.4.> 진도여행

세방낙조전망대 - 급치산전망대 - 천종사(동석산이 보이는 풍경) -  유채꽃이 보이는 풍경

- 팽목마을, 진도항 - 남도석성(진도 남도진성) - 배중손사당 - 진도 상만리 비자나무와 오층석탑

- 허정무 감독 고향마을 - 뽕할머니 영당(모세의 기적) - 운림산방 - 진도개 테마파크 - 진도타워

<2015.5.5> 진도, 해남여행

명량해협 - 진도대교 - 벽파진 이충무공전첩비

- 해남 명량(울돌목) 우수영관광지 - 충무사 - 우수영 강강술래길(법정스님 생가터)

- 우향리공룡화석자연사유적지 - 송호리 해송림 - 땅끝전망대 - 미황사 - 대흥사


(2015.5.1)








사적 제242호 장성 필암서원 (長城 筆巖書院)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출처 : 문화재청)




확연루




확연루



송시열의 글씨




청절당



윤봉구가 쓴 청절당의 필암서원 현판


청절당 글씨는 동춘 송준길이 썼단다.



동재인 진덕재. 현판은 송준길 글씨


서재인 숭의재. 현판은 송준길 글씨


경장각과 사당


인종 하사품인 묵죽도의 판각이 보관되어 있던 경장각

인종이 직접 그려 김인후에게 하사한 대나무 그림 판각을 모셔 두기 위해 지은 전각.



경장각(敬藏閣) 글씨는 정조대왕의 친필



필암서원계생비


청절당


계생비 뒷면의 묘정비문


경장각


김인후와 양자징을 모신 사당(우동사)


사당(우동사)


사당(우동사)






장판각



사당과 장판각


동재와 사당


서재, 계생비, 경장각, 사당


묘정비와 청절당




동재인 진덕재


서재인 숭의재, 경장각, 사당


경장각, 사당, 동재인 진덕재


청절당





확연루



청절당



하서 김인후를 배향하고 있는 장성 필암서원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남은 서원 중 하나이다.


201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