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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서울 인천 경기

[서울] 서촌(세종마을) 몇 곳 탐방 - 보안여관, 이상의 집, 배화여고 생활관, 필운대(이항복 집터)

[서울] 서촌(세종마을) 몇 곳 탐방 - 보안여관, 이상의 집, 배화여고 생활관, 필운대(이항복 집터)

 

 

2016.11.13(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과 대한민국 역사박물관 전망대에서

덕수궁과 경복궁을 전망하고

서촌마을로 향하였다.

전에도 다녀온 적이 있는 서촌이지만

잠시 몇 곳 들르게 된다.

* 보안여관~이상의집~배화여고 생활관, 필운대

 

 

보안여관

(2015.03.01. 방문 사진)


경복궁 서문(영추문) 맞은 편에 보안여관이 있다.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

1936년에 창간되었던 격월간 문예동인지 '시인부락'~

김달진, 김동리, 서정주, 오장환 등이 참여.

초대 발행인은 서정주.

이들은 이 보안여관에 투숙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시인부락'을 중심으로 한 문학인들~ 생명파...

대표 문학가로 서정주, 유치환, 김동리 등...

이후 예비 작가들이 이곳에 투숙하며 글을 썼다.

세월이 흘러 더 이상 이런 형태의 여관이 설 자리를 잃게 되자

문을 닫고 철거 위기에 놓였으나 지금은 전시공간으로 변신.


 

지난 해 방문 때에는 전시가 없던 때여서

휑하니 건물만 덩그러니 어지럽게 보이더니

이번 방문 때에는 '보이지 않는 도시'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2016.11.9~22)

 

 

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렇게 큰 간판이 얼굴을 내민다.

 

 

1층 복도

다닥다닥 붙은 이런 작은 방에서 문학가들의 작품 활동이 이루어졌다니...

오래되어 허술하기 짝이 없는 이 공간~

복도를 지나칠라치면 작가들이 휑한 얼굴로 고개를 내밀 것만 같다.

 

 

1층 복도 끝 야외 공간

공동 목욕탕이 있었을 자리...

이제는 하늘을 그냥 안고 펼쳐져 있다.

그게 그대로 작품이다.

 

 

 2층 올라가는 길...

 

 

2층 공간

허술하기 짝이 없는 건물...

금세라도 무너질 것만 같이 느껴진다. 

얼마나 더 버티 수 있을지~~~

결국은 보수가 필요한 시기가 올 테지...

 

 

생명파 문학인들이 머물며 시를 썼던 곳~

예비 작가들이 배우며 시를 썼던 곳~

일제강점기를 지나 21세기에 접어들기까지

이런저런 사연들을 안고 버텨온 보안여관...

그래도 이 공간이 전시장이 되고 있으니

하나둘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이 보인다.

 

 

 

보안여관을 돌아나와 효자로를 잠시 걷는다.

경복궁의 서편 돌담과 나란히 걸으면 청와대까지 이어지는 길...

북악산이 보이는 풍경~

 

 

인왕산을 잠시 바라보며 이상의 집을 찾아간다.

 

 


이상의 집


보안여관을 나와 이상의 집으로 향하였다.

이전 제비다방 자리에 '이상의 집'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이상(1910~1937)

본명 김해경. 시인, 소설가

주요 작품으로  시 ‘거울’, ‘오감도’ , 소설 ‘날개’, ‘종생기’ 등이 있다.

 

 

이상의 집은 이상이 3살 때부터 23살까지 살았던 곳,

이상의 큰아버지댁이 있던 자리...

 이상은 어릴 때(3세)부터 큰아버지의 양자가 되어 큰댁에서 살았다.

 

 

 이상의 집 지붕 장식


 

이상의 집 안에 들어선다.

물은 서비스이고, 커피는 자유 금액.

자유롭게 모금함에 돈을 넣고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내부를 휘이 둘러본다.

헐려 없어질 위기에 처한 것을 이렇게 살려 놓았다고 한다.



내부 벽면 책꽂이에는 이상과 관련된 서적들이 꽂혀 있다.


이상의 집 안내를 읽어 보고...

 

  

문학사상 창간호(1972.10)

표지화인 '친구의 초상(1935년 작)'은 화가 구본웅이

친구인 이상을 모델로 하여 그린 것이라고 한다.

 

 

 

문학사상 12월호(2012년) 이상의 집 소개글

현재의 집은 이상 사후에 지어진 터라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는 못했지만

이상의 집터에 남아있는 이 집을 보존하게 된 이야기~ 등이 실려 있다.

 

이상의 집에서 밖을 내다보며...

 

 

이상의 방 베란다에서 선 연인들을 바라보며~

 

 

건물 안쪽 이상의 방 입구...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서면 영상자료가 흘러나온다.

네모진 저 공간과 이 좁은 계단이 이상의 방 전부이다.

영상에서 본 이상의 생애는 다음편에 싣기로 한다.

 

 

이상의 방 베란다. 조금 전 연인들이 섰던 그곳~

 

 

주변으로 집이 제법 넓었었는데,

지금 남은 곳은 앞쪽 저 공간과 이상의 방 공간이 전부

 

 

좀 전에 본 작디작은 베란다

 

 

높다랗게 보이는 벽이 이상의 심리세계를 말해주는 듯하다.

 

 

셋이 찍은 사진은  이상, 박태원, 김소운

 

 

벽기둥은 원래 있던 건물의 것이라 하여

최대한 옛 모습을 살리려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요절한 천재 작가의 흔적을 찾기는 어려웠지만

남아있는 책에서 건물 벽기둥에서 

날개를 채 펴지 못한 작가의 아픔을 느끼면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돌아나온다...


 

이상의 집을 나와 배화여고를 찾아간다.

지난 번 서촌 방문 때 들르지 못한 필운대를 찾아서...

늦가을, 날이 빨리 어두워진다.

사직공원 옆을 끼고 배화여고를 향해~~~

 

 

 

배화여고 생할관

 

 

서울 배화여자고등학교 생활관


등록문화재 제93호

­고 육영수 여사의 모교로 유명한 배화여고 내에 있는 건물로

20세기 초 서양 선교사 숙소 건축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출처 : 문화재청)


배화여고가 이곳으로 옮겨오기 전에

선교사를 위한 주택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1916년에 지어졌다고 하니 꼭 100년이 되었네...

 

 

 

 

 

 

 

배화여고 과학관

과학관은 생활관과 함께 처음 지어진 건물.

처음 지상 2층 규모였고, 1922년 2개 층을 증축해 현재 지상 4층 규모.

현재 등록문화재 신청 중이란다...

 

 

배화여고 본관

본관은 1926년 캠벨기념관으로 건립됐던 건물.

1977년에 개ㆍ보수, 그러나 비교적 원형 보존 상태가 양호.

과학관과 함께 현재 등록문화재 신청 중이라는...

 

 

배화여고는 고 육영수 여사가 다녔던 여학교이다.


배화학당

1898년 10월에 미국의 캠벨(Josephine P. Campbell) 선교사가

한성 인달방 고간동(지금의 서울 종로구 내자동)에 교사를 마련하고

캐롤라이나학당으로 설립.

캠벨은 우리나라에 내한한 최초의 여선교사.

1910년 배화학당이라 개칭.

1916년 1월 누하동(지금의 필운동)으로 교사를 이전,

1926년 12월 캠벨기념관 신축.


 

 배화여고 은행나무 아래에 조세핀 캠벨 선교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배화학당을 연 조세핀 캠벨 선교사의 흉상


어느새 날이 어두워지나 보다..

발걸음이 빨라지지만 건물 뒤 산을 끼고 있는 석벽이라

금세 어두워졌다.

글씨가 보이긴 할라나......

 



백사 이항복 집터(필운대) (白沙 李恒福 집터(弼雲臺))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9호

배화여고 뒷정원에는 높다란 암벽이 있는데

그 왼쪽면에 ‘필운대(弼雲臺)’라는 글씨를 세로로 새기고,

가운데에는 몇줄의 싯구를 적어 놓았으며,

오른쪽으로는 아홉 사람의 이름을 나열해 놓았다.

필운은 이곳에 살았었던 이항복 선생의 호이다.

선생은 조선 선조 때에 대제학을 지내었으며

평생을 청렴하게 살아 청백리에 뽑히기도 하였다.

가운데의 글은 선생의 후손인 이유원이 이 터에 들른 후

그 느낌을 글로 지어 새긴 것이고,

오른쪽에 있는 명단은 선생의 집을 지을 때 관련되었던 사람들로 추측되고 있다.

이유원의 글은 고종 10년(1889)에 새긴 것으로,

 ‘필운대’라는 글씨 또한 이항복의 글씨라기보다는 이유원의 글씨로 추측된다.

오른쪽의 명단은 이보다 앞선 순조 13년(1813) 또는 고종 10년(1873)에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록 시대는 내려가지만 명필이었던 이유원의 서체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되고 있으며,

이항복 선생의 옛 자취를 밝히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다.

 

(출처 : 문화재청)

 

 

겸재 정선이 그린 필운대.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에 일대의 명소 8곳을 선정하여 그린

장동팔경첩에 실려 있는 그림이라고 한다.

 

 

건물 뒤로 돌아가니 더 어두워져서 사진도 잘 안 나온다.

 

 


 

필운대

빛이 없으니 마구 흔들렸네...

 


필운대

필운은 이곳에 살았었던 이항복 선생의 호.

 

 

이유원이 쓴 글

이항복 선생의 후손인 이유원이 이 터에 들른 후

그 느낌을 글로 지어 새긴 것
이유원의 글은 고종 10년(1889)에 새긴 것으로,

 ‘필운대’라는 글씨도 이항복의 글씨라기보다는 이유원의 글씨로 추측된단다.


 

 

9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순조 13년(1813) 또는 고종 10년(1873)에 새긴 것으로 보고 있단다.

이항복 선생의 집을 지을 때 관련되었던 사람들로 추측된다는...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필운대를 마지막으로 탐방을 마친 후

저녁 먹을 곳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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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

전에도 가 보았지만 딱히 맘에 드는 집이 없어서

두리번거리며 지나가게 된다.

 

 

옹심이 메밀칼국수가 땡기긴 하는데,

남편이 싫다고 하니 그냥 지나치고...

 

 

뭐 이런 집은 술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 통과하고...

 

 

전에 한 번 들렀던 국수집인지는 다시 가기 싫어서 통과하고...

 

 

그러다보니 다 지나왔네...

 

 

 

 

그러다가 길 건너에서 만난 또다른 칼국수집...

 

 

60년 전통이라는 말에 솔깃하여...

 

 

계단 양 옆으로 사인도 많이 돼 있어서 가 보기로 결정...

 

 

 수육이 맛있다고 하였지만...


 

둘이 먹는 거 칼국수 하나면 족하다 싶어서...

 

 

담백한 맛이다.

중부 이북 사람들에게 알맞은 맛일 듯...

남도가 고향인 우리에겐 좀 심심한 맛이랄까~~~

 


오후 시간 짬내어 살살 돌아본 서촌마을~

경복궁 서쪽에 있다 하여 붙은 이름...

세종대왕이 나신 곳이라 하여 세종마을로 불리는 곳,

천재 화가 겸재 정선의 집터가 있는 곳,

추사 김정희의 집터가 있는 곳,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서린 곳,

천재 작가 이상이 살았던 집터가 있는 곳,

한국화가 창전 이상범, 남정 박노수의 집이 있는 곳,

생명파 작가들이 장기투숙하며 글을 썼던 보안여관이 있는 곳,

60년이 넘은 헌책방 대오서점이 있는 곳,

서민의 먹거리가 풍성한 통인시장~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역사를 간직한 서촌~

시간날 때마다 조금씩 다시 돌아보고 싶은 곳이다...

 

2016.11.13(일)

 

 

 

2016.11.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