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칠곡]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 구상
- 칠곡 왜관 구상문학관
「구상문학관」은 200여평 규모의 2층 건물로, 1층에는 문단 활동 당시의 모습을 담은 사진 자료와 문우와 주고 받았던 편지, 서화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에는 구상 시인이 기증한 27,000여권의 소장도서로 이루어져 있다.
집필실이자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들렀던 관수재(觀水齋)도 복원이 되어 관람객들이 시인의 문학 향수를 느낄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시댁에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렀다.
카메라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휴대폰으로 찍음.
구상문학관 외관
외부 공간에 세워진 시비.
길 건너 방천둑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지금은 둑이 생겨 잘 보이지 않지만 예전에 구상 시인이 왜관에서 지낼 때에는 강이 잘 보였다고 한다.
[구상]
1919년 서울 출생.
네 살 때 함경도로 이주.
한국전쟁이 끝나던 해에 왜관 정착.
본적은 이곳 왜관.
1974년 다시 서울로...
언론계와 교육계, 문화계를 두루 거쳤다.
2004년 작고하셨다.
문화적인 자존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뽑은 세계 200대 문인의 한 사람이란다.
구상시인의 삶과 문학세계가 전시된 1층 전시실
1층 전시실
부친의 나이 50, 모친의 나이 44세에 얻은 늦둥이다.
중등과 대학 시절
부인과의 만남.
구상 시인과 헌신적이었던 부인...
부인이 구상 시인의 정양처를 구하여 개업한다는 것이 왜관 시골집... 왜관 집에는 살림집과 병실(혹은 서재, 혹은 사랑) 방 두 칸의 독채를 지어놓고 관수재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이것은 부인이 언제나 마음 놓이지 않는 구상 시인을 위해 지은 정양소란다.
구상 시인은 왜관에서 20여년을 지냈다.
영상실에서는 시인의 육성 낭독 시도 들을 수 있었다.
구상 시인은 강을 소재로 한 연작시를 수십편 지었다.
이중섭 作 'K시인의 가족'
이중섭 화가와도 친분이 두터웠던 모양이다.
연작시 <초토의 시 > 1.
6·25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으로 1957년 서울특별시문화상과 대한민국문학상을 수상했고,
이 시집은 영어, 프랑스어, 독어, 일어, 이탈리아어 등 외국어로도 번역되었다고 한다.
<초토의 시>15
팔순에 다다른 시기에도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 을 발표했단다.
문학가의 기질은 어머니로부터 길러진 것이라고 한다.
연작시 '강', '모과옹두리에도 사연이', ‘시집 구상’, ‘초토(焦土)의 시’, ‘그리스도 폴의 강’, ‘타버린 땅’, ‘유치찬란’, ‘밭과 강’, ‘드레퓌스의 벤취에서’ 등 10여 권이 넘는 시집과 수상집, 수필집 등을 펴냈으며 팔순에 다다른 시기에도 시집 ‘인류의 맹점(盲點)’ 을 발표해 문학에 대한 열정과 정갈한 노시인의 깊이를 보여줬다.
구상 시인은 산보다 강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시인이 자란 원산시 외곽에 있던 덕원이라는 마을 앞에는 마식령산맥으로부터 흘러와 송도원 바다로 흘러가는 적전강이 있었는데 구상 시인은 이 강을 바라보면 마음이 후련해지고 해방감을 맛 보곤 했다고 한다. 그런데 구상 시인이 장성해 가면서 일반적인 경치나 풍경으로써의 강보다 인식의 대상으로써 강을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스도 폴이라는 가톨릭 성인의 설화와 헤르만 헤세의 소설《싯다르타》를 접한 게 영향이다. 거기 주인공들은 강을 회심의 수도장으로 삼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그러한 강에 대한 상념이 시인으로 하여금 강을 연작시의 소재로 삼게 하였다. 여기에는 물론 시인이 여의도에 살아 날마다 한강을 마주하고 있고, 시골집도 왜관이라 낙동강을 자주 접하는데서 오는 친근감이 작용했을 것이다. 시인은<강> 60편을 완성하면서 강을 회심의 일터로 삼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출처 : 구상문학관 홈페이지 자료)
대표 작품들
대표 작품들
생전의 유품들
1층 안내소
집필실이자 구상시인의 거처 관수재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 주필겸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 고질인 폐결핵이 재발하여 입원치료를 하는 중 도시생활이 부적합하게 되었다. 그때 함경도 원산 교외 덕원에 있던 독일계 베네딕도 수도원의 수도자들이 감금되어 있다가 휴전 후 국제적십자사의 노력으로 북한 감옥에서 풀려나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그 생환자 중 몇몇 분이 우리나라로 와서 천주교 대구교구 소속지인 왜관에다 수도원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래서 구상 시인은 친정 같은 수도원 이웃에다 이사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7만원이라는 금액으로 초가집 한 채가 있는 5백평의 땅을 매수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수도원 건축책임자인 명용인 수사님의 지휘감독으로 의원 한 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사랑채에 고 파성 설창수 시인께서 ‘관수재(觀水齋)’라는 당호를 지어주었고, 진주의 명 서가 은초 정명수선생께서 ‘관수세심(觀水洗心)’이란 제의를 써 주셨다고 한다.
구상 시인은 관수재에서 연작시 <밭일기> 100편과 <강> 60여편 등을 썼는데, 왜관의 수도원 농장과 낙동강변에서의 삶이 구상 시인의 시의 소재와 제재가 되었다.
또, 많은 문인들이 관수재를 방문하셨다. 그 중 이중섭 화가는 <K시인의 가족>, 즉 구상 시인과 가족을 그린 그림을 남겼다.
‘관수재’는 구상시인이 강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마음을 씻고 가다듬은 ‘觀水洗心’의 삶을 살았던 곳이다.
(출처 : 구상문학관 홈페이지 자료)
관수재 옆 대나무
관수재에서 바라본 구상문학관 건물.
건물 사이 공간에는 낙동강물을 형상화한 물줄기를 끌어다 놓았다.
[구상문학관]
* 위치 : 경북 칠곡군 왜관읍 구상길 191(도로명)
* 전화 : 054-973-0039
* 관람시간
- 화~금요일 :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 토요일 : 오전 9시부터 오후5시까지
- 일요일 : 오전 9시부터 오후6시까지
* 휴관 : 매주 월요일, 법정공휴일
- 2014.01.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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