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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부산 대구 경상

[경북 구미]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에서 이름 지어졌다는 금오산

[경북 구미]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에서 이름 지어졌다는 금오산

 

 

금오산은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 있는 산으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지고 수려한 경관도 대부분 구미시에 속하여

일반적으로 구미 금오산으로 통한다.

 

 

금오산이라는 이름은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아도 화상이

저녁노을 속으로 황금빛 까마귀가 나는 모습을 보고 금오산이라 이름짓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명산이라 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금오산 홈페이지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영상 자료가 있어서 내용을 옮겨 본다.


“금오산엔 천년의 달이 떠 있고

낙동강엔 파도가 만리나 출렁이는구나.

저 고기잡이배는 어디로 가는가.

옛날과 마찬가지로 갈대밭에서 쉬는구나”
“부처님을 닮은 산세를 보니 이산은 참 명산이로다.”
“허! 태양의 정기인 삼족조 까마귀를 여기서 보다니......”
“그래 이산을 이제 금오(金烏)라고 불러야겠다.”
금오산(金烏山)

 

금오산은 원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다고 하며

고려 때에는 남숭산(南嵩山)이라 했단다.

고려 문종(文宗)은 왕자를 출가시켜 이 산에서 수도하게 하였고,

훗날 대각국사(大覺國師)로 봉하여 호국불교로 포교와 국정의 자문에 임하도록 했단다.

1970년 6월1일 우리나라 최초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단다.

(금오산 홈페이지 자료)

 

금오산 케이블카 타는 곳을 향하여...

 

 

 

금오산성 사적비도 만났다.

 

 

 

구미는 자연보호운동발생지...

 

 

 

금오산 케이블카 타는 곳.

여행비에 케이블카 왕복 탑승료가 포함되어 있어서 타게 된다.

하긴 걸어서 올라가려면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될 테니......

 

 

 

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를 바라본 풍경.

오후의 햇살이 따사로워 보인다.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금오산의 모습

 

 

 

앞으로 보이는 산 위에 금오산성이 있다는 설명이 흘러나온다.

산으로 더 오르면 금오산성도 만나겠지만

우리는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어서 아쉬움을 가지며...

 

 

 

케이블카에서 내려 해운사 가는 길...

 

 

 

해운사

해운사는 케이블카 바로 근처에 자리하고 있다.

 

 

 

지장보궁의 뒷모습

 

 

 

가파른 담장 위에 자리한 범종각이 보인다.

 

 

좁은 마당에선 포대화상도 웃음기 띤 얼굴로 맞이한다.

 

 

좁은 공간을 이용하려니 대웅전이 저리 높이 있다.

 

 

 

좁은 터에 높이 솟은 대웅전과 뒷편의 도선굴

 

 

 

대웅전 내부

 

 

 

작은 범종각

 

 

지장보궁

 

 

 

대웅전 옆에서 바라본 범종각

 

 

해운사에서 도선굴 쪽을 올려다본 모습

 

 

 

 

 

 

해운사 축대에는 나옹선사의 시가 쓰여 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

.

.

무념무상의 마음을 지니기란 쉬운 일이 아닐 터~~~

 

해운사를 둘러본 후 대혜폭포로 가게 된다.

주위는 가을이 여물어가는 풍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대혜폭포가 보인다.

 

 

 

작은 물줄기에 눈길 한 번 주고...

 

 

 

대혜폭포에 도착.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방문했었는데,

그때는 명금폭포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폭포 옆으로 정상 가는 길이 있다.

최정상부는 이때까지 막혔던 곳인데, 이날부터 개방을 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갈 수 없는 상황...

 

 

금오산 정상(현월봉, 976m)

금오산 도립공원은 기암괴석과 숲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연간 300만명이 넘는 탐방객이 찾는 곳이라고 한다.

그동안은 금오산 현월봉에 올라가더라도 실제 정상을 밟지 못했었는데,

 구미시가 현월봉에 설치된 미군 통신기지 중 정상 부분을 돌려받아 정비를 하고,

이날 개방을 했단다.

이번 개방은 1953년 11월 한·미행정협정에 따라 금오산 정상에 미군 통신기지가 들어서면서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된 이후 61년 만이란다.

 

 

 

대혜폭포

 

 

 

 

대혜폭포 앞에서 인증샷 하나 남기고...

 

 

 

시원한 물줄기가 스트레스를 싸악 가시게 한다.

 

 

 

 

 

욕담
대혜폭포물이 파고 깎아 만든 웅덩이(연못)는
아주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됐으리라......
 

 

 

중학교 절친과 함께 왔었던 옛 추억을 한 번 더듬어본다.

폭포수는 긴긴 시간을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우리는 중년이라는 이름으로 인생길을 달려가고 있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뒤로 하고 도선굴로 향한다.

 

 

 

주변의 기이한 암석을 보며...

 

 

 

 

도선굴

도선굴에 대한 설명도 한 번 읽어 본다.

 

 

 

도선굴 가는 길.

바위를 다듬은 듯한 좁은 길이 난 모습으로

한 발자국씩 오를 때마다 오금이 저릴 듯한 느낌...

예전에도 울면서 갔었지...

 

 

도선굴 옆의 돌산...

 

 

 

도선굴
 
대혜폭포에서 병풍처럼 펼쳐있는 벼랑을 끼고 북으로 따라 가노라면
쇠사슬로 만든 난간을 손잡이로 하여
간신히 발붙일 수 있도록 약간은 다듬은 듯한 흔적이 있는
천길 벼랑 중간을 붙어 오르다 보면
해운사가 발아래 가물거리고
다듬은 길이라 하나 몇 번이고 숨을 가다듬어야 한발 한발 내디딛을 수 있으니
오뉴월 삼복더위 때도 소름이 끼치니 납량에는 다시 없는 곳이기도 하다.

구미공단과 낙동강하며 멀리 해평의 냉산등도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이라,
그것이 바로 극치의 풍경이라 하겠다.
수억만 년의 기나긴 세월에 풍마우세로 시달리다 못해 움푹 패인 천연동굴로
이따금씩 박쥐나 새들이 쉬어 가는 곳을
신라 말 도선이라는 고승이 이곳을 어떻게 알고 찾아들어 참선하여 도를 깨우쳐
우리나라 최초의 풍수지리설의 창시자가 되었다한다.

그 후 언제부터 도선굴 이라고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인재 선생의 일선지에 의하면
넓이가 16척, 높이가 15척, 안으로 깊이가 24척으로
그 안에 구옥(얽어만든집)이 두칸이었다 하니 내부가 30평은 됨직하고
임진왜란 때는 인동, 개령의 수령과 향민5~600명이 파난했으며
왜군은 빤히 보고도 범접을 못했다 하며
통로가 개설되기 전이라 바위틈에 가느다란 쇠못을 박고
칡이나 등 • 넝쿨을 휘어잡고 올라갔다 하며,
일선지에도 도선굴 이라 했으니
조선조 초부터 이름이 불려졌으리라 추측된다.
고려 때는 아마 대혈, 즉 큰 구멍이란 뜻으로 불렀던 것이
굴 아래 대혈사라는 절이 있어
여기서 연유된 것이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공원주차장이나 백운재 또는 경파정이 있는 곳을
대혜 혹은 다혈이라 하니
다혈은 대혈의 변음이라 추측되고도 남는다.
현재의 통로와 쇠사슬 난간은
일제초의 구미면장 김승동씨에 의해 개통되었다 한다.
(금오산 홈페이지 자료)

 

 

 

 

 

 

 

 

 

 

 

 

 

도선굴

 

 

 

도선굴에서 바깥쪽을 바라본 풍경

 

 

 

 

 

 

도선굴에서 바라본 구미

 

 

 

 

 

 

 

 

 

도선굴 주변 철난간과 옆의 돌산 모습

 

 

 

도선굴 아래로 해운사가 보이는 풍경

 

 

 

도선굴에서 내려가며...

 

 

케이블카 하차장에서 금오산을 바라본 모습

 

 

 

금오산 입구의 광장에서는 축제가 열리고 있었다.

 

 

 

행복 나눔 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축제가 열리던 날의 금오산...

10월에는 가는 곳곳마다 축제로 북적이는 모습이었다.

10월 내내 결실을 맺은 모습들을 많이 보았는데,

어느새 곁에는 가을이 떠나가고 있다.

 

 

2014.10.25(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