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광주] 남한산성의 늦가을 풍경 2
- 지수당 주변
지수당 (池水堂)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호
조선 현종 13년(1672)에 이세화(1630∼1701)가 지은 건물로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다.
이세화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숙종 15년(1689) 인현왕후 폐위시
상소를 올렸다가 문초를 당하고 귀양을 가게 된다.
그 뒤 복직되어 공조·형조·병조·예조·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쳤다.
지수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건물 앞뒤로는 세 개의 연못이 있었는데
하나는 매몰되어 지금은 두 개의 연못만 남아 있다.
연못 가운데에는 ‘관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빈 터만 남아 있다.
(문화재청 자료)
지수당은 조선 시대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이란다.
지수당과 부윤 이세화 선정비
지수당 측면
ㄷ자 연못에 둘러싸인 지수당의 모습.
1958년의 지수당 모습
지수당 주변의 고목 - 생육 환경 개선 중...
해질 무렵의 지수당 연못 풍경
건립 당시에는 지수당 건물 앞뒤로 세 개의 연못이 있었다고 하나
하나는 매몰되었고 지금은 두 개의 연못만 남아 있다.
연못 가운데에 ‘관어정’이라는 정자가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빈 터만 남아 있단다.
이곳 지수당은 조선 현종 때(1672년)에 이세화가 지었고,
주위의 연못에서 고관들이 낚시를 즐겼다고 한다.
광주 고을의 중심지였던 곳이었으니 고관들이 머물렀으리라...
그리 넓은 터도 아닌 산지에 사람들이 큰 고을을 이루고 살았다는 것도
사실 상상하기 쉽지는 않다.
지금에 보는 우리들로서는 그리 와 닿지 않는 사실이지만
남한산성 지역은 꽤 오래 전부터 중요한 고을이었다.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인 이곳이 유수부까지 되었었으니
수도 방위의 역할로서의 위치가 큰 이유였을 것이다.
남한산성은 인조 때 성을 개축하였으나
병자호란 때 인조의 항복이라는 치욕을 겪게 되었으니참 안타까운 남한산성의 역사이며 우리의 역사다.
지수당 근처에 남한산성 역사관이 있다.
그곳에서 남한산성의 역사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2014.11.19(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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