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양] 문향의 고장 1 - 이문열의 두들마을
영덕에서 34번 국도를 이용하다가 청송으로 넘어가지 않고
도중에 영양으로 넘어가는 지방도를 이용하였다.
예전에도 그리 생각했었지만 역시 영양은 오지다.
그리 좋지 않은 골짜기 길을 돌아 영양 석보면의 두들마을에 도착했다.
면소재지인 원리리에 있는 마을이다.
두들마을은 조선시대때 광제원이 있었던 곳으로
석계 이시명선생과 그의 후손 재령이씨들의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석계고택, 석천서당 등 전통가옥 30여채와
동대, 서대, 낙기대, 세심대라 새겨진 기암괴석을 비롯,
궁중요리서(음식디미방)를 쓴 정부인 안동장씨유적비, 광산문학연구소 등이 있다.
이 마을은 작가 이문열의 고향이기도 하다.
주차장에 내리니 석보문화마을이라는 돌비가 보인다.
주위는 화려한 단풍잎으로 하여 계절을 건너뛴 듯 느껴진다.
동네를 돌아보기에 앞서 영양군관광안내도를 앞뒤로 한 번 살펴본다.
두들마을 관람안내도도 보고...
(참고자료:영양군청 관광자료에서 가져온 것임)
주차장 한쪽에 두들마을에 대한 설명을 잘 해 놓았다.
두들마을 출신 유명 인물도 많네...
마을을 돌아보기에 부족함이 없게 알뜰살뜰 설명을 해 놓아서
처음 가는 사람들도 쉽게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두들마을 안내도를 자세히 보면 돌아보기가 더 쉽겠지...
대형주차장쪽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앞쪽으로 만석꾼의집, 길 끝으로는 주곡고택...
주차장에서 이렇게 주변을 살펴보고 마을 돌아보기 시작...
음식디미방 체험관이 맨먼저 보였다.
석계고택 가는 길에 바라본 음식디미방 체험관쪽 풍경...
길 안내도 되어 있어서 마을을 쉽게 돌아볼 수 있다.
어느쪽으로 가더라도 다 돌아볼 수 있으니 염려할 필요도 없겠지만...
먼저 석천고택쪽으로 가 보기로 한다.
길가에 두들마을 출신인 이병각 시인과 시를 소개하여 놓았다.
이병각 시비
가을 밤 / 이병각
뉘우침이여
베개를 적신다.
달이 밝다.
베짱이 울음에 맞추어
가을밤이 발버둥친다.
새로워질 수 없는 내력이거든
나달아 빨리 늙어라
이병각 시비를 지나 바로 오른쪽 안으로는 원리쉼터가 보였다.
앞쪽으로 체험고택도 보이고...
이어서 석계고택을 만났다.
석계고택(石溪古宅)
설명을 인용해 보면 아래 내용과 같다.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1호이다.
인조 18년(1640)에 세운 고택이다.
선생은 석계 위에 집을 짓고 호를 석계라고 했단다.
선생의 부인인 정부인 장씨는 부덕과 학문을 갖춘 인물로
신사임당에 견줄만한 분으로
이문열 장편소설 [선택]의 주인공이다.
아들인 이조판서 갈암 이현일은 퇴계 이황의 영남학파를 계승하였다.이 집은‘一'자형 사랑채와 안채를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토담으로 막아
허실감을 메운 뜰집과 같은 느낌이 들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석계고택
석계고택
음식디미방 교육관과 예절관
석천서당(石川書堂)
설명 자료를 옮겨보면 다음 내용과 같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9호
후손들과 유림이 중건하여 석천서당(石川書堂)이 되었다.
선생은 퇴계의 학통을 이은 장흥효의 문인이며,영남학파를 이은 이조판서 갈암 이현일의 부친이다.
이 서당은 두들산을 배산으로 하고 남서향으로 향하고 있는데
평면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좌측에서 첫째와 넷째칸은 통칸방으로 꾸몄고둘째와 셋째칸은 마루를 깔았다.
정면과 좌우면에 2자의 쪽마루를 내어 평난간을 둘렀고,
마루로 향하게 한 창호는 4분합의 들어 열개문으로 하여
6칸을 1칸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하였다.
석천서당
석천서당
영양 석간고택
석천서당 못미처 바로 맞은편에 석간고택이 있다.
이곳이 이문열의 생가이다.
석간고택
현대문학의 거장 작가 이문열
이문열은 1948년 경북 영양군 석보면 원리리 출신으로
유년시절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한다.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 [基下曲]으로 등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