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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 그 흔적들-국내/광주 전라

[전북 익산]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익산 나바위성당 (益山 나바위聖堂)

[전북 익산]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나바위 성당

 

 

지난 연말 무렵 강경을 지나 남녘으로 잠시 여행을 하였었다.

강경과 인근한 곳, 화산(華山) 언덕...

화산은 우암 송시열이 이름 붙인 이름이란다.

예전에는 이 언덕 옆으로 금강 물줄기가 흘렀다고 하며,

강경의 황산포구가 바로 지척에 있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황산포 포졸들의 눈을 피해 화산의 나바위에 상륙했단다. 

말하자면 이곳 나바위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가

이곳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다.

한국전통양식과 서양양식이 합쳐진 것을 볼 수 있다.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나바위 성당

 

골목길 입구에 세워진 나바위 성지비

 

골목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입구 오른쪽으로 피에타상이 있다.

 

순례길 안내도도 눈길을 끈다.

 

 

 

 

 

 

입구 계단 왼쪽의 본당 사무실

 

계단 오른쪽

 

계단 위 터에 우뚝 솟은 본당.

 

 

계단 위 오른쪽에 위치.

 

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성모상이 보인다.

 

 

익산 나바위성당 (益山 나바위聖堂)

 

이 성당은 김대건(金大建) 신부가 중국에서 조선 헌종(憲宗) 11년 1845년에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블뤼 신부와 함께 황산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06년에 지은 건물이다. 1906년 베르모레르 신부가 감독과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해 지었다. 당시에는 목조건축으로 앞면 5칸·옆면 13칸이었는데, 1916년 건물을 고치면서 일부분을 벽돌로 바꿨으며, 그 뒤 다시 2차례 수리를 하였다. 2층 건물과 비슷하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에 천장은 판자로 처리했고 바닥에 널판지를 깔았다.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지은 건물이며 한국전통양식과 서양양식이 합쳐진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베르모레르 신부와 김대건 신부의 기념비가 있다.

문화재 명칭은 화산천주교회 → 익산 나바위성당으로 변경 되었다. (2012.10.15 고시)

(출처 : 문화재청)

 

정면은 수직으로 솟은 첨탑을 기준으로 아치형 입구가 대칭을 이루고 있다.

 

 

처음 건축 시에는 흙벽과 마룻바닥, 기와지붕과 나무로 만든 종탑이 선 순 한옥 목조건물이었다고 한다.

1916년에 벽돌조로 교체하고 고딕식의 벽돌 종탑을 세웠단다.

 

정면과 달리 옆으로 돌아보면 한식으로 된 지붕을 볼 수 있다.

한식과 양식을 절충한 성당이다.

 

양쪽 옆에는 툇마루를 개조해 만든 회랑이 둘러져 있다.


 

본당 옆에 위치한 사제관.

벽돌조에 한식기와를 얹은 모습이다.

 

사제관과 성당.

사제관과 성당 모두 벽돌조에 한식기와를 얹은 모습...

참 이색적이다.

 

노거수 사이로 담은 나바위 성당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산을 써야 했던 날...

 

 

 

 

 

수직으로 솟은 첨탑을 기준으로 아치형 입구가 대칭을 이룬 모습.

 

아치형 입구를 가지고 양쪽으로 대칭구조를 보이는 회랑의 모습

 

양 측면에는 툇마루를 개조해 만든 회랑이 둘러져 있다.

 

 

회랑 위로는 서까래가 드러나 보인다.

 

양쪽 대칭구조의 회랑

 

창문의 틀 옆으로도 아치형으로 벽돌을 이용하였다.

 

벽돌과 나무의 조화...

 

 

 

 

 

 

 

 

 

 

 

 

 

 

 

 

바깥은 다 돌아보았지만 성당 내부를 보지 못하였다.

주일이 아니라서 문이 잠겨 있었던 것...

사제관 문 앞에 놓인 신발을 보고 다가가서 문을 두드렸더니

관리하시는 분이 나오셔서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셨다.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100년이 넘었다고는 하지만 놀라우리만큼 깔끔하였다.

 

오른쪽 소 제대의 감실. 김대건 신부의 유해 일부(목뼈)와 사진이 있는 곳.

 

나바위 성당은 1906년에 베르모레르 신부가 감독과 설계를 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동원해 지었으며, 1907년에 완공됐다고 한다.

예수의 성심상과 촛대, 감실과 낡은 목조 성수대, 마룻바닥 모두가 처음의 것 그대로란다.

 

 

제대 앞에는 커다란 아치가 천장에 가로놓여 있고,

그 너머에 두 팔을 둥글게 든 예수의 성심상이 서있다.

 

한지 유리화.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도 돋보이고...

 

한지 유리화도 은은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가운데 기둥을 중심으로 양쪽에 남녀 신도가 나뉘어 앉았다고 한다.

 

성당의 내부는 남녀석을 구분하는 기둥, 마룻바닥, 제대 등 모두 초창기 그대로의 것...

 

나바위 성당 내부의 제대, 성수대, 마룻바닥은 100년이 넘었다.

 

 

송현섭 신부가 한지 유리화의 소유가 나바위 성당 공동체임을 확인한 서약

 

 

 

 

 

 

 

 

 

사제관 옆으로 내려가면 만나게 되는 성체조배실...

 

 

 

거기서 더 내려가면 순례자의 집을 만나게 되고...

 

 

주차장(운동장) 안 언덕으로 피정의 집이 자리하고 있다.

피정의 집 오른쪽 언덕길로는 작은 십자가의 길과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탑이 있는 화산 언덕이,

왼쪽 낮은 길로는 바깥 십자가의 길과 김대건 신부 도착지가 있다.

 

 

피정의 집 오른쪽 언덕길을 따라 올라오면 이렇게 본당 뒷편이 보이게 된다.

 

 

김대건 신부 순교 기념탑 가는 길.

왼쪽으로 평화의 모후상, 오른쪽으로 김대건 신부상이 보인다.

 

김대건 신부상

 

평화의 모후상과 작은 십자가의 길

 

 

 

 

 

 

소세 신부 묘

 

 

망금정과 김대건 신부 순교기념탑이 보인다.

 

 

천주교 유적에 무슨 삼존불이냐고 하겠지만

망금정 뒤 아래에 위치한 바위에는 마애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화산의 망금정 뒷쪽 아래로 잠시 내려가면 바위에 새겨진 삼존불을 볼 수 있다.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모습이 희미하다.

 

 

마애삼존불. 조금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삼존불이다.

 

바위를 돌아 올라가면 다시 망금정이 보인다.

 

 

 

 

망금정

 

 

 

 

멀리 금강이 보인다.

예전에는 이곳 바로 아래 옆으로 금강이 흘렀다고 한다.

 

금강이 바라보이는 곳, 망금정

 

 

 

 

 

 

 

 

 

 

 

돌아내려가는 길...

 

본당의 모습을 다시 보며...

 

주차장(운동장)에서...

 

 

피정의 집 아래 왼쪽으로 돌아가는 길...

산 아래 십자가의 길이 이어진다.

 

 

산모롱이를 돌아가기 전, 오른쪽 산 바위에 우암 송시열의 華山 글자가 새겨진 곳...

 

나뭇가지에 가려서 자세히 보아야 보인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억지로 찾았다.

 

華山 글자 있는 곳을 지나 몇 발짝 더 걸으면 김대건 신부가 당도한 곳이 보인다.

 

 

 

화산 언저리... 김대건 신부 일행이 착륙하였던 곳.

 

* 나바위 성당 : 전북 익산시 망성면 화산리 1158-52

 

 

2013.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